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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향 Karen Koo Jul 20. 2024

본래 이게 될까, 싶은 일이 재밌다

착한 회사의 한국진출. 기업 브랜딩

한국은 게임의 메카(Mecca)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 대 초반 벤처 붐이 일면서 갖가지 PC온라인 게임이 등장했고 한 때 스타크래프트가 세계 어느 곳보다 크나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국민 게임이라 손꼽히는 게임도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E스포츠라는 말도 한국에서 생겨났고, 현재도 한국은 게임과 E스포츠에 있어 상징적인 지역이다. (대상혁! 페이커 선수가 현존하는 한국 시장이지 않은가)


그런 한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라이엇 게임즈 또한 계획과 욕심이 많았다. 게임에 대한 경험과 이해도가 너무나 높은 사용자가 가득한 곳... 때문에 그 어떤 지역보다 게임 콘텐츠에 대한 소화 시간도 빠르고 분석적인 의견과 평가도 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는 곳이 바로 한국 게임시장이었다.


그래서 라이엇 게임즈 한국 오피스에 합류하자마자 안팎으로 파악에 나섰다. 대체 이 회사는 어떠한 계획을 갖고, 어떤 바람이 있으며 이를 이뤄내기 위해 내가 할 역할이 무엇인지... 또 그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총알은 무엇인지부터 알고자 했다. 그래야 "전략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라이엇 게임즈의 초창기 기업 로고. 이후 라이엇 게임즈는 3차례의 CI 업데이트를 거쳤다.


전 직원 30명 남짓으로 시작한 한국 시장 진입, 기대도 오너쉽도 컸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본인은 2012년 2월, 글로벌 게임 개발 및 서비스사인 라이엇 게임즈 한국 오피스에 홍보 및 사회환원 사업의 팀 리드로 입사했다. 입사 당시 오피스의 전 직원은 30명이 조금 넘었다. 지사 초창기의 인원으로 적지 않은데?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라이엇 게임즈는 "우리 회사 스타일 대로의" 한국 서비스를 전개하기 위해, 굴지의 파트너사들을 통한 퍼블리싱이 아닌 직접 서비스를 결정하고 2011년 중반 한국에 오피스를 세웠다. 그리고 이후 한국 서비스에 필수적인 부서의 리더들부터 채워 나갔고, 이 리더들이 한국 시장에 가장 적합한 런칭, 서비스 플랜 및 조직 구도 등을 잡아갔다. 한데 한국 오피스를 본사에서 지시하는 서비스/ 마케팅만 옮겨내는 지사(Branch)가 아닌 그 누구보다 한국 시장과 한국 문화, 한국 사용자를 잘 이해하고 주도적인 한국 서비스 플랜을 기획할 수 있는 지역 오피스(Regional office)로 설정했다. 한 명, 한 명의 조직 리더들이 충분한 오너쉽(Owership)을 가질 수 있었고, 그만큼 책임지고 전문가다운 최적의 기획과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단 얘기다.


나 역시 홍보 및 사회환원사업의 리더로 합류한 후 행복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간의 경험과 홍보 전문가로서의 역량에 기반해 최고의 홍보 조직과 계획을 꾸려내라는 주문이 손에 떨어졌다.


현황 파악, 분석을 해야 총알이 준비되지!


회사에 합류한 첫날부터 각 미디어에 인사 연락을 돌리고, 곧바로 라이엇 게임즈 한국 오피스와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이하 LoL)>에 대한 외부의 평, 기대점, 아쉬운 점 등을 듣고 다녔다. 게임의 런칭 시점에 메가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북미 지역의 서비스까지 원격 접속하여 게임을 즐기던 사용자들을 부드럽게 잘 옮겨낸 상황이었고 입소문을 타고 LoL의 인기가 2-3개월 만에 이미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다. 핵심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랜파티(일종의 오프라인 팬미팅, 이벤트 행사와 같다)와 업계의 전문 미디어와 레거시 미디어들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 기존 E스포츠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체험 후기 마케팅 그리고 정식 토너먼트 대회에 앞선 예행 격의 인비테이셔널 게임대회 등이 진행된 상황이었고, 그 각각에 대한 사용자와 전문 미디어들의 평이 좋았다.


