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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Jul 20. 2019

아이스커피의 계절

  7월하고도 중순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커피숍에서 아이스커피를 테이크 아웃하여 마시며 회사로 돌아왔다. 그런데 출입문 옆 벽과 창문 사이의 대리석 위에 청개굴 군이 천연덕스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어, 어떻게 여기에…….”


  나는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사진을 취미로 삼은 이후로 여름이면 연꽃 피어난 연못에서 청개굴 군을 찾아 얼마나 헤매었던가. 연잎이나 연꽃이나 연밥 위에 살포시 앉아 있는 청개굴 군을 얼마나 사진에 담고 싶었던가.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그것도 도심에서 만나게 되다니…… 그다지도 만나기 힘든 존재를 대하게 되니 반가움보다 놀라움이 앞섰다.


  “어, 뭐야! 혼자 마시기야?”


  청개굴 군은 다짜고짜 시비조로 말을 건네곤 나를 흘겨봤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의 여우처럼 ‘안녕, 난 여우야. 넌 이름이 뭐니?’ 같은 부드러운 말 건넴 같은 건 청개굴 군의 머릿속엔 없는 것 같았다.


  “아, 미안…… 널 이렇게 갑자기 만나게 될 줄 몰랐어.”


  나는 변명하듯 얼버무렸다. 몹시 만나고 싶었던 귀한 분인지라 고분고분 대할 필요가 있었다. 


  “칫, 치사빤스네.”


  헉, 저런 말은 도대체 어디서 듣고 익힌 걸까. 하긴 도시에서 생활하면 청개굴 군의 귀에도 저런 종류의 말들이 무시로 들려오긴 할 게다.


  “그럼…… 커피숍에 같이 갈까?”


  나는 저 앞에 보이는 커피숍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흥, 그런 곳은 답답해서 싫어.”


  역시 소문대로 까다로운 성격인 것 같다. 저 옛날부터 엄마 말 안 듣기로 유명하지 않던가. 청개굴 군은 내 손에 들린 아이스커피를 힐끔 바라보면서 꼴까닥 군침을 삼켰다.


  “아, 이런…… 미안. 그럼, 이거라도…….”


  나는 송구스러워하며 컵을 대리석 위에 올려놓았다. 다행히 아직 다 마시지 않았다. 인간의 입으로는 두세 모금 남았지만, 개구리에겐 꽤 많은 양이다. 청개굴 군 몸의 세 배 가량의 부피만큼이 남았다.


  “칫, 눈치 한 번 되게 빠르네.”


  청개굴 군이 다시금 눈을 흘겼다. 나는 땀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땀을 흘리는 것이 더위 때문인지 민망함 때문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미안. 내가 눈치가 좀 없어서…… 그래서인지 여자를 만나면 자주 핀잔을 듣곤 해.”


  “자랑이다, 자랑이야. 인물 났다, 인물 났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청개굴 군은 폴짝 뛰어 컵 위로 올라앉았다가 컵 안으로 첨벙 내려앉았다. 그러곤 꿀룩꿀룩 소리를 내며 남은 커피를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바닥이 드러나자 끄억 트림을 하곤 다시 폴짝 뛰어올라 컵 위로 올라앉았다. 


  “나…… 사실은…… 이거 처음 마시는 거야.” 청개굴 군은 그제야 실토를 했다. “근데…… 기분이 이상해. 정신이 개굴개굴해야 하는데…… 말똥말똥해. 이러다 말똥이 되는 건 아니겠지?”


  어디서 배웠는지 이번엔 아재개그마저 구사했다. ‘정신이 개굴개굴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개구리가 되어 보아야 이해를 할 수 있으리라. 


  “저기…… 잠깐 사진 좀 찍어도 될까?”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나? 나를 왜?”


  청개굴 군이 눈을 끔벅거리며 의아해했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게 영광스러워서.”


  “칫, 하긴 내 자태가 우아하긴 하지. 허락해 줄게. 빨리 찍어.”


  나는 자동차 문을 열고 카메라를 꺼내었다. 전원을 켜고 조리개와 셔터속도를 신속하게 조절한 다음 셔터를 눌렀다. 그냥 사라지면 어쩌나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이었다. 


  “이제 됐어?”


  “응, 고마워.”


  그러자 작별인사를 할 시간도 주지 않고 회사 옆에 자리한 공터로 폴짝 뛰어 사라졌다. 오랫동안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공터엔 풀들이 무질서하게 자라나 있었다. 그동안 별 의미 없었던 공터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지겹도록 보아왔던 청개구리를 만나는 것도 이제는 쉽지가 않다. 그러니 청개구리가 아무리 까다롭게 굴더라도 인간은 그들의 말과 행동에 고분고분해질 필요가 있다. 그들을 희소하게 만든 게 인간이니까. 인간이 그들에게 행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지금껏 살아남아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를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밤에 개구리들이 시끄럽게 울어대더라도 짜증내지 마시기를. 개구리 울음 소리 없는 여름이 어디 진정한 의미의 여름이겠는가. 그리고 기억해 주시기를, 그 중에는 아이스커피를 마신 탓에 잠이 안 와서 울어대는 청개굴 군도 끼어 있다는 것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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