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압구정 암장에서 진짜 영화 한 편 찍었음. 어떤 남자가 갑자기 심정지 왔는데, 옆에 있던 클라이머가 의사였나 봄. 바로 심폐소생술하고, 칼로 가슴 찔러서 살림. 옆에서 보기만 하는데도 지리는 줄. 완전 멋있었음…]
퇴근길 지하철 안, 때꾼한 눈으로 SNS 타임라인을 흘려보다가 우연히 그 글을 봤다. 처음엔 그냥 있을 법한 미담이라 넘기려 했지만, ‘칼로 가슴을 찔렀다’라는 말에 끌렸다. 의료인이 갑자기 쓰러진 행인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해서 살려냈다는 뉴스는 꽤 있지만 현장에서 직접 시술을 집도하는 경우는 드무니까, 잘 다듬으면 조회수 좀 나올 만한 미장센이겠다 싶었던 거지. 당사자인 의사도 직접 만나서 인터뷰도 얹으면 금상첨화다. 아직도 사람들은 뻔한 영웅담을 좋아하니까.
압구정 클라이밍이라고 치니까 나오는 암장이 한 군데밖에 없다. 다음 날 바로 찾아갔다. 직원은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연락처를 줄 수는 없다고 했다. 기자 명함을 건네며, “요즘 이런 일 기사 나면 다들 좋아해요”라고 덧붙였지만, 직원은 그저 애매하게 웃으며 명함을 전달하겠다고 했다.
하루를 꼬박 기다려도 연락이 없길래 다시 암장을 찾았다. 이미 사건을 다룬 기사는 쏟아져 나왔다. <심정지 환자, 등반 중이던 의사에 의해 기사회생>. 마음이 급했다. 직원은 나를 보자 거북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예의 차릴 여유 없이 졸랐다. 적어도 한 번만 통화를 연결해 달라고 했다. 직원은 한참 망설이다 결국 의사에게 연락을 취했고, 상황을 설명한 뒤 전화를 내게 넘겼다.
예상은 했지만, 의사는 끝내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남한테 생색내는 일은 죽어도 못하는 성격 같았다. 나는 실망을 감추지 못한 채, 그러면 최소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이라도 글로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요즘같이 삭막한 세상에 이런 선행이 널리 알려지면 얼마나 좋냐, 사회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기회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떠들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생각해 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 더럽게 비싸게 구네.
“네, 선생님. 작성하셔서 제 메일 주소로 좀 부탁드립니다. 아시겠지만 이게 기사도 타이밍이라는 게 있어서 너무 늦어지면 곤란합니다,”
까지 말했을 때 전화는 이미 끊어진 뒤였다.
이틀 후, 늦은 밤까지 홀로 야근 중이었다. 오늘 중에는 보내주지 않을까,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메일이 도착하면 바로 다듬어서 데스크에 넘길 생각이었다. 이미 흐름도 구상해 두었고, 전형적인 ‘착한 기사’였기에 데스크에서도 막을 이유가 없었다. 사실 확인은 진즉에 끝났고 명예훼손이나 개인정보 침해 등 꼬투리 잡힐 만한 것도 없어서, 후딱 쓰고 치워버릴 요량이었다.
근데 이게 뭐람.
마침내 기다리던 이메일이 도착하고, 굵은 글씨체의 (제목 없음)을 클릭했다. 본문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길었다. 한사코 사양할 땐 언제고, 쓰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 피식 웃고 읽어 내려가는데, 내용이 영 이상하다. 아니, 이상한 건 아니고, 적어도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고 해두자. 다 읽고 나니 이걸 어떻게 기사로 쓰나 싶다. 이러면 곤란한데. 미담이긴 한데 전형적인 훈훈함도 없고, 설명도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그냥 버리자니… 내용이 아까웠다. 배운 사람은 글도 잘 쓰는지, 맞춤법이나 문법은 거의 완벽했다. 워낙 건조하게 써서 덜어내고 자시고 할 감정조차 없었다. 제목이라도 내가 지을까 하다가, 이 또한 의도가 있을 것 같아 굳이 보태지 않았다. 이걸 기사로 내기도 뭐 하고, 어디 SNS에 올릴 수도 없어서 일단 들고만 있었다. 왜 기사를 가져오지 않냐고 닦달하는 국장에게만 슬쩍 보여줄까? 고민 중이다. 다음은 의사가 보내온 이메일 전문이다.
