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있던 가족들 모두가 아버지를쳐다봤다. 진짜? 정말? 레알? 방 정리를 하고 있던 나도 놀라서 거실로 뛰어나왔다.
“진짜요??? 차례 안 지내요??? 왜요???” “술김에 그러시는 거 아니죠???” “아니야.” “당신 정말이지? 이거 녹음해놔. 나중에 딴 말하면 안 돼!” “그렇다니까?”
엄마도 아버지의 ‘폭탄선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 동생은 아버지 말씀이 진짜인 것 같다고 했다. 저번에 아버지가 지나가는 말로 한 번 그런 얘기를 했었던 건 기억하고 있었는데, 설 전날에 또 이 문제를 꺼낸 것은 정말 행동으로 옮기는 게 확실해 보인다고 했다. 아버지가 사족을 달았다.
“처음엔 나랑 니 엄마, 니 동생해서 셋이 가려고 했는데... 너희도 괜찮으면 다 같이 가도 좋고.” “아버님! 가면 다 같이 가야죠. 그럼 저희 정말로 여행경비 모으고 있을게요!” “모을 게 뭐 있어. 멀리 못 가면 가까운 동남아 저가항공으로 다녀오면 되지.” “아녜요. 저희도 서원이 까지 있으니까 매월 차곡차곡 모을게요.”
나는 생각에 잠겼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무슨 계기로 그런 결심을 하셨을까. 차례를 그럼 아예 안 지내는 건가. 성묘도 안 가나. 지방도 안 쓰나.
설날 당일, 둘째 작은 아버지네(사촌동생 가족 포함)가 일찌감치 도착했다. 둘째 집 제수씨(사촌동생 아내)가 갖가지 전을 다 부쳐왔다. 전날 전 부치는 게 어른들 너무 손이 많이 가서 친정서 부칠 때 우리 집 것까지 더 해서 가져왔다고. 엄마는 화색이 돌며 너무 고맙다 고생했다 칭찬일색이었다. 반면 아버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하려면 다 같이 하지..” 말끝을 흐리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막내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가 제사 지낼 즈음해서 도착했다. 사촌동생들은 오지 않았다. 셋째 작은 아버지네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아무런 연락도 없이.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가 언제쯤 올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빠 엄마는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않았다. 오면 오겠지, 가면 가겠지.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편했다. 나중엔 이렇게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안 오는 게 편하지.
전날의 갑작스러운 선언의 전말은 차례 아침 식사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안방에는 아버지, 작은 아버지 두 분, 사촌동생과 제수씨, 그리고 나 이렇게 앉아있었다. 아버지는소주 몇 잔을 주고받으시더니 막내 작은 아버지에게 말을 꺼내셨다.
“이제 제사도 다 없애버려야지.” “그래도 제사는 지내야지 이렇게 모이죠. 없애는 건 애들이 나중에 해도 되지.” “애들한테 넘겨주면 제사 지낼 것 같냐? 너희들도 제사 안 오는데 애들은 올까?” “.................................” “제사는 식구들 모이자고 하는 건데 모여야 무슨 제사를 지내지. 둘째 너도 교회 다니잖아. 뭐 나 혼자 제사 지내도 아무 문제는 없어. 그런데 이제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냐? 이게 뭐 너희한테 와라 마라 억지로 끌고 갈 일도 아니고. 내 대에 다 정리해야 돼.”
나는 아차 싶어 떡국 한 그릇 후딱 먹고 자리를 떴다. 안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제수씨도 나왔다.
“아주버님 들어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녜요 아녜요. 난 들어가 봐야 아무 도움이 안 돼요.”
내가 낄 자리가 아니었다. 제사라는 주제 뒤에 근본적인 바탕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형제간의 문제였다. 아버지가 스물다섯 되는 해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버지가 ‘동생들의 아버지’ 노릇을 평생 해왔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대만큼 형제들은 아버지를 따르지 않았다. 아니, 저버렸다.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찾아오지도 않았고, 예순이며 칠순 잔치를 누구 하나 챙겨주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제사를 모신다는 건 자식 된 자로서 최소한의 도리였다. 그 도리에서 형제들은 늘 벗어나기 바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할머니 제사 날 밤, 아버지의 솔직한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애들한테 어떻게 했는데...” “아빠.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쓰셨어요. 앞으로 재미있게 살 일만 생각해도 모자라요. 그리고 아빠한텐 서원이가 있잖아요. 서원이랑 좋은 추억 쌓고, 앞으로 그렇게 사세요.” “그래. 맞아. 나한텐 서원이가 있다. 우리 서원이가 있다. 서원이가 있지...”
그렇게 몇 번이고 천장을 보며 되뇌었다.
아버지는 일흔 고개를 넘어가며 생활의 많은 변화를 이루어냈다. 야간 근무를 내려놓고 휴식의 시간을 늘렸다.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어 기차를 타고 전국을 누볐다. 손주와 보내는 매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그리고 엄마 말을 더욱 잘 듣기 시작했다.
“내가 요즘 친구 모임에 나가면 말이야. 누가 제일 잘난 놈인 줄 알아? 돈 많은 사람? 자식이 잘 풀린 사람? 아니야. 마누라랑 백년해로하는 사람이야.”
많은 친구들이 사별하거나 이혼하여 혼자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지금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고. 나는 돈은 없지만 새벽부터 건강음식 챙겨주는 마누라가 있고, 가정도 평안하고, 손주까지 얻었으니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새삼 돌아보게 된다고.
생각해보니 내년이 엄마 칠순이다. 아버지는 당신과 엄마 평생의 짐을 내려놓기로 작정하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