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6 올케의 전화
“언니, 추석 잘 보내고 있어요?”
올케에게서 오랜만에 반가운 전화가 온다. 올케는 말이 없다. 1년에 전화도 한 번 올까 말까 한다. 명절날 전화를 하다니, 그래도 결혼 15년 만에 엄청나게 붙임성이 좋아진 거다. 나도 올케에게 말한 적 있다. 시댁 식구들한테는 꼭 전해야 할 말 있을 때만 전화하면 된다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니 그리 알고 있으라고.
그래서 전화 안 하는 올케에게 섭섭한 것도 없고, 나도 일부러 신경 써서 전화하지 않아도 되니 참 편안한 사이다. 그런데 그런 올케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안부 전화 말고 다른 할 말이 있겠거니 싶었다.
“언니, 제가 오늘 납골당 안 간다고 했는데 오빠가 삐져서 애들도 다 놔두고 혼자 나갔어요.”
한다. 남동생이 할머니 납골당에 아이들이랑 올케 데리고 친정 아빠 모시고 다녀오고는 하는데 오늘 올케가 집청소 좀 하고 있겠다고 남동생 보고 다녀오라고 한 모양이다. 그런데 남동생은 그 말에 크게 서운했는지 애들도 다 놔두고 혼자 쌩하니 나가버렸단다. 올케가 전화해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남편이 애틋하게 생각하는 할머니 납골당에 안 따라간다고 했더니 많이 섭섭했나 보다 하고 남동생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아빠가 쌩하니 나가고 “엄마, 지금이라도 우리도 따라가자.”하고 걱정하는 조카 이야기도 한다.
“미친놈, 지한테나 애틋한 할머니지, 와이프한테까지 애틋해야 되나?”
올케의 불편한 마음을 달래주면서 올케 편을 많이 들어줬다. 남편이 속이 좁은데도 그런 남편을 헤아려 주려고 하나보다, 네가 누나 해라 하면서 한참 웃었다.
나도 그런 적 있었다. 싫은데 싫다고 말 못 하고 억지로 시댁 챙기다가 조그마한 일에도 섭섭하고 속상해졌던 적. 시댁 식구 정성 들여 먹이고 챙기는 것은 옳은 것, 그렇게 하기 싫은 내 마음 대소유무로 챙기지 못하고 그러면 안 되지 하고 죄책감이 들어 내키지 않은 채로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고 비싼 선물에 용돈 드리고 음식까지 바리바리 싸 보내고 그래 놓고는 남편이 밉고 괜히 시댁 식구들이 미워 보였던 적 나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올케는 자기 마음을 진리로 바라보고 싫다는 말도 할 수 있구나. 마음공부 3년 한 나보다 낫구나 하는 비교심이 든다. 올케에게 속 좁은 남편, 그런 남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알려준다.
올케에게 나도 니 남편처럼 속 좁았던 적이 있는데 마음공부 3년 하고 나니 조금 넓어졌다고 자랑하듯 말하면서 지난주에 마음공부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가치관, 소신, 신념이 강한 사람은 그 에너지로 추진력을 얻고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지만, 반대로 자기 신념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더라. 니 남편이 그런 사람 같다. 그래도 현명한 와이프 잘 만나서 얼마나 다행이냐? 진짜로 네가 누나 해라.”
올케의 불편하고 요란한 마음이 조금은 고요해졌을까?
동생에게 모르는 척 전화를 하니 동생은 여전히 요란한 목소리다.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든다.
내일 만나서 동생의 대소유뮤도 챙겨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