특히 사용자와 업계, 미디어, 내부와의 이야기에서도 아래 3가지가 반복해서 등장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팩트에 기반한 이 회사의 강점이자 앞으로 나의 총알이 되겠구나 싶었다.

탄탄한 게임성, 재미있고 계속 업데이트되는 게임 콘텐츠,
과금 압박 배제, 유저 친화적 비즈니스 모델,
플레이어와의 소통, 사용자의 즐거움과 만족을 최우선하는, 확고한 기업 철학


하지만 여전히 MOBA(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라는 게임의 장르는 일반 게임 이용자들에게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면이 있었고, 무엇보다 LoL을 즐기는 사용자조차 <라이엇 게임즈>라는 회사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덕트보다 기업 브랜드의 인지도가 매우 약한 상태.

물론 당시에는 <라이엇 게임즈>가 기업 브랜딩에 큰 힘을 싣고, 우선순위를 두지 않던 시절이라 더 그러했다. 좋은 게임을 만들어, 잘 서비스하면 사용자들이 다 즐거울 것이다...라는 "초심"에 미쳐있던 시기다.


하지만 입사 초기 내부의 여러 리더십들과 수많은 대화를 이어가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 회사의 바람과 계획이 매우 크다는 것이었다. 라이엇은 LoL의 성공적인 한국 서비스 진행을 희망했지만, 그 목표점이 시장 점유율 1위를 찍어보자! 또는 월 매출 얼마 이상을 해보자는 것이 아니었다. 내부에서 공유하고 발표하는 프리젠테이션 장표에도 목표 수치가 없었다. 꾸준히 좋은 게임 콘텐츠를 만들고, 밸런스를 맞추고, 안정적이고도 재미있게 서비스해서

사용자들께 최고의 게임 경험을 전달하는 것

이 목표이고, 전 직원의 미션이란다. 이 얼마나 달성의 마침표가 없는 엄청나고 무서운 목표인가. 나 또한 게임 사용자이기도 하기만 그런 회사의 철학과 진심이 고맙고 공감되는 한편...홍보/ 브랜딩의 측면에서 고민이 매우 많이 됐다. 진심이야 말로 전달하고, 홍보하기 제일 어려운 대상이기 때문이다.


LoL 서비스만이 아니라 향후 활발한 E스포츠 사업 전개부터 당시에는 미공개 프로젝트였지만 내부에서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게임 프로덕트 서비스 등 이어가야 할 내용도 많았기에 한국 시장서 한국 친화적인 기업으로서의 이미지와, 시장을 선도하는 게임사로서의 이미지 등도 희망했다.

또 라이엇 게임즈는 미국 LA에 본사를 둔 기업. 로컬 시장을 공략하는 외국계 기업으로서, 자칫 한국 시장에 공격적으로 다가서는 또는 토종 한국 게임기업들을 압박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지지 않도록 사전 견제하는 것 또한 홍보가 풀어내야 할 과제로 읽혔다.


지금 내가 저지를 일은 바로 이거군


전략적인 기업은 1년, 3년, 5년, 길게는 10년 또는 그 이후까지도 지속적으로 내다보려 노력하고 그 각각의 기간에 있어서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정해낸다. 이윤 추구가 제 1의 목표인 것이 기업이라 하나, 눈앞의 이윤 만을 쫒다가 미래가 길지 않아 질 수 있으며, 늘 재화와 인력은 제한적이고 시장에는 새로운 소식과 경쟁자들의 도전이 들끓기 때문.


초창기 라이엇 게임즈는 정말 소수의 인원이 모였지만 그 한 명, 한 명의 인원이 "일당백"이었다. 각 조직의 리더들은 기업의 철학, 방향성을 완벽히 이해하고 강하게 동의했으며 기업의 단기 또 장기 목표점 도달을 위해 조직별로, 개인별로 맡아야 할 역할을 정확히 짚어냈다. 그리고 그 기대 역할을 가장 효율적이고도 성공적으로 이뤄낼 방안을 고심했다. 


