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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3 아들이 만들어준 엄마쏭

멀티모달 시대, 디지털 놀이에서 피어나는 창조력

by 카리스러브 이유미

저녁, 막내가 오카리나를 들고 왔다.
엄마에게 연주를 해주고 싶었지만, 배운 곡이 기억나지 않는 듯했다.


관객인 나는 연주자에게 요청했다.
“그럼, 네가 만든 곡을 연주해 줘도 돼.”


“나 못 해…”


나는 조금 더 편하게 시도해 볼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감정교육을 할 때, 아이들에게 ‘감정의 언어’를 말로 표현하는 놀이를 한다.
감정 언어가 늘어날수록 아이의 감성도 더 풍성하고 섬세해지니까.


“너 엄마한테 자주 하는 말 있잖아. ‘엄마 사랑해.’
그 말을 오카리나로 연주하면, 어떤 소리가 날까?”


조심스럽게 한 소절을 연주한 아이.


“좋아. 그다음은? 네가 자주 하는 말, ‘엄마는 정말 예뻐.’ 이것도 해줘?”


아이는 이어서 연주하고 싶었지만, 앞 소절을 잊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내 스마트폰에서 펜을 꺼내고 노트를 열어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만든 가사와 계이름을 빼뚤빼뚤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노래의 가사는 이랬다.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해
엄마는 정말 예뻐
고맙습니다 엄마
나는 엄마가 있어서 행복해
사랑해~요!


아이는 점차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나였지만 아이의 놀이로 넘어갔다.

박자를 만들고,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며 심취했다.

엄마가 잠이 드는 줄도 모르고.


"엄마~! 다 완성했어."


나는 연주를 들을 준비를 했다. 별 다른 건 없다.

눈을 동그랗게 뜨면 된다.

역사적인 순간을 남기기 위해 녹음기를 켰다.


아이의 연주는 완벽했다.

환호와 박수와 앵콜을 외치며 몇 번을 들었다.

가장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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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모달 시대, 디지털 놀이에서 피어나는 창조력


디지털 노트에 글을 쓰고,
감정을 음으로 바꿔 연주하고,
리듬에 맞춰 문장을 쓰고,
박자를 입히고, 녹음하며 노는 아이.


이 모든 과정은 AI의 작동 원리,

코딩의 구조를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조의 경험’.
자발적으로 내면의 것을 현실로 끌어내는 과정이다.


그 속에서 아이는
감각을 넘나들며 연결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재생산한다.
그 과정 자체를 즐기고, 완성된 결과에 만족감을 느낀다.


이미 갖고 있는 능력을 새롭게 쓰는 경험,
오직 놀이만이 줄 수 있는 가치이다.


처음 만든 작품은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처럼 놀랍고 특별한 순간이다.
아이가 만든 첫소리, 첫 글, 첫 이야기.
그 작은 시작이 어떤 놀라운 것들로 자라날지 아무도 모른다.




요즘은 AI가 노래도 만들어 준다.
텍스트만 입력하면 가사, 멜로디, 연주까지
1분이면 뚝딱 만들어지는 시대이다.


이렇게 감각을 전환하는 능력을 ‘멀티모달’이라 부른다.

‘멀티모달(Multimodal)’은 여러 감각과 표현 방식이 함께 작동하는 걸 말한다.

말로 표현한 감정을 음악으로 바꾸고,

그 음악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처럼,

하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글, 소리, 이미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고 표현하는 능력이다.

AI는 멀티모달로 진화했다.

지브리 스타일의 그림이 그것이다.


이런 시대에 작곡 능력이 어떤 힘이 있을까.

사람의 멀티모달은 좀 다르다.


초등 3학년 아이가 쓰고 지우며

엄마를 떠올리고,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는 과정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진짜 경험'이다.


그 안엔 ‘인간미’가 있다.
진정성이 있고, 이야기의 결이 있어 감동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워야 한다.

바로 ‘진정성’과 ‘스토리’이다.


감정을 담아 진심을 전할 수 있는 힘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

이 두 가지는 AI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인간만의 힘이니까.


아이의 날것 그대로의 손글씨를 많이 남겨 두면 좋겠다.
거칠고 삐뚤빼뚤해도,
그 안엔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이 살아 숨 쉰다.

그것이 바로, 미래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창조적 역량이다.


아이의 ‘처음’은 언제나 작고 소박하다.

하지만 그 순간을 사랑해 주고 기억해 주는 어른이 있다면,

그 처음은 언제든 놀라운 ‘창조’로 자라날 수 있다.

오늘도 놀이 안에서 아이는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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