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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의 중요성

by 캡선생


시작은 끝이다.


첫 문장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글의 첫 문장을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특별하게 쓰고 싶었다. 그래서 다소 모호할 수는 있지만 하고픈 말을 모두 담되 간결하게 써봤다. 이 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나의 의도가 전해지지 않을까 싶다.


글에서 첫 문장이 갖는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하며, 핵심 내용과 분위기 혹은 때에 따라서는 캐릭터를 간단명료하게 설정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첫 문장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모든 내용을 함축했음을 독자가 느끼게 만드는 것이 좋은 첫 문장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로 <논어>가 있다.


유교의 근본 문헌으로 꼽히는 <논어>의 첫 문장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이다. 이 문장에서 <논어>를 관통하는 두 가지를 엿볼 수 있다.


먼저 '공자가 말했다'라는 뜻의 '자왈'에 대해서 알아보자. 불교 경전은 '나는 이렇게 들었다'라는 뜻의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즉 경전에 쓰인 내용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왜냐하면 듣는 이가 부처가 말한 바를 제대로 못 들었을 경우를 독자가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다르게 <논어>는 '공자가 말했다'라고 말함으로써 이러한 오류 가능성을 제거한다. 이를 통해 <논어>를 넘어 유교의 톤앤매너(tone and manner: 언어에서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나 자세 또는 행동 방식, 재질감 / 권오형의 <UX 라이팅 시작하기> 참조)를 간단명료하게 설정한다.


두 번째로 '배우고 때에 맞춰 익히니 즐겁지 않으리?'라는 의미의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는 메시지다. 이 메시지를 통해 <논어>의 핵심은 배움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러한 목적 하에 뒤에 나오는 내용을 배우고 익히라는 것을 독자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첫 문장만 마음에 깊이 새겨도 <논어>가 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익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유교 근본 문헌의 첫 문장에 대해 알아봤으니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도교를 알아보자.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도교의 근본 문헌 <도덕경>의 첫 문장이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이를 그대로 번역하면 "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고,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이다. <도덕경>은 매우 짧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첫 문장의 난해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기피하는 책이 돼버렸다. 그런데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상당히 흥미로운 그리고 <도덕경>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첫 문장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두 가지 견해만 말해보겠다.


첫 번째는 언어의 한계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언어의 한계를 이야기했는데 <도덕경>의 첫 문장도 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해석이다. 예를 들어 도자기가 있는데 이것에 '요강'이라는 언어적 명칭을 붙이는 순간 이 도자기의 무한한 가능성은 모두 사라지고 하나의 목적성만 갖게 된다. 바로 오줌을 받는 물체로 말이다. 이처럼 도를 언어로 한정하는 순간 요강처럼 무한한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견해로는 강신주 작가가 이야기한 '은밀한 통치방식'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누군가에게 통치 혹은 설득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명령 혹은 권유는 잘 먹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행동경제학에서 말한 넛지(nudge: 강압하지 않고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 /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는 잘 작동한다. 예를 들어 남자들한테 대놓고 "깨끗하게 소변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잘 먹히지 않지만, 소변기에 과녁을 그려놓으면 알아서 깨끗하게 소변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도덕경이 첫 문장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와 같이 군주(왕)가 나라를 통치함에 있어서 드러나는 방식이 아닌 은밀한 방식으로 통치하라는 것이다. '도'와 '명'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통치'를 '통치'라고 부르지도 보이지도 않게 만듬으로써 말이다.


첫 문장의 중요성은 유교와 도교와 같이 명확한 메시지를 전하는 사상이나 철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가장 유명한 첫 문장으로 알려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보자.


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일수록 그것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는지 생생히 기억한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분들은 미국 9/11 테러가 발생한 날을 다른 날보다 더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심지어 부모님의 죽음과 같이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이라면 그 기억이 더욱 생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소설 속 주인공은 이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주인공의 캐릭터 혹은 심리적 상태를 엿볼 수 있고 더 나아가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다. 평이하고 짧은 문장만으로 이 모든 것을 풀어내었기에 첫 문장으로 가장 유명한 소설의 영예가 <이방인>에게 돌아간 것이다.


지금까지 알아본 것처럼 첫 문장은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함축할 수 있다. 그래서 시작으로 끝장을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첫 문장이다. 다른 말로 시작은 끝이다.



P.S. <논어>도 <도덕경>도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으나 글의 주제에 맞게 부족하지만 짧게 이야기한점 양해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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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ne Nygår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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