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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Aug 27. 2020

축하드립니다! 둘째도 아들입니다라고요?

82년생 육아 대디



화장실 문이 빼꼼 열렸다. 아내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아유. 그럴 줄 알았다. 


"여보~~~ 두 줄이야~~~~~"
"그래! 내가 뭐라고 했어!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둘째가 이렇게 옵니다!"


5월의 봄, 우리에게 둘째가 다.


아내는 둘째를 간절히 원했다. 나 역시 '그래도 둘째 있어야 첫째랑 오손도손하지' 하는 마음에서 아내의  바람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리에  둘째가 필요한가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없었다. 나도 여동생이 있고, 아내도 오빠가 있고. 남매 생활로 평생을 보냈으니 우리 당연히 딸이든 아들이든 둘째까진 낳아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속도의 차이는 었다. 나는 순풍을 타고 천천히 배의 키를 몰아 두 번째 대륙에 도착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쾌속선을 만들어 선원을 다그쳐서라도 하루 바삐 대륙에 도착하기를 바라며 '돌격 앞으로!'를 외쳤다. 원은 바빠지고 하늘에선 천둥번개가 치고 선장과 선원 모두 파도 위에서 함께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추긴 변수가 있었다. 아내 주변의 맘들이 첫째를 낳기 무섭게 바로 둘째를 가지고 이듬해 순서표라도 받아둔냥 차례차례 순산하는 터에 아내 마음에 잔뜩 먹구름이 꼈다. 

"왜 나만 둘째가 생기지 않는 걸까?"


너무 초조해하지 마라, 사람마다 다르다, 난임 부부들도 한번 봐라, 그 무슨 이야기를 해도 아내의 귓속엔 하나만 들렸다. 


내 둘째는? 


찬물을 끼얹는 병원의 '오진'도 한몫했다. 의사가 아내 난자의 나이가 이미 자연수정이 힘든 늙은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진단 내린 것이다. 아내는 그날부터 죽상이 되어서는 핸드폰 이곳저곳을 뒤지며 시험관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보 이제 자자 그만." 소리에도 아내는 어둠 속에서 불빛을 끌 줄 몰랐다. 


시험관도 이제 지원금이 많네.
운동 열심히 해 자기.(난 검사로도 멀쩡한데)
그냥 우리 서원이한테 둘째 사랑까지 줄까?
입양은 어떻게 생각해? 


아내는 머릿속이 하얗게 타버렸지만 사실 난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태평하냐고 타박을 줄 때마다 나는 "생겨. 걱정 마!"로 일관했다. 어떻게 아냐 물으면 간단히 답했다. 


감으로 알지.


까마득한 총각 시절, TV 소리 병풍 삼아 아빠와 술 한잔 마시는데 무슨 프로그램에서 청소년 교육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가 나왔다. 아빠가 저런다고 애가 말을 듣겠냐 한바탕 호탕하게 웃었다. 


"애는 때린다고 마음이 고쳐지지 않아. 말할 때도 절대 욕을 섞으면 안 돼. 알았지?"

"애가 저렇게 기세 등등한데 저걸 오냐오냐 해서 뭐가 되겠어요?"

"아냐. 애는 그렇게 키우는 게 아냐. 특히 아들 낳으면 절대 때리지 마라."

"아참나. 결혼도 안 했는데 아들인지 딸인지 어떻게 알아요?"

"첫째는 아들이야."

"하하하. 아빠가 하느님이에요 그걸 맞추게. 아니 그러다가 딸딸딸 나오면 어떡하려구요?"

"아들이 첫째로 나오게 되어 있어."

"점 봤어요?"

"내가 그런 거 언제 보냐? 그냥 아는 거야."


그냥. 


그냥이라는 말이 대충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걸 첫째를 낳고 느꼈다. 아니 그냥. 바람도 아니고 예감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내림도 아니고 그냥 어떤 느낌적인 느낌 그런 것. 


아내가 서원이를 낳고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녀가 둘째를 가질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느꼈다. 원체가 어디 아픈 체질도 아닌지라 병원도 건강검진 외에는 다닌 이 없었던 데다, 작년 하반기의 폭풍 같은 야근 생활을 마치고 아내는 올봄 쑥쑥 기력을 회복했다. 주말이면 산이며 들이며 놀러 가자 졸랐다. 


왔네. 왔어. 


임밍아웃 후, 많은 분으로부터 축하의 연락이 닿았다. 특히 둘째를 낳은 비슷한 또래의 지인들과 직장 동료로부터 깨알 같은 이모티콘과 잔잔한 선물들이 도착했다. 아내는 개선장군이 되어 '둘째 맘 모임'의 당당한 멤버로 자리에 입성하여 따발총 같은 수다 타임에 몰입했다. 톡톡톡톡 빛 사이로 막 지나가는 메시지 입력 소리에 우핫핫핫 아내의 흡족함이 배어 있었다. 