보낸 사람: dr.stranger@ggmail.com
받는 사람: journalist.lee@xxilbo.net
날짜: 202X.8.5 오후 10:59
제목: (제목 없음)
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제가 겸손해서 그렇다며 추켜세우곤 하는데, 정말입니다. 저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내과를 전공한 전문의로, 남들처럼 월급 받으며 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평범하다는 걸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후술 하겠지만 제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게 이 사건에서 몹시 중요합니다.
클라이밍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일상이 무료해서 시작했습니다. 동료 의사들은 골프나 테니스도 많이 치는데, 몇 번 따라가 봤지만 재미가 없더군요. 그 와중에 돈은 또 얼마나 많이 드는지. 순수하게 재밌는 운동을 찾다가 발견한 게 클라이밍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퍼즐을 좋아했는데, 클라이밍은 몸으로 푸는 퍼즐 같아서 취향에 꼭 맞았습니다.
일이 힘들어서 암장에 자주 가진 못했습니다. 의사는 스트레스를 참 많이 받는 직업입니다. 환자가 몰리는 날이면, 진이 빠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꼭 클라이밍 가야지, 출근하면서 다짐해도 퇴근하면 그저 소파에 누워서 쉬고 싶습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가려고 노력하는데, 하필이면 사건이 벌어진 날이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일종의 직업병인데, 빌딩에 들어설 때 자동심장충격기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500세대 이상 공동주택이나 상시근로자가 300명 이상인 사업장에는 자동심장충격기를 반드시 설치해야 합니다. 대충 큰 빌딩이나 사람이 많이 오가는 장소에는 무조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다니는 암장은 고층 빌딩의 지하 1층을 통째로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었기에, 1층 안내 데스크 옆에 자동심장충격기가 설치되어 있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문제가 잘 안 풀렸습니다. 클라이밍은 안 되는 날은 또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인지, 옆에서 운동하는 남자 두 명의 대화를 엿듣게 됐습니다. 아니, 엿들었다기보다는 특정 단어가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한 명이 ‘기흉’이라고 말했거든요.
폐는 갈비뼈로 둘러싸인 흉강이라는 공간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폐와 흉강의 벽 사이에는 아주 얇은 틈이 있으며, 이걸 흉막강이라고 부릅니다. 흉막강에는 원래 공기가 없고 소량의 액체만 있어서 폐가 잘 움직이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흉막강에 공기가 차오르면, 압력 때문에 폐가 정상적으로 팽창하지 못하고 쪼그라들게 됩니다. 바람이 빠져 찌부러진 풍선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런 상태가 되면 가슴이 아프고 숨을 쉬기가 어려워지는데, 이를 바로 기흉이라고 합니다.
기흉이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특별한 외상 없이 저절로 발생하는 기흉을 자연 기흉이라고 하며, 폐 표면에 있던 작은 공기주머니가 터지면서 발생합니다. 자연 기흉은 주로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의 남성에서 잘 생기는데, 왜 그런지는 잘 모릅니다. 그에 반해 교통사고나 뾰족한 물체에 찔리는 외부 충격으로 폐가 손상되어 발생하는 기흉은 외상성 기흉이라고 부릅니다.
흉막강 내로 공기가 빠르게, 많이 유입되어 배출되지 않을 경우, 심장이 한쪽으로 눌려서 혈액 순환이 되지 않는 긴장성 기흉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는 심정지를 유발할 수도 있는 응급 상황입니다.
