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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Aug 07. 2022

기억해, 기억해야 돼. 넌 도깨비 신부야

반드시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기억해. 기억해야 돼.
그 사람 이름은 김신이야.
키가 크고 웃을 때 슬퍼.
비로 올 거야.
첫눈으로 올 거야.
약속을 지킬 거야.
기억해. 기억해야 돼.
넌 그 사람의 신부야.

- 드라마 도깨비 -


요즘도 자주 찾아보는 드라마가 있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죽기 위해 900년 동안 신부를 기다리는 공유의 쓸쓸한 눈에 가슴 저미며 봤던 드라마. 다시 10년을 기다리다 찰나행복 순간을 지내고 헤어지고 마는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공유가 김고은을 지키기 위해 칼을 빼고 무로 돌아가는 장면을 본 후 마치 내가 오랜 연인과 헤어진 것처럼 마음에 거대한 구멍이 뚫며칠을 슬펐던 기억이 난다.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는 건 어떤 감정일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다가온 장면이 있다. 김고은이 공유를 잊지 않기 위해 쓰러지듯 가방으로 달려가 노트를 꺼내어 한 글자씩 적는 장면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슬픔을 슬프다고 말할 수 있을 때쯤 비로소 말을 하거나 글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 행동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라디오 PD를 꿈꾸던 주인공이라 가능했던 걸까? 이 또한 작가의 설정이었을까? 이후 김고은은 사라진 기억과 알 수 없는 그리움의 고통 사이에서 노트에는 있지만 내 기억에는 없는 기록을 집요하게 쫒는다.


기억을 지우는 것이 신의 배려라고 했다. 정말 신의 배려였을까. 아마도 기억은 잊어도 감정은 몸으로 스며들어 내가 되는가 보다. 기억은 지워도 감정은 나와 하나가 되어 떼어낼 수 없는. 상처이든 기쁨이든 이미 자체로 내가 되어버리는 걸까. 때때로 알 수 없는 우울한 감정이 나를 누를 때 '나는 무엇으로 인해 이렇게 우울한가. 기억은 흐릿한 조각인데 감정만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 내 전부가 되나' 싶었다. 김고은은 자국처럼 남은 감정의 단초를 찾기 위해 자신의 필체 안에 있는 김신이라는 도깨비, 첫눈으로 비로 올 거라는 그 사람을 기억해내려 애쓴다. 노트의 기록은 깊은 우울감을 버티기 위해 집착할 수 있는 실체였다.  김고은은 노트에 적힌 '키가 크고 슬픈 눈을 가진 내가 기억해야 될 사람'을 찾아 캐나다까지 간다. 그리고 마침내 찾다. 그와 함께 자기 자신도 찾는다. 그리움의 이유를 찾은 김고은은 비로소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된 듯 보였다.  



도 신의 배려를 선물로 받은 걸까? 잊고 사는 기억이 많다. 슬프고 아픈 기억은 애쓰지 않아도 기억나는데 좋았던 기억은 쉽게 사라진다. 온 세상이 캄캄한 듯 슬픔이 찾아올 때, 주변의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려 애쓴 적이 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슬픔기만 한 삶 같을 때 나도 행복한 때가 있었다고 기억할 수 있는 순간을 적어놓아야겠다고. 나 한동안 '아~행복하다.'라고 느낄 때마다 행복 노트를 꺼내어 었다. 시간이 지나 꺼내어  한 줄씩 읽다 보면 그때의 감정까지 떠올라 기분 좋게 웃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 하나.


"행복했던 순간.-2017년의 어느 날. 6개월 막내가 젖가슴을 물고 꿀떡꿀떡 먹다가 나를 올려다보며 모유가 가득한 입으로 헤벌쭉 웃을 때."


 행복 노트가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아기의 웃는 얼굴은 사진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반복해서 읽다 보니 감정까지 마음에 각인되었나 보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나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노트, 블로그, 밴드, 컴퓨터, 책갈피 그리고 영수증 뒷면에 까지. 생각지 못한 곳에서 기록을 만나면 암호를 해석하듯 가만히 쳐다봤다. '내가 이걸 언제 썼지? 왜 썼지? 이런 생각도 했구나.' 나인데 나조차 잊은 기억들을 글은 우직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나라는 사람을. 


글쓰기는 나의 찬란했던 순간의 보물함이다. 내가 한없이 초라하고 못나 보일 때 나에 대한 기록은 큰 힘을 발휘한다. 나를 사랑하던 사람들, 내가 사랑했던 순간들, 상처를 이기고 용기 냈던 시간, 나를 살게 했던 모든 순간을 적어 놓은 글이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말해준다. 상처에 조금씩 짜서 바르는 연고 같다.






기억해.
기억해야 돼.



누군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떤 글을 남기고 싶은가? 나는 어떤 글을 남기게 될까. 절대 잊고 싶지 않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는 뭐가 있을까. '글은 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말이 생각난다. 오늘을 잊을 미래의 나에게 사랑하고 소중한 것을 기억하라고,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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