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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위 악마 바알

악마와 철학자의 법정

by 아르칸테

제1위 악마 바알 – 자기기만과 위선

죄명: 자기기만과 위선의 죄

[악마 소개]
바알.
옛 기록에 따르면 그는 세 개의 얼굴을 가진 자라 전해진다. 인간의 얼굴, 두꺼비의 얼굴,

고양이의 얼굴. 상황에 따라 얼굴을 바꾸며, 자신의 본모습을 감춘다.
그의 능력은 ‘투명화’다. 보이지 않게 숨어들어, 진실을 피하고 책임을 회피한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인정받는 듯한 순간의 환영’, 곧 가짜 웃음과 위선으로 얻는 잠깐의 환영이다.
그가 싫어하는 것은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즉 드러난 진실이다.
오늘 그는 피고석에 앉았다.


[법정 심문]

철학자(아르칸테): 피고, 네 이름과 모습을 밝혀라.


바알: 나는 바알. 세 얼굴을 가진 자. 사람들 앞에서는 인간의 얼굴, 욕망 앞에서는 두꺼비의 얼굴,

홀로 있을 때는 고양이의 얼굴을 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나는 투명해져 아무도 붙잡지 못하게 한다.


철학자: 투명해지는 힘이라. 그 힘으로 네가 지켜온 것은 무엇이냐.


바알: 나의 생존이다. 정직한 얼굴로는 오래 살지 못한다. 세상은 정직한 자를 비웃고, 이용하며, 파멸시킨다. 나는 가면을 써야만 살아남았다. 인간의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서고, 두꺼비의 얼굴로 욕망을 삼키며, 고양이의 얼굴로 위기를 피했다. 그것이 어찌 죄가 되겠는가. 나는 단지 시대의 방식에 순응했을 뿐이다.


철학자: 바알, 네 죄명은 ‘자기기만과 위선’이다. 많은 이들이 가면을 쓰지만, 너의 죄는 따로 있다.

너는 그 가면을 진실로 믿었다.


바알: (비웃으며) 모두가 거짓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지 않는가. 내가 위선을 택한 것이 어찌 죄인가. 그것은 세상의 법칙이다. 나는 단지 방패를 들었을 뿐이다.


철학자: 방패라 부른 그 가면이야말로 너의 독이다. 가면은 순간을 지켜줄 수 있으나, 끝내 존재를 지워버린다. 너는 세상이 정직을 짓밟는다고 주장했으나, 사실은 네가 스스로 정직을 버렸다. 세상이 너를 속인 것이 아니라, 네가 먼저 네 자신을 속였다.


바알: (잠시 흔들리며) 나는... 나를 속였던 것인가. 하지만 가면이 없었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다.


철학자: 살아남았다고 말하지만, 네가 지킨 것은 생명만이고, 잃은 것은 존재다.

네가 생존이라 부른 것은 공허다. 투명해져 사라지는 힘은 너를 구한 것이 아니라 너를 지운 것이다.


바알: (고개를 숙이며) ...나는 결국, 존재를 버리고 살아온 죄인이구나.


철학자: 그렇다. 위선은 남을 속이는 것 같으나, 결국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그것이 네가 지닌 가장 깊은 죄다.


바알: (고개를 들며) 그러나 철학자여, 묻겠다.
진실을 말하는 자들이 돌에 맞아 쓰러질 때,
거짓을 두른 자들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했던가.
진실이 나를 죽이고, 위선이 나를 살린다면
그때 나는 무엇을 택해야 했단 말인가.




철학자: 바알, 너는 오래전부터 질문의 방향을 잘못 잡았다.
너는 언제나 “무엇이 나를 살리는가”를 물었지,
단 한 번도 “무엇이 나를 올바르게 만드는가”를 묻지 않았다.
그 질문의 차이가 너를 이 법정으로 끌고 온 것이다.


바알: 올바름이라..그것은 배부른 자들의 말장난이 아니던가.
굶주린 자에게 도덕을 말하고,
위태로운 자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것은 잔혹한 일이다.
나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 거짓을 사용했을 뿐이다.


철학자: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정당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순간 네 삶은 네 것이 아니다.
너는 세상의 폭력에 굴복하여
그 폭력의 방식으로 자신을 닮게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내면의 배신이다.


