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딸이 약을 먹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충격적인 일을 마주한 엄마 이유미는 딸에 대한 걱정, 엄마로서의 죄책감, 인생에 대한 분노가 뒤엉킨 극한의 감정을 경험한다. 엄마로서 죽음 앞에 서 있는 딸을 보는 일은 지독한 두려움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대체 사춘기가 뭐기에 자식 키우는 일이 이렇게나 힘이 드는 걸까? 누구도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
엄마만, 부모만 힘든 줄 알았다. 하지만 병원에서 퇴원하고 돌아온 딸 이하연과 하룻밤 동안 마음을 탁 터놓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딸은 딸 나름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서로의 세상에 닿지 않아 힘든 건 서로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은 엄마는 자신과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춘기 딸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인정하고 딸과 함께 잘 지내는 방법을 고민한다. 아이도 본인도 우울증이란 진단에 함께 상담을 받고,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나간다. ‘엄마’이지만 ‘딸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자신’을 되돌아보며 진짜 엄마가 되는 공부를 시작한다.
엄마의 이야기,
딸의 속마음과 직접 그린 만화
모녀의 대화가 한 권의 책이 되다
이 책은 크게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딸의 자해 시도로 인한 엄마의 심경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딸의 위험 신호들, 엄마의 우울했던 과거와 내밀한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2장은 엄마와 딸이 하룻밤 동안의 속 깊은 대화를 통해 각자 다른 입장과 속마음을 알아가며 화해하는 장면을 그려낸다. 3장은 이후 달라진 일상을 엄마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며 서로 이해하고 변화하려는 과정을 담아낸다.
특히 엄마의 입장과 딸의 입장이 대비되는 2장은 이 책의 가장 하이라이트다. 같은 상황을 두고 다르게 바라보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각자 사는 세계가 다른 앨리스들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속마음을 한 쪽짜리 만화 형식으로 담아낸 웹툰 작가 지망생 이하연이 직접 그린 삽화는 10대다운 특유의 신선하고 톡톡 튀는 감각이 살아 있으면서도 가슴 찡한 울림이 있다.
이해가 고팠던 딸과
사랑의 방법을 몰랐던 엄마,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다
딸 이하연은 말한다. 대화가 아니라 화해가 먼저라고. 엄마들과, 부모들과의 대화를 자신들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안 좋은 감정을 풀어내고 싸움을 멈추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대화를 원하는 엄마와 화해가 먼저라는 딸의 서로 다른 생각들이 어떻게 간격을 좁혀 가며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사실 엄마 이유미는 불안정한 가정환경 탓에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왔다. 딸 이하연 역시 청소년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엄마는 자신의 우울이 딸에게 옮겨간 것 아닌가 염려하며,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상처들을 딸에게 털어놓는다. 딸은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는 사랑의 방법을 몰랐던 것뿐이라며 자신이 더 많이 사랑해주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엄마 내면의 열두 살 어린아이와 열여섯 살 딸은 친구가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화해와 치유의 관한 여정을 시작한다.
세상의 많은 부모에게 작게나마,
그러나 열렬히 보내는 당부와 응원
솔직히 엄마로서 아이의 자해는 숨기고픈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들 가족의 사연은 남들과는 다른 좀 특별한 상황에 해당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세상에 내어놓는 것은 사안의 경중이 다를 뿐 10대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크든 작든 갈등을 겪고 그 상처로 인해 아픔이 생길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먼저 아이의 속마음을 알아채고 화해를 청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아닐까? 결국 아이들이 믿을 사람도, 아이들을 도울 사람도 부모니까 말이다. 그래야 아이들도, 가족 간의 관계도 회복될 수 있다.
우리는 너무나도 남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아이의 양육 문제나 갈등 문제를 쉽사리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한다. 그저 집 안에서 아이를 어르거나 윽박지르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남 말 하기는 쉽다고, 그런 식으로 비난하는 사람 중에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다.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냥 부모와 아이가 함께 흔들리며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부모 노릇도 자녀 노릇도 모두 처음이다. 그러니 처음인 사람끼리 우왕좌왕하며 방향을 찾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길을 열심히 가고 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부딪침이나 혼란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니 서로를 이해하며 잘 걸어가면 될 일이다. 때론 혼자서, 때론 또 같이. 이 책은 그러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세상의 많은 부모에게 작게나마, 그러나 열렬히 보내는 당부와 응원의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