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약 Feb 16. 2020

40년 평생 한 번도 요리 안 한 남자의 최후

어쩌다 요리 


나도 돌이켜 보면 신기하다.

어떻게 사십년 가까이 내 스스로 요리 한번 안 해보고 잘 먹고 잘 살았을까?


1. 엄마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먼저 엄마 핑계를 대야겠다. 엄마는 나에게 요리를 단 한 번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딱 하나. 밥 짓는 것 빼고만. (라면을  끓일 수 있다, 계란 프라이를 할 줄 안다 이런 것은... 후훗 양심상 말 안 하겠다.)


엄마는 냉장고를 비워두는 법이 없었다. 못해도 밑반찬을 최소 두세 개는 만들어 채워두었다. 찌개와 국도 끓여두었다. 등굣길, 하굣길, 출근길, 퇴근길 할 것 없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엄마가 가족 모두의 식사를 책임졌다.


엄마의 가치관은 남달랐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고추가 떨어진다든지 이런 관념은 아예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랬다면 내 여동생은 최소한의 요리라도 할 줄 알아야 논리상 맞겠지만 내 동생도 지금까지 딱히 할 줄 아는 요리가 없다. 엄마는 단지 요리주의자였다. 끼니마다 품평을 해야 했다.


"좀 짜다."

"아 이번에 참 잘 됐네."

"고기에서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은데?"


아빠와 동생은 늘 뭔가 구체적인 수식어와 표현을 구사해 가며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나는 안 했다. 내 기준에선 뭐든 맛있었으니까. 그래서 엄마는 내가 밥 맛있게 먹는 걸 지금까지도 손뼉 치며 좋아한다.


엄마는 항상 요리 티비와 잡지를 옆에 끼고 살았다. 메모지에 적어두고 고민하고 발전시켰다. 다들 가출이니 독립이니 그런 소리하고 있을 때 나는 서른이 넘도록 꿈쩍안했다. 나가면 끼니는 누가 챙겨주나, 내 손해지.


엄마는 대신 설거지를 시켰다. 집안 청소도 내 몫이었다. 설거지와 집안 청소에는 대원칙을 주었다.


→ 먹은 그릇만 씻는 것이 아니라 싱크대와 가스레인지에 묻은 이물질, 밑바닥에 떨어진 쓰레기까지 말끔히 치운다.

→ 보이는 곳만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구석구석 손 닿는 모든 곳을 먼저 쓸고 후에 닦는다. 그 후엔 물건은 제 자리에 둔다. 

→ 제 자리가 아니더라도 보기 좋게, 깔끔하게 치워도 좋다.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옵션이 들어갔다.


→ '노는 사람'이 집안일을 한다.


여기서 노는 사람이란 작은 의미에서는 손이 남는 사람, 크게는 일을 쉬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특히 일을 쉬고 있는 사람에게는 설거지, 집안 청소, 장보기 등 하루에 수행해야 할 빼곡한 업무가 주어졌다. 단, 요리만 빼고.



2. 관심이 없어서


심각한 외수에게 요리해 보지 않겠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 같나. 생각은 해보는데 막상 손이 안 간다, 요즘 남자 셰프가 대세인데 쑥스럽다, 장가라도 가려면 토스트라도 해야 하는데, 이런 변명을 하진 않는다.

관심이 없어서.


가령 버스를 탄다고 해보자. 남들은 버스 타면서 창밖에 뭐가 있고 아 이 동네엔 이 병원이 있구나, 몇 정거장 사이엔 이런 공원도 있구나, 오늘따라 사람들이 조용하다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둘러본다. 그러나 외골수는 다르다. 그 역만 본다. 내린다. 끝이다. 관심이 적은 게 아니라 전무한 거다. 


그래도 하물며 대학 엠티나 동기들 자취방에서 뭐라도 해 먹게 되면 어떻게든 하게 되지 않느냐 물을 수도 있다.