바알: 내면의 배신.. (쓴웃음을 짓는다)
나는 오래전 그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밤마다 내 안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이 얼굴은 네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 목소리를 외면했다.
그 목소리를 따랐다면 나는 무너졌을 것이다.


철학자: 아니, 바알.
그 목소리를 외면했기에 네가 무너진 것이다.
무너짐이란 형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 침묵하는 것이다.
너는 껍데기를 지키며 영혼을 잃었다.


바알: (숨을 몰아쉬며)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속죄해야 하는가.
진실을 잃은 자가 다시 진실을 찾을 수 있는가.


철학자: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네가 외면할 뿐이다.
너는 가면을 벗는 순간에 죽음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 바로 부활의 문이다.
투명해지는 대신, 드러나라.
숨는 대신, 견뎌라.
그때 비로소 너는 ‘살아있는 존재’로 돌아올 것이다.


바알: (조용히 눈을 감는다)
...나는 이제 투명해지지 않겠다.
나를 삼킨 거짓의 얼굴들을 태워 없애리라.
비록 그 불이 나를 태운다 해도,
이제야 나는 처음으로 두렵지 않다.


철학자: 바알, 이제 네 심문은 끝났다.
너는 죄인이 아니라, 진실을 배우는 자로 다시 태어났다.
가면을 벗은 그 얼굴로 세상에 서라.
그 얼굴이 비록 상처투성이일지라도,
그 상처가 곧 너의 증거이자
네가 인간임을 입증하는 마지막 진실이다.

(법정의 등불이 천천히 꺼진다.
남은 것은 침묵과, 가면 하나.
그 가면은 서서히 먼지로 흩어진다.)

(등불이 희미하게 흔들린다. 어둠 속에서 바알의 숨소리만이 들린다.)


바알: (천천히 고개를 든다)...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곳이 나의 심판대라면, 나는 무너지지 않겠다.
죄를 인정해도, 사라지지는 않겠다.
심판은 나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붙잡고 버틸 것이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지만, 결코 꺼지지 않는다.)


바알:정직이 나를 태우더라도, 나는 타지 않으리.
가면을 벗어도, 나는 아직 존재한다.
너희가 나를 죄인이라 부르든,
구원이라 부르든,
나는 그 모든 이름 속에서도 버티겠다.

(철학자가 조용히 바라본다. 바알은 등불 앞에 홀로 서서,
타는 연기 속에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


바알:심판이 나를 삼키기 전에,
나는 나로 남아 있겠다.
그것이 내 마지막 저항이자...
내 유일한 구원이다.


[심판]
철학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임의 칼 을 들었다.
칼날은 가면을 베는 진실의 도구였다.

철학자: 바알, 이 칼은 네 위선의 껍질을 벨 것이다. 네가 숨어온 투명한 장막은 더 이상 피난처가 아니다.


철학자가 칼을 내리치자, 바알의 몸을 둘러싼 투명한 장막이 갈라졌다.
세 얼굴은 차례로 드러났다. 인간의 얼굴은 겁에 질려 붉게 달아올랐고,

두꺼비의 얼굴은 혀를 삼키며 숨을 막았다. 고양이의 얼굴은 허공을 움켜쥐다 도망칠 길을 잃었다.

칼날이 마지막으로 내려치자, 세 얼굴은 동시에 무너졌다.


바알: (무너지는 얼굴 사이로 울부짖는다)
아아— 그만! 그 얼굴들은 나의 방패였다!
그들을 벗기면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피가 아닌, 투명한 빛이 터져나온다. 마치 거짓이 녹아 사라지는 듯.)


바알:보지 마... 제발 보지 마!
나는 살아남기 위해 만든 그림자였을 뿐이야!
그걸 벗기면, 나는 존재할 이유조차..

(그의 목소리가 끊긴다. 숨이 아니라, 존재의 울음이 멎는다.)


철학자: (조용히 칼을 거두며)
그대의 절규는 고통이 아니라, 진실이 처음 울부짖는 소리다.


[귀환]
가면이 벗겨지고, 남은 것은 하나의 인간의 얼굴뿐이었다.
더 이상 투명하지 않고, 더 이상 숨지 않는 얼굴.
바알은 법정 중앙에 무릎을 꿇고,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가면에 숨어 산 죄인이다. 이제는 나를 속이지 않겠다.”


[교훈]
가면은 순간을 살리지만, 존재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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