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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Apr 05. 2020

여보. 그 집 절대 팔면 안 돼.

82년생 풋내기 가장



대전은 최근 5년 사이 새 아파트 분양이 맹렬히 일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일단 넣고 보자'는 바람이 불었다. 이런 분위기 속서도 우리 부부는 별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 둘 다 부동산에 대한 학습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돈도 없었다. 그래서 모험도 하기 싫었다. 우리 순 자산을 다 쥐어짜도 1억은커녕 어림도 없었다. 3~4억대의 새 아파트를 사면 평생 돈만 갚다 끝날 것 같았다. 생각의 끝은 늘 질문이었다. 굳이 내 집이 필요할까?


"그거 되면 로또야! 무조건 넣어야지!"

"거기서 누가 산대? 세를 줘! 아니면 피 받고 팔아!"

"세종은 늦었어. 대전이라도 잡아야지!"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 '네 뭐 하하 그렇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내 집이 필요 있다를 설명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지만 이런 류의 내용은 나를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해줄 만한 것들이 못되었다.


아이가 돌을 넘긴 2019년의 봄, 아이 책을 정리하다 더미 속에서 툭 떨어진 책 하나를 주워 들었다. [아기돼지 삼형제]. 죽 읽고 나서, 그때 비로소 집을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 아이를 위험에서부터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집. 훗날 부모님을 편히 모실 수 있는 집. 가족이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도읍'으로서의 집.


집을 사기에 조금 늦은 감은 있었다. 앞으로 들어올 아파트는  평당 1,400-1500을 기본으로 넘기는 고가의 물건들이 득실득실했다. 그때 아내가 중촌동 '카드'를 꺼냈다.


여보. 우리 신혼 살던 중촌동에 새 아파트 들어온다는데 거기 분양 넣어보는 건 어때?


중촌동은 서구와 중구 경계에 있는 구도심의 끝자락이었다. 대전 주민에게 물으면 갸웃갸웃 맛만 다시고, 친한 직원들도 거긴 위치도 별로고 학군도 별로인데 구태여 왜 하는 얼굴을 지었다. 넣겠다는 사람이 주변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그곳은 평당 1,100이 채 되지 않았다. 아내에게 말했다.


"넣자."

"그럴까?"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거고. 넣어서 안되면 그만인거지뭐. 그리고..."

"뭐??"

"되면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을 것 같아."

"뭐가 좋은데?"

"그건 되고 나서 봅시다."


작년 5월의 밤이었던가. 아내가 초조하게 담청자 공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시가 되자 아내가 5G 속도로 접속했다. 그리고 한 숨을 쉬었다.

역시 난 운이 없어.


그게 어디 쉽나 아무리 비인기 아파트라도 경쟁이 없는 건 아니니까 하며 아내를 달랬다. 아내가 바로 내 핸드폰을 뺏어갔다. 그리고 바로 비명을 질렀다.

자기~~~~ 됐어! 됐어! 세상에 우와~~~ 됐어 됐어! 이거 봐봐!!!


나는 내가 당첨된 것보다 아내가 저토록 흥분하는 게 더 놀라웠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생애 첫 분양 당첨이었으니까. 그리고 로열동에 로열층이 되었으니까.


수십 가지 서류더미를 뗐다. 점심시간, 외출시간을 이용해 아내와 함께 은행을 찾아가 수많은 대출 절차를 밟았다. 평생 만져보지도 못한 수억의 돈이 전산으로 이동했다. 모델 하우스에 양가 부모님을 모셔보여드리고, 부지 현장 주변을 돌았다. 밤이면 지도를 보며 주변 상황을 살폈다. 알지도 모르는 여러 경제 용어들을 익히며 이해를 더했다.

이런 게 어른들의 일인 건가.


해를 넘기고 전매제한이 풀리자, 여공인중개사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처음엔 '이만큼 올랐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 파세요' 친절 모드였다가, 다음은 "더 올랐습니다. 지금이 적기입니다. 얼른얼른' 구애 모드로 변했다. 이제는 '부동산 경기 안 좋습니다. 진짜 마지막이에요. 파세요' 위기 모드로  뀌었다. 아내가 넌지시 물었다.


"자기. 이거 팔고 빚 고 깔끔하게 살면 어때? 그리고 매월 돈 모아서 나중에 집 사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 가계에 너무 무리도 많이 가고... 어때?"

"이 집은 절대 팔면 안 돼."


돈 모아 사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마치 다이어트해야지 결심하는 것과 비슷한 말이다. 빚을 내서 그 빚을 억지로라도 갚아서 순 자산으로 만드는 게 돈을 모으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물론 집값이 폭락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을 전제로 두고 하는 말이다. 만에 하나 폭락한다 해도 우리가 살기 때문에 치명적인 문제는 되지 않는다.


전세살이는 너무나 변수가 많다. 남의 집을 빌려 쓰며 수십 년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데 쓰이는 비용과 체력, 스트레스는 이미 경험한 바가 있다. 탄탄한 내 집을 보유하고 움직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평생의 안식이 될 것이다.


인구가 줄고 있다. 수도권은 아직도 확장세이지만 당장 광역시로만 내려와도 무리한 확장보다는 고쳐 쓰는 방식으로 개발방식이 바뀌고 있다. 원도심 회복 계획이 최우선 과제로 꼽히고 있다. 집 앞으로 역이 생긴다. 광역 철도와 교차한다. 최근 균특법 통과로 대전 원도심 개발이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길게 보면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코로나 19 사태로 내 결심은 확신이 되었다. 미세먼지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고, 앞으로 어떤 바이러스가 창궐할지 모른다. 위생과 방역으로부터 보다 안전하게 살아야 한다. 집에서 몇 날 며칠을 견뎌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래서 내 집이 필요하다.


지자체도 언제까지나 정부지원만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인프라와 지원 능력이 충분한 곳으로 인구가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격리 사회'로 진입하면 이동수는 더 줄어들 것이다. 비정상적인 인구수를 자랑하는 수도권의 아성도 그리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우린 서울에서 한 발 물러난 대전에서 터를 잡고 이후의 삶을 개척하면 된다.


내 집이 없는 삶은 위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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