축하인 듯 축하 아닌 축하 같은 축하를 해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건, 말 끝에 꼭 이 질문을 붙인다는 점이었다. 


"근데 말야. 둘째는 계획한거야?"

물론이라고 했다. 의아해하는 사람, 당혹스러워하는 사람, 근심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았다. 두 호 담긴 얼굴을 지어 보였다. 

 '대체 그런 계획을 왜..?'

조언인지 조연을 하려는 것인지 조바심을 내는 것인지 당최 모를, 그들은 둘째가 세상에 나왔을 때 펼쳐질 음울한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그래도 축하해'라는 자막과 함께. 

그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우릴 지켜보는 그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모두 둘째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 이들에게 우리는, 적어도 자신들이 가보지 않은 두려운 길을 걷는, 그러니까 '그 소문에 의하면 그 동굴에 거대한 용이 사람들 잡아먹는다는데!' 하는, 지옥의 가시덤불 숲을 향해 걷는 가여운 사람이다. 


내 주변에 둘째 있는 집은 아무것도 못한다더라, 부부끼리 싸우느라 바쁘더라, 내 생활은 아예 없다더라, 넌 이제 집콕 인생이 펼쳐질 거다, 이거 들은 이야기만 잔뜩 모아서 한 보따리를 안겨주는데 풀어보면 모두 두려움의 택이 붙어 있었다. 


그래 맞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겠지. 어쩌면 더 할지도 모르지. 그런데 말이다. 지금도 휴일이면 나는 반나절은 아무것도 못 한 채 종일 집 청소를 하고, 평소엔 집에 오면 애랑 놀기 바쁘고, 설거지하고, 빨래 널고, 분리수거하고, 아이와 목욕 놀이하며 집콕 생활을 한다. 이 생활 앞으로도 계속된다.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 팔뚝만한 몸이 내 품에 감길 때 닿는 황홀경,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갓난아기의 숨소리를 고요히 새겨듣는 클래식, 속싸개 겉싸개에 남은 아기아기 한 그 향내를 기대하는 맑은 더 끈끈하게, 아침이면 아내와 아이들 챙겨 어린이집 보내고, 우당탕탕 저녁밥 먹이고, 울면 달래주고, 물어보면 가르쳐주고, 함께 노래 부르고, 같이 블록을 쌓아 올리고, 아이들이 웃으면 나도 한 번 더 안아보는 것. 내가 꿈꾸는 건 그것이다. 



아들이냐 딸이냐


"또 궁금하신 거 있으세요?"

"아 선생님. 진짜... 아들 맞죠?"

"자... 네 여기 보시면 가운데 볼록 나온 거 보이시죠? 네. 이게 없어질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겠구요 네. 보시는 그대로 네. 그쵸? 아이구 엄마 고생하시겠네. 하하하. 축하드립니다."


선생도 내 질문에 말이 막히는 건지 자꾸 중간중간 네네네를 추임새로 넣었다. 아 고구마. 아내는 초음파실에서 얼굴을 감싸 쥐고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여보."

"어."

"둘째도 서원이 같으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집에 가구랑 티비 좀 몇 번 갈고 그렇겠지."

"아~~~ 나만의 계획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아~~~"

"근데! 좋은 점은 있어!"

"뭔데?"

"집에 도둑은 안 들 거야."

"아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역시 아들 말대로 아들이었다. 얜 무슨 느낌이 있었길래 주구창장 아들이야 아들이야 박박 우겼을까? 기가 차서 아들 녀석 머리만 쓰담쓰담할 뿐이다. 양가에 전화를 걸자 움짤의 정적 뒤 '아이고' 웃음소리뿐이다. 아내도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나도 말로는 어느 쪽이든 좋다고는 했지만 막상 아들 둘을 키운다는 미래를 생각해보니 어떤 그림이 그려지질 않아 그냥 허허 웃고 말았다.

솔직히 딸일 가능성이 높겠거니 했었다. 둘 다 남매지간에 양가를 봐도 거의 다 우리대가 남매지간인지라 그 확률에 기댔던 것 같다. 남매로 살아온 나로서는, 그리고 아내로서는 어벙벙하기만 하다. 이것이 지금의 솔직한 감정이다.

