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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e Aug 20. 2019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을 기만한다. 꽤나 자주.

내가 가르치는/가르쳤던 (대)학생들 중 꽤나 많은 수의 학생들은 나에게

"도대체 수학을 왜 배워요?"

하는 질문을 던진다.


수학이 열라 재미있거든, 하고 대답하면 이미 땅바닥에 붙어 있는 대학원생 강사의 사회적 지위는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지하실(그 지하실에는 수학너드라는 이름이 붙어 있을 거다)까지 내려갈 것이 분명하니, 자제해야 한다. 

"Hey. Why should I study math?"


우리는 대체 왜 모두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걸까? 자연과학, 공학, 그리고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애초에 수학을 모르면 전공서적조차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모두에게? 헨리 제임스를 좋아하는 영문학도도, 칸트의 3대 비판서를 읽고싶은 철학과 학생도, 다다이즘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은 평론가 지망생도 왜 수학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수학의 아름다움이니, 수학은 세상을 표현하는 언어이니 하며 거대담론을 중언부언 쏟아내고 싶어 지지만, 이제 겨우 두 번째 포스팅에서 벌써 마각을 드러낼 수는 없으니 자제하고 문제 하나를 살펴보기로 한다.



내가 딸기 농장을 운영한다고 하자. (수학자들은 가정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비료를 열심히 뿌린지라 딸기는 잘 자랐고, 나는 딸기를 모두 수확했다. 싸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삼일 정도 강원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고, 그동안 내 친구 당신에게 딸기 농장을 맡겼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수확한 딸기를 잘 보관해줘. "

뭐 이런 딸기 말이다. 

당신은 알겠다고, 걱정 말고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딸기 농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 주여, 딸기들이 개판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에게 딸기 농장을 어떻게 관리했길래 딸기들이 이렇게 시들시들해졌는지 따진다. 당신은 대답한다. 


"가장 신선한 딸기의 수분 함유량은 99%인 것을 당신도 알지? 삼 일 전 당신이 수확한 딸기의 수분 함유량은 99%였어. 방금 당신이 시들시들하다고 한 딸기의 수분 함유량은 98%이고. 삼일 사이에 수분 함유량이 1% 정도 감소한 거 가지고 따지는 건 너무 찌질하지 않아? 나는 충분히 관리를 잘 했다고"


나는 당신의 말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Q: 나와 당신 모두 객관적으로 관찰이 가능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면, 딸기가 개판이 되었다는 나와, 그 정도는 괜찮다는 당신의 말 중,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이건 왠 생뚱맞은 소리야?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다 주관적인 판단인데 누구의 말이 맞느냐고? 이게 무슨 수학 문제야? 하고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꽤나 객관적인 해답이 존재한다.


시간이 있다면 직접 숫자를 끄적거리며 상당히 객관적인 해답을 찾아보았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수학을 위해 시간 투자하기를 바라는 것은 수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의 꿈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니까 함께 해답을 살펴보기로 하자. 


편의상 내가 수확한 딸기가 총 10,000kg, 신선한 딸기 1kg의 가격은 만원이라고 하자.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딸기가 시들해진 것은 사실로 보이니, 삼 일 후 딸기의 가격이 만원/kg보다 낮을 것은 분명하다. 표로 정리하면 

이 될 것이다. (오! 문제 속 가상의 나는 딸기부자다.)


자 여기서 수학(혹은 산수)을 사용해보자. 여행 전 딸기의 수분 함유량은 99%, 여행 후 수분 함유량은 98%라고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아이디어는 수분은 증발하지만, 수분이 아닌 부분은 증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기 쉽게 표로 정리해보자. 

여행 후 수분이 98%이니까, 수분이 아닌 것은 2% 일 것이고, 이것의 총무게는 100kg (수분이 아니라 증발하지 않고, 그러니까 여행 전후에 변하지 않는다)


잠깐, 100kg가 2%이니까, 여행 후 딸기의 총무게는?


Yes. 방금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 숫자가 맞다. 5,000kg. 딱 반토막이 난 거다. 즉, 여행 후 딸기의 가치는 (kg당 가격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해도)


정리하면 위의 표가 된다. 딱 3일 만에 내가 가진 딸기의 가치가 딱 반토막이 된 것이다. 오 마이 갓. 꽤나 객관적으로 내 불만이 매우 옳고 당신이 약을 팔았음을 알 수 있다. 놀라운 점은 주관적인 평가를 제외하고 당신이 거짓말을 한 게 없다는 것. 

하지만 어떤가? 처음 "삼일 사이에 수분 함유량이 1% 정도 감소한 거 가지고 따지는 건 너무 찌질하지 않아?" 하는 문장을 읽었을 때, 음 그 말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 않은가? 설령 당신이 "피 같은 딸기의 1%가 얼마나 큰데!"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해도, 딸기가 반토막이 났다는 생각을 바로 인지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여전히 기만당한 것이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수미상관법) 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내려보자. 


남들에게 기만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속지 않기 위해서다. 당신이 조금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남을 속이기 위해서라고 생각해도, 


뭐 좋다. 그렇게라도 수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주) 이제 당신은 퍼센트가 붙어 있는 숫자들을 왜 한 번 다시 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화장품이나 건강식품을 살 때 꼭 주의 깊게 살펴보기 바란다. 이를테면 엄청 비싼 재료(금가루라고 하자) 1%가 함유된 화장품 A와, 금가루가 0.5% 함유된 경쟁 상품 B(A보다 30% 저렴하다) 중에서 무엇을 살 지 생각해볼 수 있겠다.


어, 0.5%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가격이 X만원이나 싸네? 대박. B를 사야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과연 B가 A보다 좋은 상품인 건가


화장품 말고도, 녹즙은? 약은?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을 기만한다. 꽤나 자주.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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