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면 내가 하는 것이라고는 지방 쓰는 것뿐이다. 그 외에 추가적인 업무가 있다면 밤을 까거나 청소, 설거지하는 정도다. 일단 지방 쓰러 방으로 들어가면 어느 누구도 찾지 않는다. 종손이란 이름으로 많은 업무에서 열외의 ‘특혜’를 누려왔다.
매번 아빠에게 지방으로 잔소리를 듣는다. 작년 제사 때는 ‘글씨를 너무 굵게 쓴다’는 점을 지적받았다. 한 때는 글씨에 힘이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나름 성을 들인 것인데 힘과 굵기는 별반 관계가 없나 보구나 싶다. 뭐 그렇다고 하니 다음엔 그렇게 고쳐 써야지 하고 만다.
이 많은 조상님들 중에 내가 본 유일한 분은 친할머니 밖에 없다. 내가 기억하는 친할머니는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명절이나 제사 때 인사를 드리러 가면 늘 방 한 구석에 붙어 앉아 TV를 보시며 ‘어 그래 왔냐?’ 한 마디 하시고는 담배만 줄곧 태우셨다. 내 나이 열넷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 돌아가셨구나.’ 하는 마음 외에는 달리 표현할 감정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제사가 갖는 어떤 경건함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막상 와 닿는 바가 없다.
먹고살기 힘들고 바쁜지, 호랑이 같던 우리 아빠 이빨이 빠져서 그런 것인지, 이제는 다들 제사에 오는 둥 마는 둥 한다. 말도 없이 차례 날 외국여행을 떠나는 집이 있질 않나, 혼자 삐쳐서 잔뜩 술에 취해 와서는 투덜투덜 대고 앞으로 안 오겠다고 으름장을 놓질 않나, 제사 전날 술에 절어서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사촌 동생 놈 하나가 다른 사촌동생 욕을 하며 나에게 '종손이면 종손답게 동생 교육 좀 시켜라' 집 떠나가라 고함을 치고 있질 않나, 사람 참 나이를 먹어도 변치 않는 것들이 많구나 하고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게 무슨 제사 지내는 사람의 자세냐!’ 하며 종부인 엄마는 속으로 부글부글하고, 아빠는 ‘애들이 오든 말든 제사 내가 지내면 말지...’ 애써 감정을 감추며 방에 들어가 정복으로 갈아입으신다.
내 나이 열 살 정도까지만 하더라도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매우 엄격한 것이어서 속으론 싫어도 겉으론 표현 못하고들 제사 지내는 시간에라도 꾸역꾸역 맞춰 왔다. 다들 몇 개 되지도 않는 방에 우글우글 모여 앉아 흥부네 박타는 이야기라도 주고받으며 그렇게 정나미를 붙였던 것도 이제는 정말 옛적 일이 되고 말았다.
나에게 제사가 중요한 것은 단지 지방쓰기에 대한 아빠의 지적과 그에 대한 보강뿐이다. 열두 살에 지방 쓰기를 물려받았으니 세월도 27년이 흘러갔다. 그즈음 명절날에, 아빠가 막내 삼촌을 불러서는 ‘이제 얘가 앞으로 쓸 테니까 가르쳐줘라’ 하니, 삼촌이 얇은 붓과 화선지를 가져와서는 반듯하게 종이를 접고 그 위에 연필로 글씨를 써서는 붓으로 따라 써 보라 하였다. ‘나타날 현’에 '고조고'를 붙이면 '고조부께서 임 하소서'하는 뜻이니 차근차근 생각하면서 쓰는 것이다 뭐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삐쭉빼쭉 어설프게나마 글씨를 써 나아갔다.
‘그림 그리지 말고 글씨를 쓰라’는 말이 제일 오래간 것 같다. ‘썼지 내가 그럼 조상님을 그렸나’ 빈정이 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글씨를 쓰자 글씨를 쓰자 주문을 외우며 그렇게 족히 십여 년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차례가 되면 총 여덟 분의 신위를 모셔야 한다. 틀리면 낭패다. 주변을 어둡게 하고 작은 스탠드 불 하나에 조명을 맞춘다. 신위를 모실 화선지를 손으로 접고 조심스럽게 잘라내어 여덟 분의 조상님들을 적을 분량을 만든다. 칼이나 가위로 자르면 그만이지만 날카로운 쇠는 쓰지 말라는 아빠 말씀에 그렇게 따른다. 신중의 신중을 기하고 항상 붓을 든다. 먹을 화선지에 눌렀을 때 유독 잘 먹는 날이 있다. 붓을 미는 대로 획이 힘을 받아 뻗어 나아간다. 그런 날이면 왠지 모르는 뿌듯함이 생긴다. 그래. 이번엔 썼다. 그런 날엔 정말 아빠도 별다른 핀잔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지방 쓰고 나오면 1시간에서 1시간 반이 지나가 있다. 전을 부치고 있는 틈을 비집고 나와 부엌에 가 설거지를 한다. 친지들과 술도 먹기 싫다. 맨날 똑같은 호시절 얘기 지겹기만 하다. 아빠는 제를 지낼 시간이 다가오면 상 앞에 앉아 가만히 앉아 계신다. 무슨 생각을 저리 골똘히 할까 하면서도 나는 묻지 않고 그냥 뒤에 앉아 아빠를 지켜본다.
‘애 감기는 좀 어떠냐?’
‘좋아졌어요.’
‘그래. 다행이다. 환절기다. 항상 조심해라.’
짧은 이야기만 나누고 다시 침묵에 잠긴다. 나는 그 조용함이 좋다. 그 찰나의 코끝을 스치는 향내, 바짝 다린 아빠 양복 마디마디의 깃, 무릎 꿇고 앉아계신 단단한 다리받침, 상물림 후에 불길에 공중으로 속절없이 훨훨 날아가는 글씨 조각들. 이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무념무상으로 제사에 임하게끔 한다.
나는 지방을 쓰는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 내가 죽을 때까지는 따듯한 밥에 맑은 국물, 아빠엄마 좋아하시는 반찬가지에 술 한 잔에 지방 붙여 놓고 절을 올릴 것이다. 상 물리고 나서는 아빠랑 엄마 한 잔, 나 한 잔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마시고 그 자리에서 이불 덮고 잠들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