하여튼, ‘기흉’이라는 단어가 들려서 쳐다보니 키가 크고 마른 남자가 왼쪽 윗가슴을 쓰다듬으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아프고 숨쉬기가 어려워 보였습니다. 대화 내용으로부터 유추해 보건대, 남자는 이미 한 차례 자연 기흉으로 치료받은 적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그만해야 하는 거 아냐?”
친구로 보이는 다른 남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말렸습니다. 아파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앉았습니다.
“아, 또 기흉인가.”
의료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라도, 한 번 병을 앓으면 그 병에 대해서는 ‘반 의사’가 되기 마련입니다. 아마도 처음 기흉으로 진단받았을 때의 증상과 유사했던 모양입니다. 그때만 해도 딱히 도와줄 게 없어 보였습니다. 남자는 이미 본인의 상태를 기흉이라고 의심하고 있었고, 운동을 중단하고 쉬고 있었으므로, 곧 귀가하여 진료를 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 다른 문제를 풀러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고성이 들려왔습니다.
“여기요, 좀 도와주세요!”
돌아보니 아까 가슴을 부여잡고 있던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친구가 안절부절못하며 그를 세차게 흔들고 있었습니다. 훈련받은 내과 의사는 이럴 때 이성보다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남자에게 달려가 경동맥의 맥을 짚었습니다. 맥박이 없었습니다. 심정지였습니다. 남자를 반듯하게 눕히고 바로 심장 압박을 시작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미 119에 신고 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직원에게 명확하게 지시했습니다.
“1층에 자동심장충격기가 있어요. 최대한 빨리 가져다주세요.”
직원이 달려 나가고, 주변에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달라고 말했습니다. 심장 압박의 주기는 2분입니다. 2분 동안 심장 압박을 멈추지 않고 시행한 뒤, 맥박을 재확인합니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몇 년 만에 심장 압박을 해봤습니다.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습니다. 별 것 아닌 것같이 보여도, 성인 남성의 가슴뼈를 깊이 눌러 마사지하는 건 상당한 체력을 요구합니다. 저도 평범한 체격이지만, 119가 올 때까지 혼자 심장 압박을 하면 지쳐서 심폐소생술의 질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CPR(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심폐소생술) 할 줄 아는 분?”
심장 압박을 하면서 쥐어짜는 듯이 외쳤는데 다행히 두 명이 다가왔습니다. 두 명 다 간호사라고 했습니다. 평일 저녁이라 암장에 사람이 많았는데, 덕분에 저를 비롯한 의료인이 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재빨리 손을 바꿨습니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두 명이 손을 번갈아 가면서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응급 현장의 리더로서 심폐소생술을 지휘하면서 동시에 심정지의 원인을 유추하고 교정 가능한지 고민해야 했습니다. 심정지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교정 가능한 원인 11가지가 있습니다. 앞 글자를 모아 6H 5T라고 부릅니다. 의과대학을 다닐 때 반드시 외워야 하는 ‘족보 중의 족보’였습니다. 심정지 환자를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이 원인을 얼마나 빨리 찾고,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5T 중에 하나가 바로 긴장성 기흉(Tension Pneumothorax)입니다.
남자의 얼굴은 벌써 창백함을 넘어 푸르스름하게 변했고, 산소가 돌지 않아서 입술은 진한 보랏빛을 띠었습니다. 남자의 가슴은 비대칭이었습니다. 오른쪽은 납작하고 움직임이 없는데, 왼쪽은 약간 부풀어 오른 듯 보였습니다. 아까 남자가 아프다며 어루만지고 있던 쪽이었습니다. 또한 목을 살펴봤을 때, 경정맥이 터질 듯 부풀어 올라와 있었습니다. 목 혈관이 도드라져 있다는 건, 피가 심장 쪽으로 못 가고 막혀 있다는 뜻입니다. 정맥은 하수도처럼 온몸을 돌고 온 혈액을 심장으로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데, 어떤 이유로 혈류가 막히니 하수도가 팽창한 것입니다.
