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와중에 선배의 이 말을 듣고 이게 뭔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소리인가 하고 생각했다.
때는 바야흐로 팀 내 많은 인원이 다른 부서로 발령 나거나 퇴사를 했던 상황이었다. 나는 1인 3역 이상을 해내야 했기에 흡사배우와 가수 그리고 예능인으로 종횡무진하던 전성기 장나라마냥엄청 바빴다. 이런 때에 "서두르지 말고 빨리해"라는 선배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1. 내가 처음 들어보는 형용모순적인 응원
2. 응원(칭찬)으로 시작해서 본심으로 끝나는 동방예의지국 스타일의 재촉하기
3. 말실수
선배의 선의를 믿기에 2번은 일단 제외했다. 1번이라고 하기엔 일상생활에서 쓰기엔 너무나도 수준 높은 문학적 표현이라 제외를 하니 3번 말실수만 남았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열심히 일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페스티나 렌테'라는 문장을 접하고 '혹시 그 당시 선배에게 이렇게도 깊은 뜻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럼 영문 위키피디아를 참조하여 선배의 깊은 뜻(?)을 알아보자.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는 그리스어 원문(σπεῦδε βραδέως)을 라틴어로 번역한 문장으로 직역하면 '서둘러라(Festina)' '천천히(Lente)'라는 말이다. 즉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말을 의미한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등 로마 황제를 비롯하여 메디치 가문도 이를 좌우명으로 사용했다.
말이 안 되는 이 문장을 왜 로마의 황제들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메디치 가문에서 좌우명으로 쓴 것일까?
이 문장을 다른 식으로 보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즉 '서둘러라'를 목표로 보고 '천천히'를 방법으로 보면서부터 말이다.
빛은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할 때 최단 거리가 아니라 최단 시간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즉 빛을 의식이 있는 존재로 가정하면, 그는 '서둘러라'라는 목표 하에 '최단 시간'을 목표로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제삼자가 보았을 때 '천천히'로 보일 수도 있는 '최단 거리가 아닌 이동경로'를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빛이 물에서 굴절하는 것이 그 대표적 예다.
더 쉬운 이해를 위해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사진 출처: http://labman.phys.utk.edu/phys136core/modules/m10/Fermat.html
위 이미지에서 2번 지점에 사람이 물에 빠졌고 1번에 있던 육상선수가 구하러 간다고 생각해 보자. 육상선수가 마냥 서두른다면 최단 거리인 2번 경로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페스티나 렌테에 의거하여 '서둘러라'를 목표로 '천천히'라는 방법을 택한다면 최단 거리는 아니지만 최단 시간이 걸릴 3번 경로(최대한 달리고 최소한으로 수영할 수 있는)를 택할 것이다.
이처럼 서둘러야 할 때일수록 오히려 천천히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역설적으로 가장 빠르게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선배가 이러한 깊은 뜻으로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서둘러야 할 때는 늘 이 말을 주문처럼 마음속으로 되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