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에 임할 땐 평가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사랑하는 주원아, 주하야!
어제는 종일 학교에서 근무를 했단다. 아직 방학이 2주 남았는데 엄마는 벌써 2학기 개학을 준비하느라 마음이 많이 분주하구나. 우리 학교는 2학기에 반이 늘고, 반 편성도 새롭게 이뤄지거든. 1학기에 사용하던 교실에서 새 교실로 이사도 해야 하고 전자 칠판과 컴퓨터, 전화기 설치부터, 학생용 책걸상을 학생 수에 맞게 배치하는 것까지 준비해야 할 게 많단다. 새로운 선생님들도 오시니 사람도 챙겨야 하지, 안내할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
2학기에 함께 근무할 기간제 계약직 강사의 면접이 있었단다. 4명의 강사를 뽑는데 무려 30명이 넘는 사람이 원서를 냈다고 하더구나. 그중 경력과 자기소개서를 읽고 8명을 추렸지. 자격증도, 경력도,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단다. 오전 10시. 번호 순서대로 면접장에 한 명씩 들어오는 응시자들을 만났다. 얼마나 떨릴까,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따뜻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인사를 드렸단다. 면접 문제를 말할 때도 친절함을 실었지. 모두 경력자들 이어서일까 떠는 사람 하나 없이 당당하고 자신 있게 면접에 임하는 모습에 생각이 깊어졌단다.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저들보다 더 잘 할 자신이 있을까? 나는 과연 저들을 평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내 연필 끝에서 적히는 숫자에 따라 응시자들의 6개월이 좌우된다는 생각에 신중하고 또 신중해졌어. 어느 누구 하나 빼어나게 잘하는 사람도 턱없이 부족한 사람도 없는 면접에서 결국 고득점자와 차점자를 가리는 것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 있게, 밝은 표정으로 말하느냐에 달려 있었단다. 우리는 흔히 그걸 태도라고 부르지. 태도는 하루아침에 나오는 게 아니야. 그들의 삶과 경험, 인생이 묻어 나오는 게 바로 태도지. 학생을 대할 때, 학부모를 대할 때 어떻게 하겠다는 그들의 경험과 각오를 마주하면서, 그 짧은 찰나에 이 사람은 어떤 가치관으로 어떻게 세상을 사는지 느낄 수 있었단다. 그것이 그들 모습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학생과 학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어떨지는 가늠이 되더라고.
나는 감히 누군가를 평가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싶은 선생님은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동료의 마음으로 평가지에 점수를 썼단다. 면접관으로 참여하며 배운 것이 많았지. 학생을 지도할 땐 잘하는 학생이든 잘못하는 학생이든, 그 학생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고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우선이겠구나, 학부모의 민원 전화를 받을 때에도 교사에게 전화하기까지 많이 고민하고 오래 속상했을 학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이겠구나.
나는 열심히 임용을 준비하며 면접에서 점수를 많이 받는 비법이 무엇인지 전력을 다해 고민하던 그때보다, 면접관의 입장에서 더 많이 깨달을 수 있었단다. 면접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어떤 표정과 목소리로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진 교사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태도로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동료 교사를 대해야 하는지도 말이지.
미로를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미로 속에서 헤매는 것보다는 높은 곳에서 미로를 훤히 내려다볼 때 출구를 찾기 더 쉬운 법이란다. 공부를 하는 학생은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것을 문제로 출제할지 생각해 보는 것이, 면접에 응시하는 응시생은은 면접관의 입장에서 어떤 사람에게 더 좋은 점수를 줄지 생각해 보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쉽게게 핵심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너희도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순간을 숱하게 마주하게 될 거란다. 그때 미로를 헤매는 사람이기보다는 미로를 내려다보는 사람의 마음이 되려고 노력해 봐. 미로를 빠져나갈 비법을 한결 쉽게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지. 더 깊고 더 넓은 것까지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평가를 받아야 할 때는 평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렴. 오늘도 파이팅!
2025. 8. 19.
사랑하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