사실 저는 본능적으로 긴장성 기흉으로 인한 심정지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왼쪽 흉막강 안에 빠르게 공기가 차오르면서 심장을 오른쪽으로 밀어버렸고, 심장이 뛰는 것을 방해하다가 결국 심정지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때부터 두 손에 식은땀이 났습니다. 119가 도착하려면 아직 몇 분 더 기다려야 하고, 병원으로 이송할 때까지 최소 십여 분은 더 소요될 것입니다. 요즘처럼 ‘응급실 뺑뺑이’가 흔히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몇십 분, 아니, 몇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긴장성 기흉으로 인한 심정지가 맞다면, 아무리 심폐소생술을 하여도 맥박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심정지 상태가 길어질수록 환자의 뇌는 저산소성 손상으로부터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때 직원이 자동심장충격기를 가져왔습니다. 심장 압박을 방해하지 않고 옷을 가위로 찢은 뒤, 자동심장충격기의 패드를 붙였습니다. 충격 가능한 리듬이었습니다.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심장 충격을 가할 수 있는 리듬이 있고, 아닌 리듬이 있습니다만 거기까지 들어가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까 생략하겠습니다. 어쨌든 심장 충격을 가할 수 있는 리듬이 더 좋은 겁니다. 충격을 한 번 주고, 바로 심장 압박을 재개했습니다. 간호사 두 명의 등이 이미 땀으로 흥건했습니다. 저를 대신해 시간을 벌어준 두 분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2분 더 심장 압박을 하고 다시 확인했지만, 불행히도 심장이 뛰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충격을 가하고 심장 압박을 재개했습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저는 심한 갈등에 빠졌습니다. 긴장성 기흉으로 인한 심정지라면, 지체 없이 가슴에 구멍을 내어 공기를 밖으로 배출해 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병원이 아닙니다. 사용할 수 있는 도구라고는 손 소독용 알코올 젤과 소독되지 않은 커터 칼, 볼펜, 그리고 수건뿐입니다. 의학적 판단과 시술 방법을 상의할 동료도 없습니다. 긴장성 기흉이라는 나의 진단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자연 기흉으로 긴장성 기흉이 발생하고, 심정지까지 발생하는 건 드문 일입니다. 틀린 진단을 기반으로 조악한 도구로 가슴에 구멍을 뚫다가 쇄골하동맥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기흉이 아닌 과다 출혈로 환자가 사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저는 긴장성 기흉에 대해서 응급 감압술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물론 의과대학을 다닐 때 교과서로 응급 상황 시 대처법을 배우기는 했습니다만, 직접 시술을 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애초에 긴장성 기흉을 살면서 딱 한 명밖에 못 봤습니다. 내과 전공의 시절 병원에서 맞닥뜨렸습니다만, 환자는 병원 안에 있었고, 상태도 안정적이었습니다. 제가 한 일이라곤 가슴 X선 촬영 오더를 내고, 판독을 확인한 뒤 흉부외과 팀을 호출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영화에서야 주인공이 긴장성 기흉에 걸린 사람을 살린답시고 볼펜으로 가슴을 쑤셔서 생명을 구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해피엔딩이 보장된 드라마일 뿐입니다. 서툰 시술로 환자가 죽는다면, 사람들은 나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법’이 있긴 하지만, 현장에서 반드시 작동하는 건 아닙니다. 불과 얼마 전에도 신생아의 중장 이상 회전과 꼬임에 대해 수술해 준 당직 외과 의사에게 1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있었습니다. 소아외과 세부 전문의 자격이 없는 일반외과 전문의가 응급 수술을 집도하여 환자에게 후유증이 남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자신의 전문 분야는 아니었으나 응급 상황을 고려하여 선의로 수술해 준 일반외과 의사만 불쌍해져 버렸습니다. 하물며 그 상황은 병원에서 발생했습니다. 숙련된 외과 교수가 가용한 모든 자원을 활용해서 수술을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거액을 토해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병원도 아닌 암장에서 응급 감압술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과 의사가 커터 칼로 환자 가슴에 구멍을 내다가 사람을 죽인다면? 사람들은 나의 신상을 털고 나를 죽일 놈으로 매도할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한국에서 의사로 일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의사들 사이에서 ‘의사는 교도소 담장을 걷는 직업’이라는 말이 자조처럼 떠돕니다. 