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스토어 전문 기업 스위트스팟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총 1,713개의 팝업스토어가 열렸고, 월평균 140개 이상이 운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야말로 ‘대팝업의 시대’다.
이제는 산업군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브랜드가 기회만 있다면 팝업스토어를 열어 고객에게 브랜드 메시지를 인상적으로 전달하려 애쓴다. 신규 상품이나 브랜드 론칭, 브랜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콜라보레이션 이벤트 등 팝업스토어의 목적은 다양하다.
하지만 숫자만 늘어났을 뿐, 브랜드 간 차별화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팝업스토어가 유사한 공간에서 유사한 콘셉트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브랜드들이 팝업스토어를 여는 주요 장소는 성수동과 여의도 더현대로 사실상 수렴된다. 이 두 곳은 분명 트래픽이 풍부한 지역이지만, 과연 그것이 브랜드에 진정한 임팩트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사람이 많이 오는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간을 선택하는 전략은 결국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는 결정이 될 수 있다. 팝업스토어는 단순히 그 장소를 방문한 오프라인 고객에게만 보여지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현장에 온 고객을 통해 자발적인 바이럴을 유도하고, 온라인상에서 더 많은 잠재고객에게까지 브랜드를 확산시키는 것이 본질적인 목적이다. 하지만 오프라인 방문자 수에만 집착하면, 차별화된 경험이나 화제성을 만들기 어렵다.
# 공간 브랜딩의 본질: 팝업이든 플래그십이든
물론 팝업스토어와 플래그십 스토어는 운영 방식과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 하나는 단기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을, 다른 하나는 장기적인 브랜드 거점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두 공간 모두 고객에게 브랜드의 가치를 전하고, 브랜드 경험을 설계한다는 점에서 공간 브랜딩 전략의 스펙트럼 위에 놓인 개념이다.
결국 중요한 건 ‘어디서 열었느냐’가 아니라, ‘왜 거기서 열었느냐’다. 장소를 선택하는 기준이 트렌드가 아니라 브랜드 철학과 맥락이 되어야 한다.
사례 1. 신당동 ‘주신당’ – 팝업 정신이 살아있는 공간 브랜딩
공간 자체가 브랜딩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 사례가 있다. 바로 신당동에 위치한 칵테일 바 ‘주신당’이다.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동네로 떠오른 신당동에서도, 주신당은 단연 돋보이는 공간이다.
그 이유는 단순한 인테리어나 트렌드 때문이 아니다. 신당동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맥락을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정교하게 녹여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신당동은 무당들이 모여 살던 ‘무당촌’이었다. 동대문과 신당역 사이에 위치한 광희문은 한양 도성 내에서 숨진 이들을 운구하던 출입문이었고, 그 넋을 달래기 위해 무당들이 자연스럽게 신당동에 자리 잡으며 독특한 지역 정체성이 형성됐다. 지금은 ‘새 신(新)’ 자를 쓰지만, 과거에는 ‘귀신 신(神)’ 자를 썼던 동네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술 귀신을 모신다’는 의미의 주신당(酒神堂)은 이름부터 지역성과 브랜드 스토리를 정교하게 엮고 있다. 점집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 십이간지로 구성한 메뉴, 그리고 ‘술’이라는 제품이 가지는 비일상적 경험까지. 모든 요소가 신당동의 역사와 맞물리며 강력한 차별화를 완성한다. (참고 문헌: 김용석, 『작은 기업을 위한 브랜딩 법칙 ZERO』)
사진 출처: 김용석 개인사진
현재 주신당은 신당동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가맹점을 내며 확장 중이다. 로컬 맥락에서 출발한 브랜드가 이야기의 힘을 기반으로 스케일업하고 있는 흥미로운 사례다. 지역에서 태어난 브랜딩이 지역을 넘어 설득력을 갖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례 2. 르무통 문경 플래그십 – 입지보다 맥락을 택한 전략
또 다른 인상적인 사례는 신발 브랜드 르무통이 문경새재에 연 첫 플래그십 스토어 ‘르무통 마루’다. 일반적인 브랜드였다면 유동인구가 많고 트렌디한 서울 시내 상업지구를 택했겠지만, 르무통은 브랜드 철학을 가장 순수하게 구현할 수 있는 “걷기 좋은 길, 문경새재”를 과감하게 선택했다.
주신당이 ‘무당들의 신기(神氣)’ 어린 신당동의 맥락을 이어받았다면, 르무통은 과거시험 합격을 염원하며 걸음을 내디뎠던 ‘선비들의 문기(文氣)’가 흐르는 문경새재의 맥락을 이어받았다.
문경 플래그십 스토어는 ‘걷는 이의 편안함이 머무는 곳’이라는 콘셉트 아래, 고객이 공간을 체험하며 브랜드가 말하는 ‘편안함’을 오감으로 느끼게 만든다. 1층에서는 신발을 벗고 발을 씻는 해방의 순간을 경험하고, 2층에서는 문경의 향과 맛을 체험하며, 3층에서는 제품을 직접 신고 걸으며 르무통이 말하는 ‘걷는 즐거움’을 발견한다. 4층에서는 문경의 풍경을 바라보며 브랜드가 제안하는 공간 브랜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 공간에서만 판매되는 단독 굿즈들이다. 과거급제를 염원하며 돌을 쌓아올린 ‘책 바위 전설’에서 영감을 얻은 돌탑 디퓨저, 과거급제의 상징인 어사화에서 착안한 화병 등은 지역의 맥락과 브랜드의 세계관을 정교하게 연결해낸 브랜디드 콘텐츠다.
사진 출처: 르무통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만나는 브랜드 경험은 그 자체로 강한 인지와 호기심을 유발한다. 이 공간은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과 고객의 삶이 맞닿는 접점이 된다.
# 결론: 브랜드 공간 전략의 핵심은 ‘맥락 기반 차별화’
팝업스토어든 플래그십 스토어든, 결국 공간은 브랜드가 말하고 싶은 것을 고객이 직접 체험하게 하는 수단이다. 트렌디한 입지를 좇는 것만으로는 임팩트를 만들기 어렵다. 이제 브랜드에게 필요한 것은 ‘트렌드에 올라타는 위치 선정’이 아니라, 브랜드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장소 기획력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임팩트가 시작된다. 그 순간, 공간 브랜딩의 본질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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