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집서 연락을 받고 오케이 속으로 외쳤다. 하필 추석 당일에 당직이 걸려 날짜를 바꿔줄 사람도 딱히 없거니와, 무엇보다 둘째 가진 아내와 첫째를 데리고 험난한 코로나 19 위험지대를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모처럼 잔잔한 추석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내는 어제부터 심란한 표정이다. 왜 그러냐 물으니 그래도 명절인데 가봐야 하지 않겠냐며 이를 어쩌지 하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아이고 여보 남들은 시댁 안 가면 박수를 치고 춤을 추며 좋아할 텐데 그 무슨 서울집 걱정이오 하니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다며 또 한 마디 보탠다.
서울집 녹두전 먹고 싶은데... 전도 못 먹고...
나참 헛웃음이 절로 나와 그러면 광주집을 가자 했더니 추석 끝나고 가는 것도 별로인 것 같다며 고개를 젓는다. 자꾸 쩝쩝 입맛을 다시길래 그냥 있는 거 먹자 뭐하면 사 먹으면 되지 하고 아내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사실 나도 조금 어색한 건 마찬가지다. 늘 명절이면 서울집 내 방에 들어가 사대봉사 지방을 쓰던 습관이 들어 아내에게 '나라도 새벽에 혼자 모실까' 하니 아내가 어머니가 절대 쓰지 말라고 지방 태워야 하니까 쟤 하지 못하게 하라고 미리 단도리를 쳤단다.
아침 일찍 일어나 콩나물국밥 든든히 먹고, 노곤한 피로감에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아내가 아들 데리고 나갔다 온단다. 어디 가냐 물으니 차 기름 넣고 자동세차 한단다. 알았다 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한 참 늘어지게 자고 있으니 아내가 흔들어 깨운다. 지금 몇 시냐며 애 데리고 놀이터 가라고 난리다. 어 벌써 12시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물으니 장도 좀 보고 왔단다. 누워서 버티고 있으니 아들 녀석이 "꼬끼오~ 햇님이 방긋 솟아올라왔어요! 아빠 놀이터 가서 씽씽이 타요!" 노래를 부르길래 주섬주섬 옷 걸치고 가자가자 가보자 하고 아파트 놀이터 1, 2, 3, 4를 다 돌았다.
놀이터 4에 이르자 벌써 한 시간 하고 반이 흘러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나버렸다. 아내에게 전화를 거니 밥 거의 다 했다고 들어오란다. 대신 놀라지 말라고 한다. 뭐를 놀라는데 물어도 대답은 않고 그저 웃기만 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어 뭐지 이 익숙한 기름 냄새는?
현관문을 여니 서프라이즈! 아내가 환하게 반긴다. 크엇. 주방이 온통 전 세상이다. 녹두전, 육전, 꼬치전에 숙주나물이고 제사상에 들어가는 음식들은 줄줄이 차려 한 상 냈다. 이 정도면 귀신이 곡을 하다 전주로 내려올 판이다. 이게 다 뭐 한 거야 물으니 아내 왈, 아니 그래도 뭐라도 차려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며, 전을 좀 먹어야 명절 보낸 느낌이 날 것 같단다. 엄청나게 장을 봐 온 거다.
내가 전 냄새 싫어하는 건 알아서 환기 싹 시켜놓고 냉면 하나 시원하게 말아 내 앞에 내준다. 배도 이제 불룩 나와서는 이걸 다 하고 앉아 있었으니 참 잘했다고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음식 맛이 참 좋고 정성이 그득하여 딱히 할 말이 없다. 박씨문중 종가의 딸이 맞다. 여장부다.
우리는 만나고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결혼을 결심했다. 이유야 많겠지만 무엇보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까닭이다. 양가에서 오케이를 받아낸 것도 그 점이 크게 작용했다. 아내가 광주에 내려가 결혼 의사를 밝히니 부모님 말씀이 "사람이 어울려 지낼 줄 아느냐" 고 물으셨다 한다. 남자 친구가 종갓집 장손이라 하니 그러면 됐다고 거기서 도장은 찍혔다. 엄마는 사람이 그릇이 크고 명절 음식을 기가 막히게 한다며 그때부터 완전히 며느리 편이 되었다.
수십 년 간 제사상 모시는 데 진절머리가 난 판국인데. 평소에 전이라면 지긋지긋 손에 대지도 않았을 텐데. 소담한 사기그릇에 가지런히 전부침을 내주니 오늘은 참 고급진 음식이구나 싶었다. 서울의 녹두전과 광주의 육전이 한 자리에 만나다니 그것도 참 재미있구나 싶었다.
며칠 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양동근이 아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쓰레기더미에서 발견되었을 거란 말을 했다. 어?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네하며 웃었는데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