의료 사고가 나면, 민형사 소송에 휘말리기 십상입니다. 잘잘못을 떠나서, 법적 다툼은 인생을 갉아먹는 늪입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교도소 담장 위에서 외줄을 타고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눈앞에 쓰러진 환자보다, 나의 안위를 먼저 걱정했습니다. 일단 법적으로 나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누가 봐도 나는 훌륭하게 CPR을 시작했고, 일사불란하게 현장을 지휘했으며,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게다가 남자가 쓰러지기 전에 기흉을 의심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건 나 뿐이었습니다. 아무도 내가 긴장성 기흉을 의심했는지 모를 것입니다. 설사 왜 긴장성 기흉을 의심하지 않았냐 추궁당해도, 당황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둘러대면 그만입니다. 내가 끝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면, 이 상황은 그냥 ‘원인 모를 심정지’로 기록되고 끝날 것입니다. 누구도, 어떤 법도, 나에게 책임을 묻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저 최선을 다했지만, 환자를 살리지 못한 의사로 잊힐 것입니다.
하지만… 나도 내과 의사로서 사명감과 양심이 있습니다. 만약 긴장성 기흉이라는 판단이 맞고, 실제로 심정지의 원인이 맞다면, 그리고 나 혼자 그걸 알아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 이 남자가 죽는다면, 나는 과연 평생 발 뻗고 잠들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나의 양심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괴로웠습니다. 아, 차라리 내가 긴장성 기흉을 의심하지 못했더라면, 그들의 대화를 엿듣지 않았더라면, 아니, 오늘 아예 암장에 오지 않았더라면.
내 판단이 옳았고, 멋지게 응급 감압술에 성공해서 환자를 살리더라도, 나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론 누군가 칭찬해 주겠지요, 언론에 기사가 나고 나는 자랑스러운 히포크라테스의 후예가 될 것입니다. 환자와 보호자는 나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평생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모르겠다고 하겠죠. 하지만 나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의사로서의 보람이 거액의 민사 배상금을 대신 내주는 건 아니니까요.
심폐소생술을 계속 지휘하면서, 혼자 머릿속으로 이런 고민을 하느라 나는 정신이 나가버릴 듯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이 불과 몇 분 안에 저렇게 많은 생각을 하면 제아무리 똑똑한 인간이라도 대뇌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이대로 머리가 이상해져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2분 지났습니다!”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주던 누군가 외쳤고, 가슴 압박을 하던 간호사가 멈췄습니다. 모두 나를 바라봤습니다. 기계적으로 맥박을 확인했습니다.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리듬을 확인했지만, 이제는 충격 가능한 리듬도 아니었습니다. 제기랄. 상태가 더 나빠진 것입니다. 계속 압박하세요, 나의 지시에 맞은편에 앉은 간호사가 묵묵히 가슴 압박을 재개했습니다. 망할 구급차는 왜 안 와. 이제 고작 5분쯤 흘렀을 뿐인데, 그 시간이 천 년 같이 느껴졌습니다.
기분 탓인가, 환자의 얼굴이 점점 시커메졌습니다. 그때까지도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누가 그 상황에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그 순간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가슴 압박을 하고 있는 간호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처음 만난 나의 판단을 믿고 역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분도 굳이 자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목에 간호사 면허증을 걸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가슴 압박을 도와주지 않아도 상관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도움을 구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나섰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도대체 의료인이라는 업은 뭐길래 이런 상황을 외면하지 못하는 걸까요.
