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학적 소비 3
나는 2017년 말까지 갤럭시 S3를 사용했다. 휴대폰 케이스는 낡아서 갈라지고 너덜너덜해졌고, 조금만 힘을 주면 두 조각이 날 것 같은 상태였다. 그래도 그 상태로 1년 넘게 더 썼다.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야, 돈도 많으면서 너무한 거 아니냐? 물건을 소비해 줘야 경제가 돌아가지."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너도 휴대폰 회사 등을 위해 매주 새 휴대폰을 사라. 그럼 대한민국 경제에 크게 기여하는 거야."
꼭 돈을 아끼기 위해 폰 케이스를 안 산 것은 아니다. 물론 아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자원과 환경’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쓰고 버리고’를 반복하고 있다. 이건 잘못된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지난 200여 년간 우리는 지구를 무분별하게 파괴해 왔다. 그 결과 지구가 병들자, 이제는 지구 옆에 있는 화성으로 이주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화성에 가도 그곳 또한 머지않아 파괴할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영화 어벤저스에 나오는 타노스라는 악당은 인류의 절반을 없앤다. 그 이유가 우주와 지구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인간들이 ‘쓰고 버리고’를 반복하기 때문이라고. 비록 악당이지만, 그의 말이 너무나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에게 다시 말했다. "폰 케이스를 오래 써서 당장은 폰 케이스 만드는 회사가 타격을 받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아껴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 오히려 산업 생태계가 더 가치 있고 아름답게 바뀔 거야."
다들 알고 있을 ‘포스트잇’이라는 종이를, 업무 특성상 18년 동안 거의 매일 썼다. 특히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포스트잇을 자주 썼는데, 두 달에 한 장 정도만 사용했다. 그 비결은 볼펜이 아닌 샤프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매일 밤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사용했다. 시간이 지나 종이는 점점 어두운 색으로 변했지만, 매일 사용하면서도 두 달 정도는 쓸 수 있었다. 1,000원짜리 포스트잇 하나를 사서 매일 쓰면서도 약 10년 정도 사용했다. 단지 몇십 원을 아끼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만화영화를 보면서 "악당들로부터 지구를 지키자"라고 외치며 놀곤 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지구를 파괴하는 진짜 악당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었다. 지금부터 지구를 위해 작은 노력이라도 보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