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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Aug 02. 2022

살림은 못 하지만  
글쓰기는 좋아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살림 못 하는 나를 글로 씁니다.

    

나는 살림을 못한다. 단순히 내 생각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며 결론 내린 나름 객관적인 사실이다. 17년을 했으면 적응할 법도 한데 익숙해지지 않는 게 살림이다. 청소를 하려고 둘러보면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다. 아이들 챙겨 학교를 보내고 나면 무언가 꼭 빠져있다. 맛있는 음식은 먹기는 좋지만 같은 맛을 내기는 어려우니 즐겁지가 않다. 요리는 장보기부터 문제다. 무엇을 얼마나 사야 할지 모르겠다. 많이 사 온 것 같은데 매번 비슷한 재료이고 막상 요리를 하려면 할 게 없다.


세 아이가 방학을 했다. 이런 어설픈 엄마에게 아이들의 방학은 미션 임파서블이다. 세 끼를 먹여야 하고 그 사이사이 집을 정리해야 한다. 막내는 놀아달라고 보채고, 빈둥대며 핸드폰만 하고 있는 5학년 둘째를 보면 학습지라도 해줘야 할 것 같다. 뭐부터 하지? 먹는 게 우선이니 일단 장을 보자고 집을 나섰다. 고기가 제일 만만하다. 양념된 고기를 사서 볶아주 상추와 김치저녁은 해결해 보자.

  

나서고 보니 폭염주의보가 내린 정오다. 뜨거운 해를 피하기 위해 벽에 붙어 그늘을 찾아 돌며 시장으로 갔다. 첫 물건을 사고 나서야 생각나는 장바구니. 오늘도 장바구니 없이 장을 보겠다고 나섰구나. 다음엔 꼭 챙겨야지 했지만 또 빈손일걸 안다. 계획에 없던 야채, 과일, 반찬을  이것저것 사기 시작했다. 한 손에 검정 비닐봉지가 매달리기 시작했다. 시장을 올라가는 길에 한 손 가득. 이제는 진짜 필요한 것만 사야지 하고 내려오는데 자꾸 살 것, 아니 사야할 것 같은 물건들이 보였다. 결국 또 사고 있다. 더운 여름 상할까 싶어 마지막으로 사야지 했던 고기는 아직 못 샀는데 이미 양손이 가득 찼다.


"양념 고기 주세요."


그래도 메인 요리는 사야지 싶어 정육점에 들렀다. 지갑을 꺼내는데 한 손을 들면 딸려오는 비닐봉지에 휘청. 지갑을 열자고 손가락을 움직이니 오이지 봉지와 구운 계란 한 판이 담긴 봉지가 툭 빠지면서 입을 벌렸다. 한쪽만 매달려 있으니 더 무거웠다. 손이 늘어지니 다른 봉지도 나가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겨우 카드를 받아 가방에 던져 넣고, 빠져나간 봉지들을 하나씩 손가락에 끼웠다.


" 큰 봉지 하나 드릴까요?"


정육점 사장님이 묻더니, 대답할 틈도 없이 큰 봉지를 갖고 나왔다. 입구를 크게 벌리더니 내 손에 들린 봉지들을 그물망으로 낚시하듯 잡아채 올렸다. 봉지들이 후드득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손잡이를 모아 내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정육점 사장님이 배려심이 좋네.

다음에 또 와야지.

이 일도 서비스를 잘해야 하는구나.

나는 장사도 못 하겠네.'


집에 갈 거리는 계산도 않고 무작정 사버린 내가 한심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이라는데. 이 더운 날 어쩌자고 이렇게 많이 산 건지?' 봉지 손잡이 사이로 보이는 손가락이 빨겋고 하얗게 울퉁불퉁했다. 감각이 없어질 때쯤 바닥에 내려놓고 한 번 씩 쉬어갔다. 봉지를 들며 사장님에게 감사했다. 큰 봉지가 아니었다면 들어 올릴 때마다 굴비 엮듯 엮어야 하니 악으로 버티며 쉬지 않고 집까지 왔을 테지.


집에 가는 길이 이렇게 멀었나. 반이나 남았네. 땀은 흐르고 손가락은 아팠다. 온 신경이 손가락에 가 있던 찰나 '이 이야기를 글로 써야겠.' 우영우가 고래를 볼 때 이런 기분일까. 글감을 찾았다. 놀이가 시작됐다. 갑자기 신이 났다. 이제 집으로 오는 길은 힘들지 않았다.


 '제목을 뭘로 하지? 검정 비닐봉지?  정육점 사장님의 배려? 나는 왜 글을 쓸까? ' 머릿속 빈 종이에 제목을 썼다 지웠다.' 글쓰기는 즐겁다고 말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설득력이 있을까? 오전까지 푹 빠져 보던 드라마 리뷰와 연결해 볼까? 드라마에 글쓰기가 나온 장면이 뭐였더라?' 이렇게 이어진 글감은 또 다른 글로 태어나겠지.


 나는 어느새 입꼬리가 올리며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다른 일은 잘해야 직업으로 할 수 있지만, 글쓰기는 잘하지 못해도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다. 모두에게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그랬다. 다른 일은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면 쉽게 포기했다. 해서 뭐하나? 이미 잘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런데 글쓰기는 달랐다. 잘하고 못하고 가 별로 상관이 없었다. 노트와 펜이 보이면 끄적끄적. 내 이야기는 나만 쓸 수 있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나는 내 삶이 틀렸다고 생각해 왔다. 늘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고. 옳은 삶이 있을 거라고. 그런데 글을 쓰면서 달라졌다. 내 삶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열일곱 딸도 열두 살 아들도 아는데 나만 몰랐다. 틀림과 다름의 차이를. 그런데 글을 쓰면서 알았다.  내 글을 읽으며 나를 이해해갔다. 내 삶도 틀린 게 아니라 많은 삶들 중에 하나라고. 말하는 방식도, 살아온 경험도, 가치관도 그저 다를 뿐이라고.



상할만한 음식만 냉장고에 대충 넣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비닐봉지에 눌려 갇혀있던 피가 제자리를 찾느라 저릿하지만 자판을 누를 때 전율이 오니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더 실감 난다. 남편이 보면 장 본 거 정리도 않고 컴퓨터에 앉아 있다고 또 한 소리 하겠지만. 그렇게 널브러진 봉지를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으 여전히 나는 살림을 못한 채로 살고 있지만 이런 삶도 있다고 글로 말해주는 글쓰기가 좋다.





나이가 들어 글쓰기의 재미에 빠졌습니다. 에세이 「그냥 살아만 있어 아무것도 안 해도 돼」를 출간하면서 글쓰기가 주는 치유의 힘을 경험하고 같이 글을 쓰자고 말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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