바로 그 순간, 나는 사람의 선의를 믿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더 고민한다고 해도, 더 나은 선택지라는 건 없었습니다. 어느 선택을 내리든 환자가 죽으면 나는 자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자책을 덜할 수 있는 쪽의 결정을 내리자. 그리고 그 판단의 근거는 교과서로 배운 의학이 아니라, 오롯이 의사로서 나의 양심과 그걸 알아줄 사람들의 선의였습니다. 설사 내 판단이 틀리더라도, 시술이 잘못되더라도, 주변의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고자 했던 나의 진심을 이해해 줄 것이다. 그 순간에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알코올 젤이랑 커터 칼, 볼펜, 수건 가져다주세요.”
직원에서 지시했습니다. 결정을 내리자 부유물이 걷히듯이 머릿속이 깨끗해졌습니다. 마음은 차분해지고, 손도 떨리지 않았습니다. 직원이 빠르게 물건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가슴 압박을 계속하라고 하면서, 볼펜의 심을 빼내고 몸체만 남겼습니다. 얇은 플라스틱 관이 나중에 흉관을 대신해 줄 것입니다. 알코올 젤을 초크가 묻은 두 손과 볼펜의 몸체, 커터 칼의 칼날, 남자의 왼쪽 윗가슴에 듬뿍 발랐습니다. 솔직히 소독보다는 의식에 가까운 행위였습니다. 이후 그의 쇄골 아래를 더듬어 두 번째와 세 번째 갈비뼈 사이를 찾았습니다. 숨을 들이쉬고, 커터 칼을 가져가 짧고 깊게 찔렀습니다. 손으로 피부와 근육의 저항이 전해졌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흘렀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질긴 조직이 뚫리는 느낌과 동시에, ‘쉭’하고 공기가 빠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살았다, 속으로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곧바로 준비해 둔 볼펜 케이스를 절개 부위에 밀어 넣었습니다. 플라스틱 관이 미끄러지듯 들어갔고, 피부와 조직 사이에 틈을 만들며 자리를 잡았습니다. 팽창했던 왼쪽 가슴이 조금씩 가라앉고, 남자의 입술 주변에 희미하게 혈색이 번지는 듯했습니다.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아무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겠지만, 나는 알았습니다. 시술이 성공했다는 걸. 이 남자는 이제 살았습니다.
“계속하세요!”
나는 심폐소생술을 멈추지 말라고 지시했고, 스스로도 볼펜 몸체가 박힌 가슴을 감싸듯 눌러 흐트러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면서 입술이 떨려왔습니다. 2분을 채우고, 맥박을 확인했습니다. 거짓말처럼 손가락 밑에서 강한 박동이 느껴졌습니다.
“돌아왔습니다!”
나의 외침에 우리를 둘러싼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누군가 손뼉을 쳤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직후, 구급대가 도착했습니다. 나도 정신없이 구급대를 따라나섰습니다. 옷을 갈아입기는커녕, 보관함의 짐도 그대로 두고 나왔습니다.
“이십 대 남자, 긴장성 기흉으로 인한 심정지가 의심돼서 응급 감압술 시행했고, CPR 8분 정도 진행했습니다. 방금 맥박 돌아왔어요. 병원 도착할 때까지 왼쪽 가슴의 볼펜 빠지면 안 됩니다. 저도 같이 갈게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남자의 혈압은 안정적이었고, 의식도 조금씩 돌아오는 듯했습니다. 눈을 뜨거나 말을 하진 못했으나, 입으로 작은 신음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다행히 받아줄 수 있는 응급실이 있었습니다. 도착했을 때, 의료진들은 나의 몰골을 보고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카락, 얼굴에 초크가 묻어있고, 두 손은 피투성이인 데다, 운동복 차림에 암벽화를 그대로 신고 있었습니다. 응급실의 의사에게 내과 의사임을 밝히고,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습니다. 그 이후론 응급 처치를 하는 동안 멍하니 대기실의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피 묻은 손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누군가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짚었습니다. 아까 그 의사였습니다.
