괜찮은 척했던 나에게, 공황이 알려준 가장 소중한 것

"괜찮아, 괜찮을 거야."

by 헤어지니 강샘

"괜찮아, 괜찮을 거야."

어릴 적 내 안의 작은 나는 늘 스스로에게 그렇게 주문을 걸었다. 우당탕탕 터지는 큰 소리, 한숨 섞인 울음소리 사이에서 세상은 늘 불안했고, 나란 존재는 한없이 작게 움츠러들곤 했다. 다른 이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감정을 내보이는 것이 왜 그리도 힘겨웠던 걸까.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짊어진 불안의 무게만큼, 나란 존재는 감정의 싹을 틔울 틈조차 없었다는 것을.


밝음으로 위장한 슬픔,

가면 뒤에 숨겨진 나


어린 나는 유난히 '밝은 아이'였다. 아니, 어쩌면 밝은 척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내 안에 드리워진 슬픔이나 우울함이 혹여라도 드러날까 봐, 그 감정들이 누군가에게 비칠까 봐 늘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더 많이 웃고, 더 크게 떠들고, 친구들을 웃기며 나의 진짜 감정을 애써 외면했다.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으로만 나를 포장하는 데 온 힘을 다했던 시간이었다. 감정의 찌꺼기를 발견하는 것조차 싫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나를 숨기는 데 익숙해져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객들의 미묘한 표정, 감정의 흐름을 기가 막히게 읽어낸다. 어쩌면 남의 감정은 그렇게 잘 헤아리면서 내 감정은 완벽하게 차단해 버리는 데 특화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감정은 위로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려 노력하면서, 정작 나의 마음은 완벽한 철옹성을 쌓고 그 안에 갇혀버렸다.



"난 왜 이렇게 내 감정 표현에 서툰 사람이 된 걸까?" 이 질문은 늘 나의 고민이었다. 그리고 그 답은 어린 시절, 내 감정을 숨겨야만 했던 환경 속에 있었다.


철옹성이 무너지던 순간,

공황이 선물한 깨달음


내 감정을 감추는 데 익숙했던 삶, 나의 슬픔이나 우울함이 드러날까 봐 늘 밝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던 어느 날, 세상은 내게 거대한 경종을 울렸다. 공황장애. 처음에는 그저 나약해서, 자기 관리에 소홀해서 생긴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들이닥치는 숨통을 조이는 고통, 가슴을 짓누르는 먹먹함, 죽을 것만 같은 공포 앞에서 나의 오만했던 생각들은 산산조각이 났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든 그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괜찮은 척했던 내 마음은, 단 한 번도 괜찮았던 적이 없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내 감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외면하고 방치했던 내 마음의 민낯을 마주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던 타인의 시선과 기대가 아닌,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 나의 감정, 나의 마음을 돌보는 일이 그 어떤 것보다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정과의 대화,

나를 치유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


이 깨달음을 통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괜찮은 척하던 나를 놓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남보다 나 자신을 중심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감정과의 대화, 감정과의 교류를 시작했다. 문득문득 요동치는 감정 앞에서 이제는 당황하지 않는다. 그 감정에 휩쓸리는 대로 나를 위로하고, 그 요동치는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마치 두 개의 내가 존재하듯, 상처받은 나를 또 다른 내가 토닥여주는 방식으로 내가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나는 더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내 감정을 억지로 없애려 힘쓰기보다, 올라오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진정한 위로가 찾아왔다. 비로소 나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내 자신이, 내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공황장애는 내게 가장 혹독하지만, 동시에 가장 고마운 스승이었다.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내가 진짜 누구인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가르쳐주었으니까. 이제 나는 나의 감정과 기꺼이 동행하며, 진정한 나로 살아가려 한다. 이 글이 혹시라도 지금 이 순간, 감정의 미로 속에서 헤매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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