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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Jan 12. 2020

나는 이름을 세 개 가지고 있다.

아빠의 작명관 


내 이름은 세 개다.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일들이 종종 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선천적인 것들과 내가 어찌할 순 있지만 정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후천적인 것들도 있다. 그것들은 살면서 종종 나의 삶을 복잡다단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이름도 그중 하나다.


버전 1. 족보상 이름

설날이 되면 매번 들춰보는 족보. 항렬대로 나는 '빛날 희'자를 써서 '석희'로 족보에 올라가 있다. 실제 종친회에 가면 '석희입니다' 해야 한다. 중성적인 맛도 있고, 색다른 면이 있어 싫지는 않다. 그래도 낯간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옆에서 나이 지긋하신 분이 와서 '석희 대부님' 이러면 이건 뭐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에 빠지게 돼서 종친회 사람들은 가급적 만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버전 2. 호적상 이름

호적상 이름은 아버가 지었다. 본래 항렬대로 가면 '빛날 희'를 써서 '석희'가 된다. 그러나 아버지는 족보에만 그리 남기고, 호적에는 '공 훈'을 썼다. '클 석'에도 '모든 백' 두 개가 들어 있는 데다가 '빛날 희'를 쓰게 되면 마치 태양이 내리쬐는 새하얀 눈길을 걷는 것과 같아 당사자도 힘들고 주변인과도 섞이지 못하여 인생의 부담이 가중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생활 속에서는 소소한 공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결국 '공 훈'자를 택하여 '석훈'이 탄생했다. 


버전 3. '엄마 소원용' 이름


거기에 얹어 엄마는 '글월 문''주석 석'자를 써서 '문석'이라는 이름을 받아왔다. 처음엔 어처구니가 없어 대체 그건 누구한테서 받아온 거냐 물으니 '옥인동 이모부'이란다. '옥인동'은 엄마의 친구인데 이름 대신 서로 간에 택호로 부르 그 댁 부군은 자연스럽게 나의 이모부가 되어버렸다.


그거 왜 받아왔냐고 물으니 엄마 왈, 이름에 금이 있어야 재물이 따른다는 이유에서다. 엄마는 아예 '강문석' 이름을 쇠수저에 새겨 나에게 선물이라고 주며 무조건 이 수저로 밥을 먹으라고 했다. 이것 때문에 한창 전쟁을 치렀지만 효도가 별 것인가 하는 생각에 내가 결국 졌다. 그래서 엄마가 '석훈 아빠'하고 아버지를 부르면서도 '문석아'하고 나를 부르는 것에 대해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만다. 나는 앞으로 죽으면 무슨 이름을 비석에 세워달라고 할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호적상 이름만큼 마음에 드는 게 없다. 그게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불려진 진짜 이름이니까.

내 아들의 이름은 아버지에게 받았다.


서원이라 지었다.

아버지가 내려준 이름들 중에 우리가 택했다. 아내는 다른 한 이름을 두고 고민을 좀 했지만 결국 나의 확신으로 결정했다. 이미 태어나기 전, 아버지가 생각해 둔 이름 중 하나이다. 양 집안에서 좀 불안한 내색을 비쳤다. 사주팔자로 생년 월시도 따지지 않고 짓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 작명관은 ‘보통사람’이다. 아기의 역량도 모르면서 큰 욕심이 담긴 이름을 줬다가는 무거운 짐을 안겨주게 되고, 반대로 너무 빈 글자를 주게 되면 자신의 역할을 못 찾고 어려움에 처한다. 그러므로 이름의 강약을 적절히 찾아 중심을 맞추도록 한다.

‘상서로울 서’가 좀 약하다는 주변의 의견이 있었다. 그런데 이미 성은 강이고, 끝 자는 장자에게 주는 으뜸 원이므로 가운데 글자는 부드럽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조화롭다고 생각하 이것으로 정했다.


아내는 '신우'라는 이름도 좋아했다. 족보상 이름을 그냥 쓰는 건 어떻겠냐 했다. 나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이름 자체가 너무 내부로 수렴되는 느낌이 강하고 남성적인 느낌이 상당히 세서 본래 정한 대로 가는 것으로 했다.

 

아버지가 내려오셔 직접 쓰신 첫째 아들의 두 이름을 주셨다. 하나는 살면서 쓸 이름, 다른 하나는 족보에 올릴 이름이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글씨를 본 건 이십 년도 넘은 것 같다. 붓이 부러지도록 밀어붙이는 철철한 서체는 온데간데없고, 여기 앙상한 뼈만 남았다. 살은 다 발라내고 남은 최후의 흔. 실린 듯 만 듯, 부는 듯 마는 듯, 쾌창한 겨울 하늘 공명한 나무 한 그루. 칠십 고개를 넘어가시는 아버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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