당시 나 또한 매일 할 일이 정말 넘쳐났다. 게임의 인기 상황, 콘텐츠 업데이트 소식, 이벤트 소식 등의 시의적 소식에 대해 꾸준히 사용자들께 정보를 전하고 관심을 키우는 것은 기본이고 홍보/ 사회환원 사업을 위한 조직을 구상하고, 인력 채용을 이어갔다. 또 부족한 내부 인력을 대신해 함께 뛰어줄 외부 벤더, 파트너사를 선정하여 협업 궤도를 설정하고 맞춰갔다. 예산 계획 등의 조직 운영 업무도 병행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어가는 동시에 기업의 현황, 이 기업이 가진 강점과 향후 희망하는 기업의 비전 등에 기초해 <기업 브랜딩>을 위한 전략적 메시징, 즉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판단했다. 회사의 기원부터, 철학 그리고 이 회사가 다른 기업과 다른 이유 및 그것이 이 회사의 실제 프로덕트 서비스에 반영되어 있는 포인트, 포인트들이 충분했다. 이를 선명하게 보여줄 키 메시지와, 흥미롭게 뒷받침해 줄 사례들, 그리고 이를 전달할 화자를 개발하면 되겠다 싶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듣는 이를 끌어당기며, 듣고 보면 이해하게 되고 믿게 된다


착한 기업, 착한 게임


이것이 라이엇 합류 후 몇 주만에 내가 상사와 대표께 보고한 홍보 전략의 서두이자 "키 메시지"다. 라이엇의 강점 3가지를 온전히 그리고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동시에 "이 회사는 대체 왜"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또 한편으로는 "기존의 다른 게임, 다른 회사와는 다릅니다"라는 점을 영리하게 설파하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갔다.


실제로 라이엇 게임즈는 게임을 너무나 사랑하던 미국의 두 청년이 의기투합하여 설립한 회사였고, 라이엇 게임즈의 대표 게임 LoL이야 말로 그들의 게임에 대한 이해와 바람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그 게임 콘텐츠의 완성도나, 상대적으로 부담이 매우 적은 게임 내 과금체계 등을 구구절절 풀어내기보단, 게임 플레이어들이 또 게임을 전혀 모르는 대중도 이해하기 쉽게 스토리텔링을 하는 쪽이 맞다고 판단했다.


"보통의 게임 회사는 게임 개발자가 내 새끼 같은 게임을 구상, 기획, 개발해서 내놓거나 또는 뛰어난 감각과 혜안이 있는 사업가가 좋은 게임을 퍼블리싱하는 형태... 또는 그 둘이 하나로 합쳐진, 대형 게임사의 모습을 띕니다"


이것이 내가 게임에 대한 흥미와 이해가 매우 낮은 이를 처음 만났을 때, 라이엇 게임즈에 대한 키 메시지를 풀어내기 위해 항상 가장 먼저 던지던 문장이다. 쉽고 동의되는 설명에 상대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그 후 이어지는 조금 다른 이야기에 더 큰 흥미를 보이게 된다.


"하지만 라이엇 게임즈는 정말 어려서부터 다양한 게임을 즐기던 두 청년이, 어느 날인가부터 대체 왜 스포츠 같은 공짜 게임은 안 나올까. 왜 게임 안에서 결제를 한 이에게만 더 강한 무기가 주어지고,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것인가. 그저 플레이어의 전략과 실력에 따라 어느 날은 이기고, 어느 날은 지는 게임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거듭하다가, 우리가 직접 한 번 만들어 볼래? 라고 의기투합하면서 시작된 회사다. 미국 로스탠젤레스의 한인타운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던 두 이십대 청년. 하물며 이들은 USC 대학 졸업 후, 한 명은 금융계 마케터로, 또 다른 한 명은 컨설턴트로 이미 취업 및 사회생활도 시작한 상태였고 게임 개발자는 전혀 아닌 상태였다"


1년 이상의 시간에 거쳐 키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노출시켰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를 지속 발굴해 쌓아 올렸다. 우산 역할을 하는 키 메시지는 각종 실질 사례들과 함께 활용돼, 플레이어들이 공감토록 했다. 사람들이 이 회사는 다르다 믿게 했다. 게임 콘텐츠 업데이트도, PC방 사용자와 PC방 업주에 혜택을 드리는 이벤트도 키 메시지와 연결돼 강한 당위성을 가졌다.


