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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Apr 20. 2020

아내가 승진했다.

관료로서의 나의 아내


2020의 여름, 한참 일하고 있는데 부웅 하고 핸드폰이 울렸다.


"나 승진했대."


What? 쏜살같이 밖으로 나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짜로?"

"어. 곧 홈페이지에 뜬다고 연락 왔어."

"대애~~~~~박! 축하해요~~~!!!"

"나 일 하는 중이니까 이따 집에서 얘기해요."

"오케이!"


톡으로 각종 축하 이모티콘을 날리니 아내가 아니 나보다 왜 당신이 더 좋아하냐한다. 사실그랬다. 나는 아내가 그 간 불모지나 다름없는 곳에서 고생 고생한 성과를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것 같아 아리고도 짠했다. 가슴이 후련했다. 아내는 정말 노력했다.


나는 전주로, 아내는 완주로


작년 7월 말, 그렇게 인사발령이 났다. 우리 가정에 지각변동 수준의 쓰나미가 몰아쳤다. 차라리 같은 지역으로 발령이 났더라면 충격이 조금이나마 덜 했으련만. 하지만 희망 사항일 뿐 이미 발령은 났다.


5년 간 정 붙인 대전을 잠시 떠날 시간이 되었다.


이게 국가직과 지방직의 차이다. 지방직은 말 그대로 본인의 해당 지역, 이를테면 대전시 공무원이면 대전에서만 움직인다. 멀리 나갈 일이 없다. 특별시 정도 되면 모를까 '촘촘한' 지역사회의 망에서 돌다 보니 이동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다. 정적인 면이 강한 반면, 때로는 답답할 수 있다.


국가직은 전국 단위에 걸쳐 조직이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어디든 갈 수 있다. 보다 폭넓은 경험과 널찍한 라이프스타일을 위할 수 있다. 개방적인 면이 강한 반, 때로는 외로울 수 있다.


런데 약 부부가 모두 국가공무원이라면? 여기서 좀 골치가 아프다.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국가가 같은 기관에서 근무하도록 해주는 경우는 사실 거의 없다. 거주 문제, 주말 부부, 육아 식 등 이로 인해 생겨나는 생활의 여러 변수는 온전히 부부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집은 어떡하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이사는 어디로 가지? 사방에 그쪽 연고가 있는 지인들에게 거주 상담을 받았다. 하계휴가로 쓸 연가를 모조리 이사 스케줄에 갖다 붙였다. 우선 완주와 전주 중 아내 근무지가 있는 부터 보기로 했다.


아내 근무지 주변은 생각보다 매물이 적었다. 좋은 집들엔 대부분 토박이 주민들이 살고 있고, 그나마 괜찮은 곳에는 인근 대학의 학생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남은 거라도 보자 싶어 여기 저 문을 열었지만  나왔다. 우리  살기엔 부족함은 없지만 요 한 살배기 아기를 데리고 살 수 있는 환경는 아쉬움이 남았다.


전주로 넘어오자 거주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 자. 일단 우리가 여기에 뿌리박고 살 게 아닌 이상 세 가지 기준을 두기로 했다.


첫째, 아이가 자연과 문화를 최대한 가까이서 만끽할 수 있는 장소로 정할 것. 둘째, 각자의 사무실을 양 종점으로 찍어 가급적 중간지점으로 잡을 것. 셋째, 예산 가용 범위 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전세를 잡을 것.


아내 근무지와 가급적 가까운 곳의 아파트부터 둘러봤다. 20여 년 된 아파트들 치고 가격이 굉장히 싸고 매물도 많았다. 심지어 34평짜리 아파트 전세가 1억 3천에 나왔으니 입이 벌어질 만도 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고개를 저었다.


뷰가 엉망이다.


돌아본 아파트 전부 주변이 죄다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었다. 건물 다음 건물 또 그다음 건물. 매트릭스 영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대전 샘머리아파트와 비교해 봤을 때 사실 어떻게 보면 구조상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우리가 지금 사는 집 앞도 옆도 다 아파트였다. 그러나 결정적인 한 가지. 그 한 꺼풀만 벗기면 그 주변이 모두 공원, 수목원, 예술시설 등이었다. 여긴 공원조차 없었다.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는 것만 봐도 애 키우기 좋을 환경일지 아닐지는 바로 판가름 난다.


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소유주였다. 집주인은 누군가요 물으면 '아 작은 회산데 탄탄하고 문제없어요.'라든지, '할머니세요./여기 분이세요?/아니 멀리 사세요./ 이 집만 갖고 계세요?/ 이 주변에 많이 갖고 계시죠~ 좋으신 분이에요.'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웃으며 답했다.


