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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Nov 26. 2022

미룰수록 빛을 발하는 판단

판단 보류의 영성


언제부턴가 불교불자만의 종교가 아닌 전 국민의 인문학이 되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종교적 메시지를 넘어 인생철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절은 교리를 설파하는 공간을 넘어 쉼 혹은 성찰의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법륜 스님의 즉문즉답은 전 국민의 상담채널이 되어가고 있다. 타 종교 신자 혹은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말이다.


법륜 스님의 유튜브 채널



불교에 비해 드물기는 하지만 천주교에서도 이처럼 종교를 넘어 대중에게 다가가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해인 수녀다.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 사진 출처: 동아일보


이해인 수녀 다양한 시와 문학을 통해 본인이 느낀 바를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종교인이자 문학인이다. 그녀가 말하는 바를 스님들의 경우처럼 '무소유' '돈오돈수'와 같이 단 하나의 키워드로 꼽는 것은 힘드나, 내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판단보류의 영성'이다.


'판단 보류의 영성'은 제가 종교학에서 배운 이론입니다. '판단은 보류하고 사랑은 빨리하라.' 함부로 남을 평가하지 말라는 말이죠.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보는 거예요. 나 자신을 객관화하는 자세인데요.

- 이해인의 <이해인의 말>(마음산책, 2020) 중 -



이 개념을 접하고 큰 반성을 하게 되었다. 수많은 모임을 진행하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을 최대한 빠르게 판단하려 했고, 판단 능력에 자신만만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쁜 첫인상과는 달리 좋은 사람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꽤 되었으나 나의 판단이 옳았던 적이 많았다는 이유만으로 빠르게 판단하고 빠르게 관계를 정리하는 것을 정당화하곤 했다.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대할 때도 시간적 효율을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나의 행동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만든 것이 이해인 수녀가 설파한 '판단 보류의 영성'이었다.


'준비-조준-발사'의 시대에서 '준비-발사-조준'의 시대가 되면서 미루는 것은 죄악시되고 있다. 누구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미덕이자 성공의 보증수표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을 사람을 대할 때까지 적용하는 것이 맞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판단보류의 영성'이 말하듯 사람을 대할 때는 '효율'이라는 단어보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 테니 말이다.


불꽃은 빠른 마찰을 필요로 하지만, 불씨는 부드러운 바람과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이처럼 때로는 미루어야 빛을 발하는 것이 있다. 사람에 대한 판단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Photo by amjd rdw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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