나에게 확실히 좋은 것이 있다면, 나이 먹어 술 같이 마셔 줄 남자가 한 명 더 늘었다는 것이다. 그건 정말 값진 일이다. 다 늙은 노인네 친구도 얼마 없어 적적하면 비라도 오는 날엔 아들 녀석들 불러다 놓고 잔잔한 안주에 좋은 술 따서는 콸콸 나누어 마시는 상상을 해봤다. 와.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아내는 나이 먹어 옷 사러, 쇼핑하러 함께 갈 딸이 없다는 사실에 기분이 꽤 가라앉은 모양이다. 그렇게 딸 노래를 부르며 옷이고 인형이고 소품이고 가구고 인터넷을 누비며 반짝반짝하던 그녀의 눈이 가로등불이 되어 버렸다.


"여보."

"어."

"나 할 말 있어."

"뭔데?"

"이번 추석...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추석에 서원이 데리고 서울 다녀오면 안 돼?"


음. 낮엔 아들 데리고 한판 승부 놀이로 꽉 차게 시간을 보낼 자신은 있었다. 그런데 과연 엄마 없는 서원이가 밤에 잠들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달리 무슨 수가 있겠는가?


"어. 자기 편한 대로 해."

"진짜? 그럼 자기가 서울 집에 얘기해줄 거야?"

"그거야 뭐 어렵지 않지. 그리고 추석이면 벌써 만삭인데 서울을 어떻게 가? 자긴 그냥 쉬고 싶은 대로 쉬어."


아내는 그제야 기분이 조금 풀렸는지 무얼 할까 또 다른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날 밤, 나는 모두 잠든 후에 서재에 들어와 위스키 잔을 빙빙 돌리며 내 딴에 장성한 아들들의 모습을 그려봤다.


아들 있는 집 치고 화목한 집이 있던가?


한 친척 형제들을 긴 세월 봐 왔지만 둘 사이가 그렇게 소원해 보일 수 없었다. 동창 친구네를 봐도 형이 사회적으로 돋보이게 성공한 바람에, 내실 있게 자기 진로를 개척한 내 친구는 형의 그늘에서 평생을 묻혀 살았다. 뉴스에서는? 대기업 회장의 두 아들이 권력 독점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것만 생각난다. 없는 집구석에서 설마 하지만 설마가 사람을 너무 많이 잡아서 나의 기우는 새벽으로 갈수록 커져만 간다.


'삼국지의 아들들'도 충분히 참고해볼 만하다. 원소의 아들 원담, 원상은 아버지 사망 이후 극심한 대립 속에서 다투다가 결국 둘 다 조조의 수하에게 명을 바쳤다. 유비의 아들 유선은 자수성가한 아버지의 받침에서 자라 자기의 보신에만 능할 뿐 나라를 이끌 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결국 승상 공명의 사망 이후, 최전방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장수들을 지원해주기는커녕 위나라 제대로 싸움 한 번 못하고 항복한 후 제 일신을 도모했다.


자식 농사에 그나마 선방한 것은 조조뿐이었다. 조조는 아들이 셋이었다. 장남 조비, 차남 조창, 막내 조식. 셋 다 아버지의 다인격체를 골고루 나눠 받았다. 조비는 노련한 정치력을, 조창은 전장에서의 지휘력을, 조식은 문장가로서의 예술성을.


물론 내 아들들이 역사서에 남을 난세영웅이 되길 바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역사를 거울삼아 각자가 가진 개성을 잘 간직하고 키워 자신의 꽃을 소중하게 가꿀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하지만 바람은 희망일 뿐, 당장 우리 아버지 네 형제들만 봐도 골치부터 아파온다. 우리집 강씨는 대개 자아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 상대의 의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고약한 성질이 뼛속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항상 그 오만함을 경계하여, 타협할 줄 알고 원만한 관계 지속을 꾀하는 엄마를 삶의 모델로 삼아왔다.


첫째가 그노무 강씨의 씨알머리도 안 먹히는 고집불통 승질을 이어받은 것 같아 나는 늘 노심초사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그렇게 엄마 배를 뻥뻥 차더니 나와서도 호기심 천국에 기세 등등한 그 모습 그대로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차분하고 사색하는 둘째가 나왔으면 좋겠다. 둘의 성질이 같으면 보통 밀어내거나 충돌하기 마련이다. 첫째와 둘째가 서로 다른 캐릭터로서 융화되어 살아갔으면 하는 거다. 주변에선 말한다.


셋째를 딸 낳으면 되지.


셋째가 딸일 법이란 건 어디에 있지? 없다. 반대로 셋째가 아들이라면? 아마 우리 아내는 까무러칠지도 모른다. 만약 셋째가 생기고, 셋째마저 아들이라면? 난 차라리 잘 된 것일 수도 있다 뭐 이런 활짝 열린 마음으로 갈무리하련다. 그럼 어떡하냐? 아기돼지 삼형제 책을 거울삼아 세 명의 주니어들을 키우면 된다. 물론 뭐 김칫국부터 마시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다.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자연적인 것에 깊이 감사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아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지금은 그것에 집중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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