→ 사람들은 보통 만드는 걸 좋아하지 치우는 걸 싫어한다. 나는 기꺼이 치우는 역할을 맡는다.


더 물고 늘어지면 혼자 숙식하면 요리 한번쯤은 하게 되지 않느냐 할 수 있다.


→ 아침은 그냥 빵에 잼 발라 우유 먹고 저녁은 야근하면서 식당에서 먹지요.



3. 아내 때문에


아내가 장금이다. 지난 4년 간 맛동산에서 살았다. 못 만드는 요리가 없고, 맛없는 요리가 없었다. 무엇이든 척척척 슉슉슉 다 만들어냈다. 나는 이 때도 설거지를 맡았다.


물론 아내 생일에는 미역국을 끓였다. 그렇긴 한데, 솔직히 말하면 아내가 다 차려준 레시피에서 지시사항대로 이거 저거 순서대로 넣어 만드는 수준 정도였다. 내 요리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크다.


아내도 결혼하고 2년 3년이 흐르자 속 이야기를 꺼냈다.


"자긴 요리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 안 들어? 하면 잘할 것 같은데?"

"아... 안 들어."

"왜?"

"일단 자기가 너무 요리를 잘하고.. 그렇지. 너무 잘해서!"

"그런데 나중에 나 없고 서원이랑만 있다고 하면 그땐 어떻게 할 거야?"


나는 잠시 고민했다.


"때가 되면 하겠지."



4. 때는 오고야 말았다.


아내가 복직을 하는 순간부터 모든 육아환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육아시간과 어린이집 등하교 역할을 분담했다. 상대적으로 나보다 야근이 잦은 아내가 아침을, 그보다 적은 내가 오후를 맡았다. 내가 아들을 데리고 집에 와서 옷 갈아입히고 집안 정리를 하고 있으면 아내가 얼추 7시쯤 해서 집에 도착했다. 아들도 먹성이 있는지라 집에 오자마자 먹는 것부터 찾아 있는 간식 없는 간식 다 찾아주고, 집에 있는 기본반찬에 밥을 뚝딱 먹였다.


문제는 우리 먹거리였다. 아내가 늦기라도 하는 날엔, 그리고 아무것도 집에 먹을 것이 없는 날엔, 시켜먹었다.


아. 앵겔 지수가 지나치게 높다.


휴일의 어느 날, 유달리 엄마껌딱지가 된 아들은 아내 곁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계속 울고 보챘다. 아내가 막 부대찌개를 할 참이었다. 요리를 시작할 수 없었다. 그때 문득 머리를 스치고 간 생각.


내가 하면 되겠네?


육수국물은 있고, 녹인 소시지를 썰었다. 보글보글 요놈들을 끓이는 동안 마늘을 으깨고, 김치 양파 대파를 썰어 넣었다. 아내가 간을 보러 왔다. 수저 하나 집고 후 국물 살짝 떠어 입에 넣었다.


오. 맛있는데?



맛있다고? 나도 먹어보니 이런 제법 맛있다. 마지막으로 두부를 썰어 넣었다. 39년 만의 최초 요리였다.



다음 날은 아내가 오기 전에 혼자 부대찌개를 만들었다. 이번에도 성공이었다. 아내에게 당장 내가 해 볼 수 있는 음식거리를 알려달라 했더니 고기 넣고 김치찌개 해보란다.

 


포털에서 검색하니 참 친절하게도 잘 나와있다. 나는 그다음 날도, 모레도, 글피도 김치를 주제로 조금씩 재료를 바꿔가며 찌개를 끓였다. 그다음엔 불고기, 어묵탕 가릴 것 없이 칼을 잡고 슥삭슥삭 만들어 나아갔다. 아내에게 모두 합격점을 받았다.



이제 주말이 되면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짓고, 요리하는,  조금 더 멋진 가장이 되었다.

 


이전 14화 삼신할머니를 모시겠다는 아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