난치병에 걸린 플레이어를 위해 게임 내 캐릭터의 대사를 새로 녹음하는 회사,

지역의 문화를 사랑하고 존중해 한국 서비스 런칭에 맞춰 한국 구미호전설에 기반을 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세계 게임 서비스에 선보인 회사,

플레이어의 연애 상담을 위해 길고 긴 답장을 써주는 고객센터, 그리고 그런 직원을 칭찬하는 회사,

PC방을 게임을 즐기는 놀이공간이자 문화공간으로 생각해, 기꺼이 게임의 핵심적인 부분을 PC방 사용자들에게만 무료로 설정한 회사

게임을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이런 사례들과 이를 덮어내는 키 메시지 덕에,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게임 전문지는 물론 각종 지면 미디어와 방송 미디어를 통해서까지 소화됐다.

 

<스토리텔링>을 펼쳐감에 있어 무게감 있고 신뢰 가는 스피커, Spokesperson도 중요했다. 라이엇 게임즈는 당시 작고, 인지도가 낮은 기업이었다. 보통 이럴 때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스피커는 "권위"가 있거나 "이야기"가 있는 자이기 마련이다. 기업을 대표해 믿을 수 있는 이야기할 정도로 높은 사람이거나 마치 TV시리즈 <인간극장>처럼 솔직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거리를 가진 이여야 된다는 말이다.


때문에 라이엇 게임즈 한국 서비스 초기의 메시지 전개에는 브랜든 벡, 마크 메릴 등의 창업주 두 청년 외 오진호 한국대표가 핵심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미디어 행사나 인터뷰 등 스피커가 나설 자리에 앞서서는 각 미디어의 특성이나 최근 기사에 대한 분석부터, 예측되는 질문 사항에 대한 답변 가이드까지 매우 상세하게 준비하고 브리핑했다. 또 예측되지 않은 질문이 나올 수 있는 자리이기에 그런 경우에 대비하여 곤란한 질문에 대한 포괄적 답변이나, 부드럽게 논지를 돌릴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한 미디어 트레이닝도 병행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돌아봐도 당시 창업주, CEO를 비롯해 한국 대표까지 모든 스피커들께서 참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했었다. 저렇게 하기에 저토록 성공하였나 보다 생각이 들 정도로. 암튼, 준비된 스피커들은 기업의 브랜딩을 위한 이야기 전달... 스토리텔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셨다.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초창기 라이엇 게임즈의 한국 홍보를 위해 잡아낸 <착한 기업, 착한 게임>의 메시지는 이를 뒷받침하는 각종 사례 및 CEO, 한국 대표 등의 기업 철학 이야기와 함께 전파됐다

[기사 이미지 출처: 매일경제, 한국경제, 머니투데이, 동아일보 및 전자신문]


그래서 이런 전략적인 접근과 키 메시지 전개가 성공적이었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야말로 매우 성공적이라 답할 수 있다. 초기 이런 전략과 스토리텔링 방향을 잡았을 때만 해도, 회사 내부에서도 진짜 이런 메시지가 온전히 전달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본래 이게 될까, 싶은 일이 도전하여 성공하면 가장 재미있지 않던가. <반복되고 강조되는> 키 메시지는 게임 플레이어와 대중에 충분한 잔상을 남겼다. 게임 서비스가 불안정한 어느 날인가에도 게임 플레이어들은 "라이엇인데", "알 거야, 고칠 거야, 난 믿어"라는 댓글을 남겼다. 게임업계에서도 일방적 서비스나 콘텐츠 제공보다도 사용자의 편의와 반응을 살피며 발맞춰 가는 것이 주효하다는 인식이 점차 번져갔다.


돌아보면 결국 답은 짧다.

실제의 기업 강점에 기반을 두고 개발된 키 메시지였기 때문에 힘이 있었다.

다양한 사례를 계속 찾아내고 이를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전했기에 힘이 쌓일 수 있었다.

미디어에 따라, 타깃에 따라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썼고 준비된 스피커가 이를 적극적으로 전했기에 성공적이었다.


회사에서도 홍보 조직의 스토리텔링 활약에 대해 호평이 이어졌다.

근데, 사실 입사 첫날부터 나를 붙잡은 고민이 또 하나 있지 않던가. 이 또한 잘 해결 됐던가? 사실 이 즈음의 나는 거의 홍길동이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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