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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an 31. 2023

유한에서 무한으로 도약하는 법


대학에서 경제학을 부전공했는데, 첫 수업 때 다음과 같은 경제학 정의를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경제학은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학문입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는 전제와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목적성은 경제학의 정의를 넘어 삶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철학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토머스 홉스의 철학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 따르면 홉스는 두 가지 전제를 하고 사고(思考) 실험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인간의 능력에는 큰 차이는 없다

2) 인간이 원하는 것은 희소하고 유한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자연스럽게 무한경쟁, 홉스의 표현에 따르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하게 되는데,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계약을 통해 강력한 국가를 세우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앞서 말한 경제학의 정의는 홉스의 두 가지 전제에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고민한다'는 주장을 덧붙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국가가 큰 규모에서 효율적 자원 이용에 대한 고민을 담당하고 있기에, 홉스의 철학과 경제학의 정의는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 보인다.


경제학과 홉스가 모두 지적하고 대부분이 동의하는 바와 같이 '자원은 한정적이다'라는 전제를 따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쪽은 손해를 본다'는 제로섬게임(Zero-Sum Game)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기 십상이다. 여기서 자원을 시간자원으로 좁혀서 생각하면 제로섬게임은 사이먼 사이넥이 말한 '유한게임'이 된다.


유한게임에서는 참여자가 전부 공개된다. 규칙도 정해져 있다. 게임의 목적이 상호 합의로 정해져 있으며 어느 한쪽이 그 목적을 먼저 달성하면 게임이 종료된다.

반면 무한게임에서는 참여자 전부가 공개되지는 않는다. 명문화되거나 상호 합의가 된 규칙도 없다. 참여자의 행동을 통제하는 관습이나 법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 사이먼 사이넥의 <인피니트게임>(윤혜리 옮김, 세계사, 2022) 중 -


사이먼 사이넥은 '유한게임'과 '무한게임'의 예시로 베트남 전쟁을 들었다. 미군은 베트남 전쟁을 유한게임으로 생각했기에 대부분의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는 패배했다. 북베트남은 무한게임으로 해당 전쟁에 임했기에 한 명의 군인이라도 살아남았다면 끝까지 항전할 각오가 되어있었고, 미군에게는 유한게임이었기에 어느 시점에는 반드시 철수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미군에게는 시간도 그리고 전쟁의 명분도 없었다.


이처럼 '시간'이라는 자원을 유한하게 보는지 혹은 무한하게 보는지에 따라서 결과가 극명하게 달라지게 된다. 즉 자원에 대한 관점이 행동양식을 바꾸고 행동양식의 변화는 새로운 결과를 낳게 된다. 이는 시간이라는 자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야마구치의 슈의 <비즈니스의 미래>에 따르면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의 통일을 앞두고 고민에 빠지게 된다. 통일을 하더라도 부하들에게 줄 수 있는 땅은 한정되어 있고, 이러한 상황은 또 다른 내부 분열을 야기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즉 땅이라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위에서 홉스가 말한 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불러일으킬 것이 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유한한 땅을 무한한 무언가로 대체하는 묘수를 찾게 된다. 자신이 즐기는 다도(茶道)에 주목해 다기를 비롯한 차 도구를 산이나 성과 교환할 수 있게 만들어 무한한 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종이 한 장 위에 색을 더함으로써 수백억이라는 가치를 창출하듯이 말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만들어 낸 것은 '상징'이라는 무한 가치라고 볼 수 있다. 유한한 땅과 달리, 어떠한 의부여하느냐에 따라 상징은 무한한 가치를 품게 된다. 이는 단지 역사 속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다. 회사에 '돈'이라는 자원이 부족할 때 상징이라는 자원을 만들어 이를 무한하게 활용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연봉을 20% 올려줄 것을 10% 올려주고 직급의 명칭을 그럴싸한 '이사'나 '상무'와 같이 변경해 주는 것 같이 말이다. 다만 직급을 올려주는 것은 매우 흔한 '상징'의 이용 방식이다 보니, 그 가치가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떨어지고 있어 조금 더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래의 예처럼 말이다.  


양털을 덧댄 단순한 가죽 재킷은 운전자에게 어떤 가치가 있을까? UPS는 25년 무사고 운전기록을 달성한 운전자에게 이 재킷을 상으로 주었다. 25년! 이것이 어떻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은 단순히(운전할 때 입는) 항공 재킷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갈색 셔츠를 UPS 빌딩의 옷걸이에 거는 의식에 참석한다. 스타디움의 전설적인 스포츠 스타 유니폼처럼 말이다. 이 운전자들은 유니폼 소매에 부착하는 특별한 패치를 받고, 창고 근처에 있는 특별 주차장소도 배정받는다. 2013년에는 약 1,500명의 운전자, 즉 UPS 전체 운전자의 7퍼센트가 이 엘리트 그룹에 속해 있었다. UPS는 항공 재킷 비용으로 화물차 운전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더 안전하게 배송하도록 만들었다.

- 데이비드 푸비니(2022)의 <C레벨의 탄생> 중 -


위의 예처럼 양털 가죽 재킷은 그 자체로 엄청난 가치가 있는 물건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25년 무사고의 상징'이 되는 순간 원가를 초월하는 무한가치로 도약하게 된다. 유튜브에서 10만, 100만 구독자에 따라 실버버튼과 골드버튼을 주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유한한 돈이 아닌 무한한 상징으로 크리에이터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한정된 자원'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모든 것은 유한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다만 이러한 프레임을 '상징'이라는 무한자원으로 뛰어넘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유한의 세계에서 무한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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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kap/52


사진: UnsplashTim Mossho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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