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약 Nov 10. 2019

한 미용사의 독서대  

가위질과 뇌휴식

       기술 전에 도구부터, 도구 전에 마음부터



미용실에 간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신체부위에서 가장 민감한 두피에 난 머리칼을 정리하러 가는 일은 그 날의 컨디션을 좌우할 정도의 예민한, 일종의 건한 의식이기도 하다. 미용사가 '어떻게 해 드릴까요?' 물으면 나는 '깔끔하게 다듬어 주세요'라고만 한다. 여기서 미용사의 접근방식에 따라 합격, 불합격이 나온다.


가위질하면서 머리 뜯어먹는 경우는 무조건 탈락이다. '아 따가워' 소리가 계속되는대도 '죄송해요 참으세요' 하며 계속 뜯고 뽑는다. 이러면 머리에 장침을 놓는 건지, 숱을 없애려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신경이 곤두선다. 다신 안 간다.


인간의 두상은 천차만별이다. 복제품이 아니다. 그래서 맞춤형 가위질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네킹 머리 다루듯 가위질하는 사람들 있다. 이러면 처음엔 그럴듯해 보일지는 몰라도 2-3주가 지나고 나면 완전히 더벅머리가 되어 버린다. 우와. 감자다.


바리깡 많이 쓰는 사람도 다. 귀 옆으로 웽웽하고 제초기 돌리듯 징글징글하게 밀어대며 울리는 기계소리는 아주 사람 환장하게 만든다. 대부분 결과물은 '말죽거리 잔혹사'의 학창 시절 머리다. 깔끔하게 밀린 뒷머리 옆머리며, 반듯하게 각 맞춰 깍아돌린 모범스런 작품에 헛웃음이 나온다. 다음날 회사 가면 다들 묻는다 머리가 왜 그렇냐고. 그럼 입대를 명 받았다고 말해준다.


이렇게 세 가지 정도의 기준으로 보면 그 미용사의 기술, 성의, 역량, 마음 상태까지 알 수 있다.


가장 좋은 미용사는 상대방의 마음을 손질로 이해하는 사람이다.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바로 잠이다. 좋은 미용사는 말을 아낀다. 잡담할 기운까지 깡그리 모아 머리에 신경 쓴다. 가위질을 함부로 놀리지 않는다. 사근사근 두상의 골, 맥, 머리칼 상태까지 파악하고 손가락을 조심조심 두피에 얹으면서 작품을 만들어 나아간다. 가위 쉿소리마저도 귓가에 종종하고 은은하게 울리면 눈꺼풀이 서서히 감긴다. 미용사를 믿는 거다.


나는 미용실에 푹 자러 간다.



미용사 중에서도 가장 하이레벨이 있다. 두세 살배기 어린아이들을 다룰 수 있는 자이다. 대개 두 가지로 결론이 난다. 첫째, '아이 머리 좀 다듬으려고요'하고 들어가는 순간 '아 저희는 아이들은 안 받습니다' 하고 거절하는 경우다. 이해한다. 애는 울고, 수시로 움직이는 터에 머리는 망가지고, 심지어는 잘못하면 가위칼에 다칠 수 있을 위험이 있으므로 미용사 입장에서는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


둘째, 받아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경우다. 부모가 애를 앉고 함께 자리에 앉는다. 부모한테 유튜브 틀어 달라하고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려고 바리깡을 무지 쓴다. '어?바리깡으로 하면 집에서도 할 텐데' 하며 쩝 입맛을 다지지만 내가 한 것보다야 훨씬 나으니까 생각하며 냅둔다.


그래. 이 정도면 됐어.




하루는 애 감기로 병원을 좀 멀리 있는 곳으로 갔더니 아내 왈, "온 김에 이 근처에서 얘 머리 좀 다듬고 갈까?" 하여 어어 좋지 하고 무작정 병원 옆의 미용실 하나를 잡아 들어갔다.


