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주일에 3-4일 정도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마루에 누워 강아지와 함께 뒹굴거리며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출입문 뒤에 숨겨진 나만의 작은 비밀 공간에 들어갔다. 선풍기도 놓을 수 없을 만큼 좁은 공간에서 기타 연습을 하고, 글을 쓰고, 캔버스에 물감으로 색칠을 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푹 빠져서 밤늦게까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나는 늘 불안했다. 이 행복한 시간도 곧 끝나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 평화롭고 안전한 나만의 세상에서 나와, 직장을 다니며 바쁘고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주변의 어른들이 나에게 늘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잖아, 이제는 직장을 구해야 하지 않겠어?”
그러나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 나는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 회사를 다녔던 모든 순간에는 당장 오늘이라도 퇴사를 하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다. 신입디자이너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1년정도 되었을 무렵에 아무래도 디자인은 도저히 나랑 안 맞는 것 같다며 퇴사를 했고, 하루에 5시간만 일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저 자유롭고 싶을 뿐이었다. 하루 종일 똑같은 건물 안에 갇혀 있는 이 삶이 눈물 날 만큼,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회사를 다니며 울면서 출근을 하고, 울면서 퇴근을 하는 날도 많았다. 나는 한국이 싫었다. 왜 모두가 똑같이 9시에 출근을 하고 6시에 퇴근해야 하는지, 왜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며 나에게 똑같은 말들을 늘어놓는지, 그렇다면 나는 왜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았는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이유가 이곳이 한국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한동안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의 삶을 꿈꾸기도 했었다.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생 때 배운 디자인 프로그램 스킬 하나로 스무 살이 되자 마자 디자이너로 취업을 했고, 1년 뒤 퇴사를 하면서 다시는 디자인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른들의 눈치가 보여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결국 다시 디자이너로 취업을 했다. 그렇게 나의 꿈과 행복했던 시간들은 그저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짧은 기억으로 잊혀져 갔고, 나는 어른들이 바라던 대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며 아주 바쁘게 살아갔다. ’이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서 내가 꿈꾸는 삶을 살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생각하면서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꾹 참고 견뎌냈다.
퇴근길, 반짝이는 불빛들과 높은 건물로 가득한 회색 도시를 지나 초록색 풀과 논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파란 하늘을 보며 여유롭게 햇살을 맞아 본 것이 언제였는지, 책상 앞에 앉아 차분히 글을 써 본 것이 언제였는지 점점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퇴근길에 보이는 시골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너무 아름다워서 가끔은 차를 세우고 노을이 사라질 때까지 사진을 찍으며 감상했고, 여전히 아름다워서 가끔은 서러운 마음에 울기도 했다. 노을은 나의 행복했던 시간처럼 금세 사라졌고,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면 세상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렇게 꿈꾸던 삶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퇴사'라는 단어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설레고 행복했다. 왜 퇴사를 하고 싶었는지, 내가 꿈꾸던 삶이 무엇이었는지는 희미해졌고 어느새 내 꿈은 퇴사가 되어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퇴사 이야기를 들으며 희망을 가졌다. 회사를 그만 두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다들 걱정했지만, 나는 이 모든 일들이 회사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단정한 모습을 위해 옷이나 화장품을 사는 이유도, 스트레스 받아서 퇴근 후 맛있는 음식을 사 먹는 이유도 모두 회사 때문이었다. 나는 원래 차가 없어도 괜찮았지만, 회사를 다니려면 버스도 다니지 않는 시골에서 출퇴근을 하기 위해 차가 필요했다. 굳이 차를 사서 매달 할부금을 내고 기름값을 내는 이유도 회사 때문이었다. 회사를 다니지 않았을 때에는 옷도, 화장품도, 스트레스 해소도, 차도 필요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곳에 돈을 쓸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직장을 다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방금 말했던 예시를 늘어놓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이것은 내 삶의 신조였다. 아무래도 나는 베짱이 기질이 조금 있었던 것 같다. 소가 없으면 구유가 깨끗하지만 소가 있음으로 인해 얻는 것이 많다는 성경말씀에도, '나는 얻는 것이 없어도 좋으니 그냥 구유가 깨끗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때 나는 그런 사람이었고 지금의 나는 조금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때의 내가 틀렸다거나 뭘 몰랐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에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그냥 그렇게 한 번 살아볼 걸'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삶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지만 내 삶은 이렇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나도 괴롭게 만들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냥 이렇게 한 번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모든 것은 자신이 직접 겪어보고, 스스로 깨닫고, 그 이후로 생각과 행동이 바뀌고, 이렇게 하나씩 얻으면서 변해가는 것이 후회없는 길인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방황하고, 울고, 웃고, 미래를 알 수 없어 막막했던 시간들이 지나갔다. 곳곳마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 펼쳐져 있는, 도시 바로 옆에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 그곳에서 다섯 번째 여름을 맞이하던 해에 나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곧 그곳을 멀리 떠나 제주로 이사를 왔다. 제주에 연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혼여행을 왔었고, 한달살이를 왔던 것이 우리의 유일한 연고였다. 많이 방황하고,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의 걱정과 다르게 제주에 오자 마자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직장을 구했다. 어느 시골의 작은 회사에 디자이너로 취업을 했다. 제주에서의 여름은, 마치 시골에서 행복했던 나의 지난 여름처럼 여유로웠다. 햇살이 따뜻했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새가 지저귀고, 나뭇잎이 연두색으로 투명하게 반짝였다. 이곳에는 맛있는 과일이 가득했고, 돌담 위에 고양이들이 앉아 있고, 경운기와 지게차가 도로 위를 천천히 지나갔다. 어쩌면 이곳에 내가 꿈꾸던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른다는 설렘과 함께, 그렇게 나의 여름은 제주에서 새롭게 시작되었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 볼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 김광석 / 바람이 불어오는 곳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