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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Jul 27. 2022

슬픈 글을 쓰면 슬픈 채로 살아진다.

슬픔이 노폐물처럼 쌓여 갈 때 슬픔을 읽고 쓰자.

"행복 강박증"이라도 걸린 걸까?

"나는 반드시 행복해야 해."라는 생각을 갖고 살던 때가 있었다. 그럴수록 마음은 힘들었다. '나는 행복하다.'라는 주문은 '나는 불행해'라고 외치는 발악이었다. 우울한 하루에서 행복을 건져 올리는 일은 수영장에 떨어뜨린 귀걸이를 찾는 일 같았다. 발가락을 휘휘 젓다가 거꾸로 잠수해서 아등바등 겨우 바닥에 손이 닿았는데 숨을 쉴 수 없어 죽을 것 같아 밖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오는. 어디 있는지 알지만 결코 찾을 수 없는, 행복은 그런 것이었다.


우울한 채로 살아보기로 했다. 우울함이 찾아오면 그냥 내버려 두었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 얼마나 우울하게 침대를 기어 다니나 보자. 언제까지 바닥을 뒹굴어 화장실에 가는지 보자.  그런데 하루 종일 TV 드라마를 이면 피곤해서 잠을 자더라. 배고파 밥도 먹더라. 아침이면 일어나 옷 챙겨있고 출근도 하더라. 그냥 그렇게 살아지더라. 그런 삶도 삶이더라.


마음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바닥 분수 뛰는 아이처럼 좋아 날뛰가 갑자기 탄 누룽지처럼 바닥 들러붙는 내 마음. 떼어내려 숟가락으로 벅벅 긁어도 밥 하나하나 조각나며 눌어지는 마음. 오르락내리락 규칙도 없는 천방지축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가만히 감정을 더듬으며 과거로 가는 것이다. 1분 전, 10분 전, 점심 먹던 때, 사람을 만났던 순간, 그가 한 말, 내가 건넨 말을 거슬러 올라가며 내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추적한다. 그러면 상승곡선을 타던 마음이 꺾이는 순간을 발견하게 된다.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순간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설명한다. 그 사람이 너를 기분 나쁘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고. 아마 무슨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그러니 다음에 같은 상황이 되면 머뭇거리지 말고 대처하라고. 이 루틴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어그러졌던 마음이 펴지고, 정상 리듬을 찾았다. 물론 모든 순간 그렇지는 못 했지만 반복할수록 발견하는 촉도 빨라졌다. 


결혼을 했다. 남편. 아이들. 가정과 일.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시간보다 살아야만 하는 대로 사는 시간이 많아졌다.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분노하다 타버리고 노폐물만 쌓여 갔다. 누구에게 말할 용기도 없었다. 그렇게 내 안에 쌓이던 슬픔이 뚝뚝 떨어질 때 우연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슬픈 책은 아니었다. 그냥 눈에 보이는 어떤 책이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일상에서 글자를 읽는 일은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인 것 같았다. 뒤집어 읽든, 짚이는 페이지를 펼쳐 읽든,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읽든 뭐라 할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 문장 하나를 만났다.

한 시간 독서로 누그러지지 않는 걱정은 결코 없다.
-몽테스키외



맞았다. 결코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글자를 따라가던 내가 생각을 하고, 질문을 하고, 그 이야기를 살다. 걱정을 잊고 다음 시간을 살 수 있었다. 책은 슬픔을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슬픔을 '말해도 괜찮다'고 용기를 주었다.(쓰기의 말들-은유) 


책에게 말을 걸다. "내 이야기도 들어볼래?"


책은 말했다. "너도 너의 이야기를 써봐." 


"어.떻.게?"

벌거벗은 자신을 쓰라.
추방된 상태의, 피투성이인.
-데니스 존슨-




마음에 들었다. 벌거벗은 자신을 쓰라니. 그 수치심을. 피투성이인 내 상처를. 추방당한 진짜 내 마음을. 써보기로 했다. 쓸 수밖에 없었다. 차고 넘쳐 토할 지경이었다. 그 토사물에 냄새가 나고,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나는 매일 글을 썼다.


지금도 나는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글로 노폐물을 긁어내고 빈자리에 진짜 내 마음을 쌓고 있다. 그 과정이 지지부진해 보이고 느려 터졌을지라도 분명 나는 매일 쓰고 있다. 슬픈 글을 쓰는 삶이 하하호호 웃는 삶은 아니지만, 행복해 보이려 애쓰는 내가 아니라 슬프기도 한 편안한 나로 살고 있다. 오늘 문자 하나를 받았다. " 솔직하고 용감한 카리스러브님. 앞으로도 응원합니다." 겁쟁이였던 내가 어느새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글쓰기테라피       


글쓰기는 슬픈 채로 사는 나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그 삶이 누군가를 살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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