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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Sep 26. 2023

불교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법


불교에는 간화선(看話禪)이라는 개념이 있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화두를 보아서 고요함에 이르다'라는 말인데 아마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볼까 한다.


일단 '간화'와 '선'을 분리해서 보자. 선은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다는 의미로 요샛말로 '명상'이다. 불교에서 여덟 가지 바른 길을 의미하는 '팔정도'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그 명상(meditation)이다. 앞에 붙은 '간화'는 명상의 방법론으로 보면 된다. 후려쳐서 말하면 간화 명상이라고 할까나? 


스님들이 경전을 통해 공부하는 것을 '경전을 본다'는 뜻의 간경(看經)이라고 하고, 화구를 참구 하는 것을 앞서 말한 대로 '화두를 본다'는 뜻의 간화(看話)라고 한다. (참고문헌: 수불, <간화심결>, 김영사, 2019.)


간화, 즉 화두는 어떻게 보는 것일까? "이뭣고?"를 외치면 된다. 선불교의 제5조 홍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여겨지는 방법이다. 말 그대로 끊임없이 의심하고 묻는 것이다. "이뭣고?"를 외치면서 말이다. 시대와 국적을 초월하여 성공한 수많은 기업인이 경영철학으로 삼은 방법이기도 하다(물론 그들이 모두 간화선을 알았다는 말은 아니다).


허문명의 <경제사상가 이건희>에 따르면 고(故) 이건희 회장은 문제가 생기면 적어도 다섯 번 '왜'를 물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회사 매출이 좋지 않을 때 '왜?'를 물으면 대부분 회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답이 나온다. 회사 시스템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물으면 구성원이 이유로 나온다. 구성원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물으면 교육과 관습에 대한 문제가 나온다. 이렇게 다섯 번 '왜'를 묻다 보면 결국 문제의 본질에 다다르는 것이다. 간화선에서 본질을 꿰뚫어 본인 안의 부처를 보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왜'라는 질문이 답이다. 생각 없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왜'를 묻는 것이다. 당연한 것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늘 하는 일도 잠시 멈춰 '왜'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가능하면 본질에 다다를 때까지 묻고 또 묻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인간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맹수가 군침을 흘리며 다가올 때 '왜'를 물었던 인간의 DNA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여러 번 전쟁을 경험했던 근래의 선조들도 '왜'를 묻기보다는 상관의 명령을 즉각적으로 따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왜?'를 묻기보다 바로 행동했던 선조들의 DNA가 우리 몸에 깊게 각인된 것이다. '왜'를 묻고 또 묻는 일은 그래서 어렵다. DNA를 거슬러야 한다.


대니얼 카너먼은 이를 시스템 1 사고와 시스템 2 사고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시스템 1 사고는 직관적이고 자동적인 사고다. 1초 미만에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와 다르게 시스템 2 사고는 분석적이고 숙고하는 사고다. 지금까지 말한 '왜?'를 끊임없이 묻는 사고라고도 할 수 있다. 매일매일 시스템 2 사고로만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미치거나 지쳐 쓰러지거나 둘 중 하나의 결과를 낳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왜'를 생각해야 한다. 특히나 '일'에 관련해서는.


일을 잘하고 싶다면 '이뭣고'를 외치자. 일상에 의문을 던지자. 그리고 본질에 다다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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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Sage Frie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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