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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Feb 09. 2020

장모님의 문방구를 물려받았다

82년생 종손의 아들


마흔의 멋


스물여덟 여름, 나는 이미 서른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운동량을 늘리고,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그림을 많이 그렸다. 아무거나 다 그렸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진짜 서른을 맞이했고, 별일 없이 삼십대를 보냈다.

작년 말부터 마흔이란 무게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내 인생엔 원래 20대까지밖에 없었는데. 어어어하다가 서울을 떠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린 서른아홉의 한 가장이 되어 있었다.

사십 대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야 할까? 어떻게 살면 멋있을까? 사십 대에 무슨 멋을 찾고 자빠졌냐고 하면, 지금 자빠져 있는 이유가 배 나온 토실토실 아저씨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그래서 멋을 다시 찾으려고 하는데 그 멋이 소싯적 멋은 아닌 것 같아 두리번거리 거는 중이라고 답할 밖에.




다시 그림을 찾아 들어왔다. 글씨도 쓴다. 무엇을 그리던 무엇을 쓰던 다 내 마음이다. 아내는 학원을 다녀보면 어떻겠냐 물어 나는 누구에게 배우고 싶은 생각이 현재로선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내 멋을 찾고 싶지 누구의 멋을 따라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 개멋이라도 내 멋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래서 이른 새벽이면 종종 일어나 먹을 간다.



정초, 광주집에 가니 장모님께서 낡은 나무 상자 하나를 꺼내어 주신다. 이게 무엇인가 열어보니 벼루다. 더불어 사군자 치는 기초 방법론에 관한 책도 가져다주신다.


"자네 요새 그림 그리길래 내가 젊었을 적에 쓰던 건데 이거 자네 쓰소."


집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씩 어머님 '소싯적'에 그리신 소녀상들을 마주할 때가 있었다. 집안의 종부로 시집와 수십 년을 오로지 집안 꾸리기에 전념하신 와중에도 그때의 꿈은 여전히 간직하고 계셨구나. 잘 그리신다. 내 때 태어나셨으면 취미로라도 온전히 끌고 나가셨을 텐데 하는 감탄 반, 탄식 반 가슴에 아쉬움이 괸다.  



뽀얀 먼지가 내려앉은 벼루며, 먹이며, 먹잡이며 모든 것이 정겹다. 무엇보다 벼루와 먹이 커서 좋다. 사실 그리는 것보다 먹을 가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무념무상에 젖어 오로지 검고 맑은 창을 바라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겐 많은 안식을 준다. 휘어진 먹을 잡고 그 방향에 맞춰 하염없이 젓는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마음의 거울을 보는 것이다. 아내는 왜 이렇게 그림에 여유가 없느냐 하는 감상평을 내놓았는데 나는 그게 좋다고 했다. 그게 지금 내 심정인 것이다. 무심코 그리면 나도 모르는 사이 화면이 트이지만 잘 그려보겠다고 작정하면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내 욕심의 자국이 그대로 종이 위에 드러난다. 그럼 이야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한 사오십년 해 볼만한 깊은 등산이다 싶은 막막함이 더 모험심을 자극한다.  



동이 트고 하늘이 켜진다. 거실이 온통 먹향으로 가득하다. 이 새벽의 주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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