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러너입니다

천천히 달려서 행복합니다

by Jeannie

첫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다. 지난번 10km 대회 이후에 두 번째 대회인데 호기롭게도 10km가 아닌 하프마라톤을 덜컥 신청해 버렸다. 훈련계획도 짜고, 대부분의 대회는 하프마라톤을 2시간 반 안에 완주해야 기록을 인정해 주는데 혹시 그 시간 안에 못 들어올 상황을 대비해서 3시간까지 인정해 주는 대회를 찾아 신청하는 나름의 치밀함도 보였다. 그리고 대회날이 되었다. 완주는 했지만, 대회 후 왼쪽 발목이 크게 부어올랐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첫 부상이었다.


병원에 가니 다행히 뼈, 관절, 인대의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발목 힘줄에 염증이 생겨서 부어오른 것이니 당분간 약 먹고 물리치료받으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당분간 달리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못 달리니 우울했다. 우울하니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오래 달리기를 처음 좋아하게 된 때는 중학생 시절이었다. 체육을 못하던 나는 체육실기시험 점수가 형편없어서 필기시험 점수로 늘 메꿔야 했다. 체력장에서는 거의 모든 항목을 최하점을 받았는데, 윗몸일으키기와 오래 달리기만 잘했다. 심지어 오래 달리기 순위는 전교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었다. 참고 버티는 건 이때부터 잘했던 모양이다. 내가 잘하는 몇 안 되는 운동이라 나에게 오래 달리기는 너무나도 귀하고 사랑스러웠다.


입시로 달리기를 한동안 안 하다가 대학원을 들어갔다. 대학원 기숙사 앞에 학교 트랙이 있었다. 주중에 공부하느라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주말에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이때 친구와 싱가포르 여행을 갔는데, 그때 처음으로 해외에서 달리기를 했다. 호텔에서 추천하는 러닝코스도를 보고 친구가 자고 있던 새벽에 달리러 나갔다.


직장인이 되고, 복잡한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하고 살다가, 직장이 세종시로 옮겨져 세종시에 거주한 몇 년 동안 집 앞 하천에서 뛰었다. 당시 세종시가 신생 도시여서 가로수가 어리고 가늘어서 그늘질 만큼의 잎이 없었다. 그늘 한점 없는 땡볕이 더워서 많이 뛰지는 못했지만 짧게라도 달렸다.


서울로 다시 이사를 온 후 지금은 하천이 있는 동네에 살고 있다. 이번에는 같이 달리는 친구들을 만났다. 러닝화, 스마트워치, 에너지젤, 달리기 대회에 대한 정보를 처음으로 접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달리기에 빠져들었다. 집중적으로 뛰다 보니 거리가 3km, 5km, 10km로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회를 나가면 더 큰 즐거움과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말에 10km 달리기 대회를 신청했다. 평소에는 주변에 뛰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이 사람들은 다 어디서 왔지 싶을 정도의 많은 러너 인파 속에서 뛰니 정말 신이 났다. 하지만 이때 처음으로 잘 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잘 뛰고 싶어졌다.


잘하고 싶다


이 생각에서 문제가 시작된 것 같다. 달리는 행위를, 달리면서 보는 풍경을,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땀 흘리면서 느끼는 해방감을 누리기보다는 어느새 스마트워치에 뜨는 내 기록을 체크하면서 달리고 있었다. 뛸 때 느끼는 기분과 내 몸 상태에 대한 감이 떨어지고 달릴 수 있는 거리를 얼른 늘리고 싶은 마음에 하프마라톤에 일찍 도전했고, 원래 고통을 잘 참는 성격이라 완주는 했지만, 내 발목은 파업을 선언했다.


나는 아마추어(Amateur)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아마추어'를 검색하면 '비전문가'라고 뜬다. 비전문가라고 하니 전문가만큼은 못 뛰는 사람을 뜻하는 것 같아 다소 시무룩해진다. 하지만 영어 amateur의 어원을 찾아보면 프랑스어 amateur에서 유래했으며, 이 프랑스어 amateur의 어원은 '사랑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amator라고 한다. 한마디로 아마추어는 '사랑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운동을 잘해야 하는 프로와는 달리, 아마추어의 근본은 그 운동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아마추어다. 그런데 사랑을 잊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다시 운동을 조금씩 해보세요." 정형외과 선생님의 말에 행복해져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천천히. 진정한 아마추어가 되기 위해, 중학생 때 느꼈던 달리기에 대한 사랑을 오래오래 키워나가기 위해, 나는 천천히 달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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