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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an 17. 2023

책을 읽어나가는 두 가지 방식


퇴사 후 3개월가량 교보문고로 출퇴근을 했다. 일하러가 아닌 독서하러.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을 원 없이 하고 싶었다. 이직을 위한 퇴사도, 창업을 위한 퇴사도 아닌 오롯이 삶을 즐기기 위한 퇴사였으니 말이다. 대학교수에게 주어지는 안식년 혹은 대학교 입학 전이나 졸업 후 1년 동안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는 갭이어(Gap Year)를 나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나만의 안식년 혹은 갭이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다. 일을 하지 않으면서 단순히 1년간 버티는 것이 아닌 즐기기 위해서는 충분한 돈이 필요했다. 그동안 모아둔 돈을 최대한 불리거나 최소한 지켜야 했다. 교보문고로 출퇴근을 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투자'관련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 위해서.


하루종일 교보문고에서 빠르게 책을 훑어보고 괜찮다고 느낀 책은 구매를 했다. 구매한 책은 집에 와서 읽으면서 꼼꼼히 정리를 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백여 권 이상의 투자 관련 책을 읽었다. 


동일한 분야의 책을 몰아 읽는 경험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바로 동일 분야의 책은 대부분 내용의 교집합이 있었고, 이 교집합이 그 분야의 핵심이라는 것을. 교집합을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니 읽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중요한 내용은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다.


실용서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대부분의 책은 이러한 교집합에 자신만의 생각과 관점 혹은 새로운 발견을 한 스푼 넣는 식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책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교집합에 각 책만의 새로움을 나만의 방식으로 조합하다 보니 '투자'와 관련된 나만의 합집합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일명 '합집합 읽기'다. 특정 분야를 빠르게 파악하고 나만의 프레임을 만들기에 최적화된 독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합집합 읽기와 이를 통해 얻은 안정적인 투자결과로 경제적인 두려움이 어느 정도 사라지자,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읽고 싶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분명한 목적이나 이유 없이 관심 가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이러한 독서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책을 읽다가 "신은 죽었다"라는 문구를 보면, 신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종교서적을 읽는다. 그리고 종교 서적을 읽다가 과학자를 박해한 내용이 나오면 현재의 과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론은 무엇인지를 찾다가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과 관련된 책을 읽는 식이다. 즉 책을 통해 알게 된 나의 무지, 다른 말로 합집합 너머의 암흑세계를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알아가는 것이다. 일명 '여집합 읽기'이다.


'합집합 읽기'는 빠르게 한 분야를 깊게 파는데, '여집합 읽기'는 다양한 분야를 넓게 파는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구분법은 내가 깊은 고민 없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명확한 설명이 되지 못할 수있을 것 같다. 이를 대신해 조금 더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구분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야마구치 슈가 말한 '메토니미적 독서법'과 '메타포적 독서법'이다. 나의 구분법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소 다르다.


메토니미는 환유(換喩)를, 메타포는 은유(隱喩)를 뜻한다. 간혹 환유와 은유를 통틀어 메타포라고 일컫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이 두 가지는 별개의 구조다. 예를 들어, 베네치아를 '곤돌라의 거리'라고 비유하면 메토니미가 되지만 '아드리아해의 보석'이라고 비유하면 메타포가 된다.

독서에 적용해 보자. 만약 베네치아에 관한 책을 읽고 베네치아에 관심이 생겼다면 그다음에는 곤돌라에 관해 조사해 본다거나 또는 제4차 십자군 원정 하나에 관해 조사해 보는 것이 메토니미적 전개의 독서인데, 이때 책과 책의 사이에 종(縱)의 계층 구조가 형성된다.

초심자를 위한 책부터 읽고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영역이 있으면 전문 서적을 펼쳐보는 접근법도 메토니미적 독서라고 할 수 있다. 각각 책의 내용이 계층 구조가 되므로 전체상을 파악하기 쉽다는 것이 메토니미적 독서의 장점이다.

반면 메타포적 전개에서는 독서의 대상 영역이 점점 횡(橫)으로 전개되어 간다. 이를테면 리더십론을 읽고 남극점 도달에 성공한 노르웨이의 극지 탐험가 아문센에게 흥미를 갖게 되자 아문센이 쓴 남극 탐험기를 읽어보는 것, 이 방법이 메타포적 전개의 독서다.

- 야마구치 슈의 <어떻게 나의 일을 찾을 것인가>(김윤경 옮김, 김영사, 2021) 중 -



야마구치 슈는 메토니미적 독서를 '종'으로 그리고 메타포적 독서를 '횡'으로 전개하는 독서법이라고 일컬었다. 내 경험에 비추어 생각했을 때 '종'은 전문지식을 쌓아가는 느낌이고, '횡'은 교양과 상식을 넓혀가는 느낌에 가까웠다.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따질 수 없는 상호보완적인 독서방법이다.


물론 이러한 독서법 외에도 타인이, 특히나 책과 관련하여 신뢰할만한 사람 혹은 단체가 추천하는 도서를 읽어나가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김영하 북클럽'에 소개된 책을 읽는다든지 트레바리와 같은 독서모임에서 지정한 책을 읽는다든지와 같이 말이다.


사람마다 의견은 다르겠지만 타인이 추천한 도서는 마중물 혹은 환기의 역할정도 그치면 좋다고 본다. 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책을 읽어 나갈 수 있게 해주는 마중물 혹은 관심사에만 너무 빠져서 독서편식을 하고 있을 때의 환기처럼 말이다. 책을 고르는 과정도 독서경험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주체적으로 하는 것이 더 풍성한 독서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독서의 목적에 따라 좋은 책 그리고 좋은 독서법도 달라진다. '유희'가 독서의 최우선 목적인 분에게 지금까지 말한 독서법은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나와 비슷한 목적으로 책을 읽는 분들에게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독서법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진: UnsplashGuzel Maksut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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