“환자 의식 돌아왔습니다. 상태도 안정적입니다. 흉관 삽입했고, 흉부외과 팀도 호출했습니다.”
“...다행이네요.”
목소리가 갈라져서 나왔습니다. 환자가 살아서 기뻤고, 또 걱정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하지 않아서 기뻤습니다.
“그… 응급 감압술 전에 해보셨어요?”
“아니요, 처음이었습니다.”
응급실의 의사가 조심스럽게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의사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짠한 눈빛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구구절절 설명할 순 없지만, 이 사람은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의사라면 누구나 이해할 것입니다. 내가 왜, 어떤 고민을 했는지. 반대로 말하면, 의사가 아니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왜, 어떤 고민을 했는지. 의사는 참으로 고독한 직업입니다. 면허의 무게를 알고 선택한 줄 알았는데,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멋모르고 의대에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척비척 일어나 응급실을 나왔습니다. 그대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습니다. 샤워를 하고 죽은 듯이 잠들었습니다. 피로 더러워진 옷은 세탁기로 빨기가 찝찝하여 그냥 버렸습니다. 암장에 짐을 찾으러 가야 하는데, 며칠 동안 일이 바빠서 들르지 못했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나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영웅의 서사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아니, 일단 나는 영웅이 아닙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 순간 영웅이 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환자가 살아서 정말 기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또 맞닥뜨리고 싶지 않습니다. 다음에 또 그런 상황이 온다면, 외면하진 않겠지만 굳이 응급 감압술까지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두렵기도 합니다. 운 좋게 얻어걸린 한 번의 경험 때문에, 다른 환자를 긴장성 기흉으로 의심해서 오진으로 이어질까 봐. 의학은 경험주의 학문이지만, 전문가는 자신의 경험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의사가 된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나는 의학을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의사가 환자를 살려낸 결과만 보고 환호합니다. 하지만, 초연하고 냉정해 보이는 의사도 뒤에서는 지질하고,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고민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보호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의사도 그저 나약한 한 명의 인간일 뿐이라고.
한편으론 두렵습니다. 이 일이 기사화되면, 의료계 동료들이 나를 비난할까 봐서요. 사람을 살린 건 좋은 일이지만, 다른 의사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선뜻 응급 감압술을 시행하지 않았다고 비난받을지도 모릅니다. 저 의사는 정확하게 진단을 내리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했는데 너는 왜 그렇게 하지 않냐고. 네가 나대는 바람에 불필요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렵습니다. 이 사건이 동료 의사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선의는 어디까지나 선의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삿거리는 아니겠지요, 나는 기자가 아니지만 왠지 알 것 같습니다. 웬만하면 제 글은 기사로 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읽고 휴지통에 버리셔도 좋습니다. 환자는 잘 회복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걸로 저는 충분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은 여기서 끝났다. 솔직히 감동적이긴 했지만 찝찝했다. 다 읽고 나니 이상하게 속이 더부룩했다. 기대했던 글이 아니었고, 고로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의사의 뜻을 전부 이해한다고는 못 하겠다. 그의 말대로, 나는 의사가 아니니까. 무슨 생각이 이렇게 많아, 더럽게 철학적이네. 위선적이라고 하기는 뭣하고, 세속적이라고 하기도 뭣하고. 어쨌거나 기사로 쓰기엔 영 불편한 이야기였다.
나는 결국 이 글을 싣지 않았다. 별표 버튼을 눌러 ‘중요 편지함’으로 분류만 해두었다. 데스크에는 의사가 끝끝내 이메일을 보내오지 않았다고 둘러대기로 했다. 언젠가, 선의를 무모하다고 말하는 세상이 오면 그때쯤엔 꺼내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