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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향 Karen Koo Jul 27. 2024

영리하고 은근하게 티 내기

글로벌 게임사의 한국 사회환원사업

“오! 오늘부터 출근이었지, 좋아, 나랑 회의부터 합시다”


2012년 2월, 본인의 라이엇 게임즈 첫 출근일의 업무는 한국 대표와 마주 앉아 대화하기로 시작됐다. 홍보 조직을 꾸리고 목표를 잡고 다양한 미디어에 대한 홍보활동을 펼쳐가는 것 외에 내 앞으로 매우 무거운 숙제가 하나 더 떨어져 있었기 때문. 바로 라이엇 게임즈 한국 오피스의 사회환원사업을 기획, 개발하고 런칭하는 것 말이다.


회사 측 주문사항


사업 개발에 있어 회사가 원하는 방향이 꽤나 명료하고도 대단히 추상적이었다.

‘진짜 우리 회사다운 사회환원사업을 기획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플레이어와 라이어터(Rioter, 임직원)들도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의미있는 무언가를 찾았으면 좋겠다’라는 두 가지 요구가 컸다. 기한이나 예산에 한계를 두기보단 진짜 쓸모있는, 그리고 유의미한 사업을 원했다. 기획만 잘 되면 미국 본사 측에서도 적극 지지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물론 민간 기업이기에 이윤추구가 제 1의 목적인 것은 맞지만..그 기업의 사회적인 역할도 일찌감치 고민하고 준비되야 한다는 오진호 한국 대표의 의지 또한 선명했다. (*사실 이 분 아니었음 본 사회환원사업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본인과 함께 한국 사회환원사업 아이디어를 열심히 본사 어필해주신 리더다)


한편 그 표면적 이유 외에 라이엇 게임즈는 미국 산타모니카에 본사를 둔 외국계 기업으로서 한국 시장에서 로컬 기업들의 성장을 저해하는 ‘외부인’으로 읽힐 수 있다는 면을 크게 우려했다. 그래서 시장 내 한국친화적인 기업 이미지를 확고히 세워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한국 서비스를 이어가야겠단 판단이 컸다. 그리고 시장에 맞는 성공적인 한국 사회환원사업 기획과 런칭을 그 바람을 이뤄낼 열쇠 중 하나라 봤다.

하지만 인지도 바닥에 가까운 글로벌 회사의 매우 한국적인 진심을 꺼내, 사용자와 대중에 알려야한다니.. 처음엔 답이 영 잘 떠오르지 않았다.


정해진 기한


데드라인도 목을 졸랐다. 사회환원사업 전개에 대한 의지가 꽤나 선명했던 만큼, 회사는 매우 일찍.. 본인 입사 전부터 이미 외부에 사회환원사업을 잘 해보겠다 공표를 한 상태였다.


라이엇은 자사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인 PC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이하 LoL)>의 한국 서비스 시작을 기념해 2011년 12월 전 세계 LoL서비스에 한국 구미호 전설에 기반을 둔 <아리(Ahri)> 챔피언을 공개했는데, 특히 한국에선 이 캐릭터의 초반 6개월 간의 판매금 전액을 한국 사회 및 한국 사용자를 위해 쓰겠다 약속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한국 시장 진출관련 미디어 간담회서 공개된 한국형 챔피언 Ahri의 초기 아트웍, 사진출처= 게임메카
2011년 9월 28일 진행된 <리그 오브 레전드> 한국 시장 진출관련 미디어 간담회 현장에 참석한 브랜던 벡(Brandon Beck) CEO모습, 사진출처= 포모스


그리고 그 사전 발표시점부터 무수히 많은 직원들이 머리를 뜯어가며 난상토론을 거듭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전혀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입사 첫 날 정말 많은 이들이 나에게 드디어!라고 인사를 건낸 것. 거부권 같은 건 없이, 구원투수가 될 기회가 바로 내 손에 쥐어진 것과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쉽지 않은 과제가 즐겁게 느껴졌다. 생색내기성으로 몇 개월만에 마케팅 성과를 가져오라거나, 정해진 예산을 최대한 아껴 적게 쓰란 얘기도 없이.. ‘진짜’ 한국 사회와 플레이어들을 위한 사회환원 사업을 찾고 만들라니 어찌보며 실컷 고민하고 저질러 볼 기회였다.


거기다 본인은 사실 홍보, 브랜딩, 위기관리 외 사회환원사업 기획, 개발, 운영을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다수 경험한 바 왠지모를 자신이 있었다. (*넥슨의 환아를 위한 사회환원사업 또한 내가 2000년대 초반 최초로 아이디어를 내고 시작한 바 있다.


기업의 색에서 시작


그래서 그날부터 매일 찾고 뒤지고 분석하고 멍때리며 고민했다. 다른 게임사들의 사회환원사업도 살펴보고, 한국 내 여타 외국계기업들, 그리고 글로벌시장의 선도하고 대표 기업들의 사회환원사업도 살폈다.


사실 각종 시장에서 매일 정말 많은 기업들이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염두에 두고 사회환원사업 또는 사회공헌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

단순 금액적 기부부터 김장하기, 연탄 나르기, 헌혈하기 등의 고전적 기여를 비롯해 오!하고 공감하게.되는 새로운 시도까지 그 내용과 형태도 가지각색이다. 사회환원사업 기획의 방향과 개념 또한 과거 CSR, CSV 등을 거쳐 지금의 ESG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발전되고 확대되어 왔다.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이미지출처= shutterstock.com

한데 사회적으로 좋은 역할을 하겠다는 진심의 시작이든, 이제는 기업의 규모도 커지고 사회환원사업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의무감의 시작이든 적지 않은 예산을 사용하는데.. 이왕 할 거면 보람도 있고 생색도 잘 나게 만들어 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사회환원, 사회공헌사업이 기업의 예산 투입의 수익성을 따질 수 없는 영역이긴 하나 사회적 주목을 받고, 칭찬도 받고 더 나아가 기업의 브랜드와 긍정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생각했다. 한국 친화적인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도 얻고자 하는 회사의 속내도 확실하게 있지 않은가.


하여 기본부터 계속 생각했다.

훌륭한 사회환원사업은
그 기업의 색을 담아야 한다.
다른 회사 이름이 붙어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사업이 아니라 특색 있으면서도
보다 많은 이가 공감하고 동의할 그런 사업을 찾아야 한다.


유레카!!


그러다 문득 어느날 직장 동료들과 수다를 떨다 머리가 번쩍했다. 어! 싶은 생각이 든 것. 그 빛나는 단초를 발견하자 그간 이리저리 생각해둔 퍼즐들이 맞춰지는 건 같았고 오! 이제부터 냅다 달리기가 가능할 것 같았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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