다음에 올게요.


갭 투자자들이었다. 전북혁신도시, 에코시티가 들어오면서 원도심의 상당 인구가 그리로 넘어갔다. 중심가의 힘이 빠지면서 집값이 폭락한 것이다. 극심한 손해를 본 이들은 집 인테리어 바꾸기에 한창이었다. 집을 보여주며 중개인들이 "지금 낮을 때 아예 사시는 것도 좋아요" 운을 띄운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내와 함께 차에 탔다.


내일은 더 내려가 보자.


'배산임수'의 집을 찾았다.


지도로 설명해주는 공인중개사를 만났다. 무작정 집부터 가지 않고 동네 특성 하나하나, 출퇴근 편의 도로, 주요 인프라까지 세세하게 짚어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설정한 세 가지 조건에 얹어 갭 투자 아닌 현지인이 소유주인 곳을 소개해 달라했다.


이른바 전주의 입시촌이라고 하는 동네의 아파트부터 봤다. 뷰도 썩 나쁘지 않고 이것저것 있을 건 다 있어 보인다. 음 나쁘진 않군 속으로 끄덕이는데 어? 그런데 저기 너머 천이 보인다. 저게 전주천이구나.


"사장님. 저~~. 저기 너머 전주천 있잖아요. 그 바로 앞에 단지! 거기도 물건 있을까요?"

"아. 네네~! 잠시만요. 전화 좀 드려볼게요!"


결국 우린 전주천이 훤히 내다보이는 아파트로 이사 왔다. 옆에 기상청이 있어 고도제한으로 주변 건물이 낮아 하늘이 트여 좋았다. 무엇보다 새를 유독 좋아하는 아들 녀석이 바깥 구경하기에 더 없는 조건의 집이었다. 집은 서남을 향했다. 뒤에는 가련산이 등을 지고 코 앞에 덕진공원이 있었다. 가히 '배산임수'라 할만했다.

가계 예산의 무리를 더 해서라도 와야겠다 결심했다. '공무원 집성촌'이나 다름없던 샘머리아파트의 따듯한 이웃들을 두고 와야 한다면 그에 따른 심리적 보상이 우리에게도 필요했다. 큼지막한 창문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맑은 물 가운데 물고기를 뒤적거리는 백로를 보는 맛이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공교롭게도 집에서 각자의 직장까지 걸리는 시간이 거의 비슷했다. 소나타로 차를 바꾸면서 전에 타던 라세티를 싹 손 보고 후방카메라를 달아 아내에게 인계했다.

아내는 이사할 때마다 인생의 한 시즌이 끝나는 것 같다고 했다. 과연 그 말이 맞다 싶었다. 입사 후 대전 괴정동 원룸에서부터 용문동 관사, 결혼 후 중촌동 주공아파트, 샘머리아파트를 거치는 동안 열일-연애-결혼-출산-육아의 과정을 밟았다. 우리 아들은 이 뜨거운 2019년의 여름을 씩씩히 건너 우리와 함께 전주로 넘어왔다.


아내는 무에서 유를 만들었다.


국가직 중에서도 연구직은 세부 전공이 있다. 그 세부 전공에 따라 보통 갈 곳이 정해진다. 나는 전공을 찾아 소속기관으로 왔다. 그러니까 나는 내 자리 찾아온 거다. 하지만 아내는 아니었다. 행정직이었다.


행정직은 전국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직급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책임은 더욱 막중해지기에 국가가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명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러 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그나마 전주와 완주는 맞붙은 지역이니 우린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아내의 입장에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제 막 신설된, 아니지 신설되려고 하는 소속기관으로 발령이 난 거다. 이건 황무지에서 호미 낫으로 밭을 일구는 수준의 노동력이 필요한 자리였다. 사실 더 높은 직급이 왔으면 좋았겠지만 아내는 불평하지 않았다. 불철주야 일하면서 모르는 건 묻고 아는 건 빨리빨리 해치워 나아갔다. 야근은 일상이었다. 너무 우직해서 복장이 터질 때도 있지만 지는 건 어디까지나 가끔이었다. 아내는 직장 선배로서 배울 점이 많았다.


지난 반년을 돌이켜본다. 아내가 승진하니 이제야 좀 정착한 맛이 나는 것도 같다. 아내의 승진 날, 우린 짜장면에 짬뽕, 탕수육을 시켜먹었다. 우리 여보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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