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선생 Jan 25. 2023

NO 재팬과 YES 재팬의 같은 뿌리


최근에 일본 여행을 다녀온 친구와 만나서 서로의 일본 여행에 대한 감상을 나누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둘 다 일본에서 핸드폰을 보는 직원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물론 우리 둘의 경험만으로 일반화를 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각자 방문한 모든 식당과 카페에서 핸드폰을 보는 직원이 없었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직원들이 가게에서 핸드폰을 보는 광경은 일반적인데, 그 일반적인 광경이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라는 것이 말이다.


그렇다고 일본인이 핸드폰을 유독 적게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아래 그림에서 봐도 알 수 있다시피 그들의 핸드폰 사용시간은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다.


국가별 핸드폰 앱 사용시간. 사진 출처: forbesindia


그렇다면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다. 일본인은 '근무 시간에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는 규칙을 매우 잘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고객이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핸드폰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일을 함에 있어서 정해진 규칙을 반드시 따르고자 하는 일본인의 모습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깔끔하게 차려입은 택시 기사의 모습, 수신호를 통해 전철에 문제가 없는지를 꼼꼼하게 점검하는 차장, 손님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주의를 하면서 방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필요할 때에 딱 음식을 내놓는 료칸의 직원 등등. 이들은 매뉴얼을 철저하게 따르다 못해 매뉴얼 그 자체가 된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일본인의 의식은 관광객에게는 다시 한번 일본을 찾게 만드는 '극강의 접객문화'인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로 발현되고, 소비자에게는 감동적인 제품을 선사하는 '장인정신'인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로 나타난다. 일본에 더 자주 여행을 가게 만들고, 일본제품을 더 많이 사게 만드는 YES 재팬의 뿌리는 바로 이 '규칙을 필사적으로 따르는 일본인의 의식'에 있어 보인다. 다만 YES 재팬의 뿌리는 NO 재팬을 초래한 뿌리와 동일하다. 옳지 않은 규칙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면 YES는 금세 NO로 변하니까 말이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으로 잘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하자면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악마와도 같은 매우 이례적이면서 기괴한 인물이 아니라, 그저 상관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른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아이히만이 자기변호를 위해 본인은 명령만 따랐을 뿐이라 축소시켜 말한 것이라는 반론도 있지만, 다양한 실험을 통해 악의 평범성은 상당히 근거 있는 개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밀그램 실험'이다.


밀그램 실험 (Milgram Experiment)

1961년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스탠리 밀그램 교수(Stanley Milgram)가 '권위적인 불법적 지시'에 다수가 항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시행한 실험을 말한다.

밀그램은 ‘징벌에 의한 학습효과를 측정하는 실험’이라고 포장해 실험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피실험자들을 교사와 학생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학생 역할을 담당하는 피실험자에게 가짜 전기 충격장치를 달고, 교사에겐 가짜란 걸 모르게 하고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가하게 했다. 여기서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15 볼트에서 450 볼트까지 전압을 올릴 수 있도록 허용됐다.

밀그램은 실험 전에는 단 0.1%만이 450 볼트까지 전압을 올릴 것이라 예상했으나, 실제 실험결과는 무려 65%의 참가자들이 450 볼트까지 전압을 올렸다. 이들은 상대가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비명도 들었으나 모든 책임은 연구원이 지겠다는 말에 복종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중 -



이처럼 무비판적으로 국가의 명령, 사회의 규칙을 따르게 된다면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와 같은 전지구적인 비극은 언제라도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일본이 과거에 대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국가의 명령 혹은 시대의 규칙을 그저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는 의식도 한몫을 할 것이다. 국민은 그저 국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의식 말이다. 이 의식이 No 재팬을 초래한 뿌리인 것이다.


"매니저는 주어진 일을 올바르게 하고(Do things right), 리더는 올바른 일을 한다(Do the right thing)"는 말이 있다. 이 말에 근거해서 이야기하면 일본이 NO 재팬이 아닌 YES 재팬으로 남기 위해서는 매니저를 넘어 리더의 입장에서 행동해야만 한다. 규칙을 필사적으로 따르는 것만큼이나 그 규칙이 올바른 일인지를 필사적으로 숙고해봐야 하는 것이다. YES 재팬과 NO 재팬을 가르는 것은 방향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모든 나라 그리고 모든 사람이 반드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다. 같은 뿌리라도 그것이 YES로 뻗어나갈지 NO로 뻗어나갈지는 각자의 주체적인 그리고 비판적인 사고에 달려있다.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11



사진: UnsplashClay Banks

매거진의 이전글 논쟁할 이유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