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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율이 줄어드는 시대에도 팔리는 책은?

by 캡선생

사람들이 점점 책을 안 읽는다는 말은 어제오늘 들려온 얘기가 아니다. ‘바보 상자’라 불리던 TV가 등장했을 때부터 독서율은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든 텍스트와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초고속 영상까지 손안의 작은 핸드폰으로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책은 점점 소수의 취향이 되었고 독서는 특별한 이벤트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독서'는 대중적이기보다는 소수의 문화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오늘은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을 간략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전자책을 제외하고 종이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참고로 전자책은 아직 전체 출판 시장에서 5% 내외의 비중이다)

1) 구매하지 않고 도서관 등에서 읽는 책.

2) 구매해서 읽고 나서 처분하는 책.

3) 구매해서 읽고 책장에 소중히 꽂히는 책.


저자의 입장에서는 세 경우 모두 판매가 이루어진 책이지만, 독자와의 접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1번은 한 권으로 여러 사람이 읽게 되고, 2번은 구매자 외에도 다른 사람이 읽을 가능성이 높으며, 3번은 단 한 사람에게 오래 머물 확률이 크다. 내 책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길 바란다면 1번이 이상적일 테고, 가장 많은 인세를 기대한다면 3번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출판을 산업의 관점에서 본다면 3번이 줄어드는 현상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해, ‘책을 사서 책장에 꽂고 싶은’ 마음이 줄어든다는 것. 그렇다면 구매하고, 심지어 책장에 고이 간직하고 싶은 책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책을 쓰는 사람이 아닌, 매년 수백 권의 책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내용이 좋아서다.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책이라면 두고두고 꺼내 보기 위해 책장에 모셔둔다. 다른 하나는 책이 오브제로서 기능할 때다. 쉽게 말해 예쁘거나,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간지가 나서다. 최근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여자A 남자B’에서 소개된 책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 채널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모음집 / 자질구레한 소품과 주방용품을 좋아하는 여자 A와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남자 B의 취향 기록”이라고 소개되는데, 쉽게 말해 ‘감각적인 소비’를 다루는 채널이다. 인테리어 소품을 주로 소개하지만, 가끔 책도 등장한다. 흥미로운 건 책을 소개할 때 작가나 내용보다 책이라는 물성 자체, 즉 조형미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최근 소개된 책은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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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 모노 에디션에서 다루는 책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같은 고전 소설들이고, 시리즈명처럼 표지는 흑백의 단색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앞면에는 작가 이름과 제목만, 뒷면에는 출판사명과 간단한 이미지 외에 필수 정보인 ISBN, 가격, 바코드만 들어간다. 같은 책이라도 흑색과 백색 버전이 있어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다. 여기에 출판의 힌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읽는 책이 아니라, 보관하고 싶은 책, 나아가 공간 속 오브제로 소유하고 싶은 책이라는 점이다.


요즘 카페나 레스토랑에서도 책이 놓여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아무도 꺼내 읽지 않지만, 무용하지 않다. 공간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강력한 오브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책을 안 읽는다’는 탄식은 좀 더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말로 독서량이 줄어서 걱정인가, 아니면 책이 안 팔려서 걱정인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오브제로서 기능할 수 있는 책이 더 많이 나온다면 책의 판매량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유지될 수 있다. 모두가 디지털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에도 LP가 고가에 팔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오브제로서 기능하는 책은 다시 책에 대한 관심으로, 더 나아가 독서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책을 단면적으로 보지 말고, 입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시점의 변화게 생겼을 때 출판의 위기, 독서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은 오브제로 살아남고, 콘텐츠로 다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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