읭? 너무 일찍 왔나? 사람들이 한 명도 없다. "계세요?" 하니 반대편 문에서 중년의 나이쯤 되어 보이시는 아주머니께서 "네~~"하고 나오신다. 차분한 얼굴에 금테 안경을 낀, 인상 좋으신 분이다. 아내와 눈을 주고받았다.


"저기 혹시 아기 머리도 해 주시나요..?"

"그럼요~ 여기 앉히세요."

"아 근데 얘가 앉기만 하면 울어서요. 엄마가 앉은 채로 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편한 대로 앉으세요."


이 양반 봐라. 별다른 제스처나 재롱도 별로 없이 애 머리를 능숙하게 잘 깎는다. 애도 크게 보채거나 짜증도 안 낸다. 두피를 꼼꼼하게 지그시 잡아가며 아이의 신경을 자극하지 않게 신중히 가위로 살살살. 허허참.


미용실 한가운데 테이블 한가운데 독서대가 있다. 읽다만 신문을 깔끔히 접어 올려두었다. 사회면을 읽다 넘기려고 신문을 떼자 소설책이 나온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


오? 그 옆에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보인다. 독서대 밑에는 이미 다 읽은 신문 세 개가 차곡히 깔려있다. 좌, 중, 우 성향 신문 각 1부, 지역신문 1부 이렇게 총 네 부를 돌려보시는구나.


두리번두리번하는 사이에 벌써 끝났다. 아이고. 귀엽게도 깎아주셨구나. 그럼 나도?


아내가 애 데리고 카페에 가 있는 사이, 머리를 하는 동안 미용사께 슬그머니 화두를 꺼냈다.


"독서 많이 하시나 봐요. 신문도 네 개를 돌려보시네요?"

"에이~ 뭐. 심심할 때 앉아서 보는 거죠."

"뇌 읽고 계시더라고요?"

"아~ 베르베르 꺼는 다 봐요. 머리라는 게 신기하잖아요. 결국 깎는 것도 다 뇌에서 지시하는 건데요."

"하긴요. 생각 안 하면 평생 안 깎고 살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미용 기술만 해도 수도 없이 많잖아요."


미용사의 가위질이 귀를 사각사각 스쳐간다.


"옛날에 대머리가 되면 신이 저주를 내렸다고 죽이기도 했대요. 지금이야 의학으로 다 밝혀졌지만 그 옛날에 머리칼이 빠지면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월계관 아시죠? 그 월계관이 뭐로 유명한 줄 아세요?"

"올림픽이요?"

"아뇨. 그거 말고. 로마의 시저 아시죠? 시저가 머리가 빠지니까 꾀를 낸 게 월계관을 써서 탈모를 가린 거예요. 카이사르의 뜻이 '풍성하다'. 뭐가 풍성하겠어요? 머리카락이지."

"선생님 참 많이 아시네요. 교편에 계셨었나요?"

"아뇨. 제가 뭘 안다고. 그냥 여기 특성이 그러니까 여차여차 맞춰 가는 거죠."

"무슨 특성이요?"

"이 주변이 다 입시촌이에요. 아줌마들 오면 무슨 얘기하겠어요. 다 자식들 대학 어떻게 보내나 그 걱정뿐이지. 요즘은 애들보다 엄마들이 더 많이 알아요. 머리도 잘해야 되고.. 머리 안에 넣어야 할 것도 많고.. 먹고살기 힘들죠?"


방긋 웃으신다.


"그럼 매일 독서대 앞에서 저렇게 책 보고 신문 보고 하시는 거예요?"

"그냥 틈틈이 보는 거예요. 나도 업데이트를 해야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고 엄마들 이야기도 상대해주고 하죠. 여긴 머리만 잘해서는 안돼요."


[가위], 붓펜, 2019.11.10 / 백약


선생은 기술 전에 도구 관리, 도구 정리가 우선이라고 했다. 거기서 자세가 나오는 거라고. 자세는 뭐냐면 손님을 상대하는 방법이다. 상대방의 스타일이 어떻고,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미용사의 자질이 나온다.


그렇다.

저 독서대는 미용의 시작이고, 소통의 원천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손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손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