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리가 서로 멀어질 날이 올까
항상 함께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리 반갑지 않아서일까. 잘 지내냐는 말은 고사하고 안녕, 이라는 그 흔한 인사말조차 나누지 않았던 너와 함께 지낸 게 벌써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를 일이네. 이제는 처음 널 만났던 날도 그렇게 흐릿해서 마치 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너와 함께하며 살아왔던 것만 같아.
내가 어렸을 적에는 너와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것 같지 않은데, 어느 순간부터 넌 은근슬쩍 내 옆에 와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내 안에 딱 달라붙어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서점에 가서 프로이트를 읽기 시작한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면 더 이전으로 올라가야만 하는 걸까? 예전엔 나도 그렇게 너란 친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행복이란 다른 친구와 즐겁게 지냈던 기억이 조금은 있긴 한데.
너를 싫어하지만 가끔은 이제 내가 너를 정말 싫어하는지도 의문이 들 때가 있긴 해. 너와 함께 있으면 항상 불안하고, 내 마음이 짓눌리는 기분이 들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뒤에서 나에게 손가락질하며 내 빈틈을 노려 무너뜨리려는 것 같이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때로 그 흔들림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할 때가 있거든. 너와 함께 한 시간은 저주일까, 그렇지 않으면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인 걸까.
생각해 보면 너에게 고마운 점도 많은 것 같아.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살아남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필요성을 증명해 낸 원천은 항상 나 자신을 만족시키지 않고 더 잘해야만 한다고 옆에서 말없이 채찍을 건넨 너 덕분도 있을 테니까. 물론 그로 인해 내가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오랜 시간 동안 지금까지도 나 자신의 필요성을 검증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내 자신은 비록 지금 무너져 버렸지만.
너와 함께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즐거운 사람, 행복한 사람보다는 차가운 사람, 시니컬한 사람이라는 말을 더 많이 듣게 되었던 것 같아. 실상은 이미 네 어둠에 잡아먹혀 길을 잃은 지 오래였을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철저하게 그를 숨길 수 있었지. 최근에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조각난 내 파편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나 보이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다시 깨어진 유리병을 쓸어 담듯이 조금씩 다시 모아가고 있고.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내가 너와 멀어질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언젠가 더 이상 너와 함께 하면서 내 마음을 잡아먹고 있는 이 불안을 벗어던지고 온전히 사람의 두 눈을 마주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더 이상 나 자신의 필요성을 타인에게서 끊임없이 입증해내려 하지 않고 온전히 스스로가 나의 당위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로 날 다시 끌어안을 수 있을까.
너는 언제나 말없이 내 옆에 있으면서 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오라고 한 적이 없음에도 어느샌가 기척 없이 그렇게 계속해서 당분간은 나와 함께 하려 하겠지. 가끔은 다른 사람들도 너를 마음에 품고 있는지 궁금하긴 해. 내 안에 있는 너만큼 활동적이고 커다랗지 않아서 티가 안 나는 걸까. 아니면 내 그릇 자체가 너무 작아서 네가 조금만 뛰어놀아도 좁은 놀이터에 질린 어린아이마냥 튀어 보이는 걸까.
그래도 언젠가, 너를 보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어. 그리고 그때에 네가 나를 기쁘게 떠나 줬으면 좋겠어. 당장의 우리는 서로의 이상한 필요에 의해 각자를 떨쳐낼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너에게 시달린 오랜 시간 동안의 망가진 시간은 다시 내가 되돌아가 나를 기다리는 또 다른 친구들에게 되돌려 주기에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거든.
내가 좀 더 나다워지길 바래, 너를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로 숨 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