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매달린 순간, 비로소 나를 보았다
타로 카드의 12번째 카드인 The Hanged Man, 나는 여러 카드들 중에서도, 내 인생 카드도 무엇도 아니지만 이 카드를 가장 좋아한다. 어느 타로 덱에서든, 이 카드에는 다른 카드들과 달리 굉장히 특이한 장면으로 그려져 있다.
거꾸로 매달린 한 남자는 자칫 원래 카드의 방향을 착각하게 만든다. 올바로 서있는 자세에서 다리가 묶인 걸까? 하는 착각을 로마자 위치를 통해 다시 바로잡고 보면, 한 사람이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팔은 묶여 있고, 다리가 꼬여 있는 채로 머리에 피가 쏠려 고통스러울 법도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일말의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편안하고, 어쩐지 평온해 보이기까지 한다.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얼굴의 위로는 직각으로 꺾인 한쪽 다리와, 얼굴 뒤에 펼쳐진 후광이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지금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잠시 멈춰 세운 것이라고. 타의가 아닌 자의로, 자기를 잠시 속박하고 있을 뿐이라고.
12번째 카드인 이 카드는 주로 ‘멈춤’, ‘희생’, ‘관점의 전환’, 그리고 ‘내면의 깨달음’의 핵심 키워드를 가진다. 카드 중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정적인 카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돌지도 않고, '마차'처럼 질주하지도 않으며, '탑'처럼 무너지지도 않는다. The Hanged Man의 사람은 그저 거꾸로 매달려 있다.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은 채, 세계를 정지시킨 채, 오직 침묵 속에서 생각한다.
나는 살면서 쉼 없이 움직이는 시간 안에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달려오기만 했다. 마치 '움직여야만 살아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뇌는 경주마처럼,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지금까지, 나 자신을 위해 쉬어 본 경험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대학교 때는 칼군대에 칼복학, 휴학 없는 칼졸업으로 학교를 마쳤고, 직장 생활에서 이직을 4번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이 쉬었던 기간은 체코에서 복귀하고 2달 동안 시차적응을 해 나갈 때 말고는 없었다. 금요일까지 근무하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한 적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인생에서 끊임없이 달렸고, 스케줄을 채웠고, 타인보다 앞서기 위해 내 감정을 소비했다.
마치 멈추는 순간 곧장 뒤처질 것처럼, 조급함이 늘 등을 떠밀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왜 그리 여유가 없었을까?라고 생각하면,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은 있었다. 나는 괜찮을 거라는, 나는 고장 나지 않을 거라는.
그러던 어느 날, 모든 것이 고장 났다. 성과는 쌓였지만, 마음은 마르고, 관계는 흐려졌다. 무엇이 옳은지도 헷갈릴 때, 나는 비로소 멈췄다. 아니, 멈춰질 수밖에 없었다. 피로는 몸을 무겁게 했고, 의미 없는 승부욕은 나를 고립시켰다. 사람의 선의가 더 이상 선의로 다가오지 않고 기분부전증을 넘어 우울증의 늪으로 나를 빨아들이던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에, 나는 내 안에 있는 매달린 남자를 발견했다. 그 남자는 평온하게 서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움직일 때가 아니다. 거꾸로 서서, 다른 눈으로 봐야 할 때다.”
거꾸로 매달린 남자가 되어 나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쉼 없이 달려오기만 한 나에게는 몹시도 위태로운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을 멈춰 서게 할 만한 용기가 있지 않았고, 내가 벌려온 과거를 뒤돌아볼 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하지 못했던 연락이 남아 있었고, 주워 담지 못할 말들을 뱉어내었고, 돌아보지 못한 아픈 감정을 그저 어딘가에 묻어두었다. 하지만 가지에 매달린 이상, 그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며, 마주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며 내가 가진 관점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했다.
변화를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변화란 과거에 내가 해왔던 일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라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과거의 내 방식이 틀린 방식이 아니었고, 일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면 더더욱이나. 자신이 자신을 부정하여 다친 마음에, 또다시 스스로를 부정해야 하는 사람이란 얼마나 위태로운가.
그러나 그 지독한 자기희생과 자아성찰을 통해서, 비로소 낡은 고정관념을 내려놓는 용기가 우리에게 돌아온다. 그 용기는 움직이기를 멈추고 스스로를 다시 들여다보는 고요함이다. 멈추지 않고 달리기만 했던 속도의 신화에서 내려와, 성과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한 발짝 벗어나 보는 일.
그 멈춤이야말로 The Hanged Man이 가리키는 ‘내면의 전환’이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내려놓아야만 새로운 관점을 얻는다. 자존심, 기대, 통제욕, 또는 성공에 대한 강박. 무엇이든 그 자리에서 내려놓아야 한다고, 거꾸로 된 세상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세상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The Hanged Man은 성찰의 시간을 요구할지언정, 그 시간에서 직접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그는 그저 우리에게 ‘거꾸로 매달려 보기’를 요구하며,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있을 뿐이다.
늘 정답이라고 여겨온 방식이 정말 옳았는가?
지금까지의 결정을 계속 고수할 이유는 충분한가?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 내 안의 침묵을 듣고 있는가?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로든, 방식으로든 그 자리의 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가 있다. 삶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멈춰 서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절망적이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바로 The Hanged Man이 우리를 찾는 때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포기도 아니다.
그것은 성찰이며, 준비이며, 내면을 다지는 시간이다.
거꾸로 본 세상은 처음엔 낯설지만, 곧 익숙해진다.
그리고 그 낯선 시선은 우리를 어제와는 다른 인간으로 이끈다.
지금 당신이 멈춘 그 자리가, 새로운 길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제 당신에게도 질문이 주어진다.
“지금 이 정지의 순간, 당신은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바라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