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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완 Jun 09. 2022

회식의 세계1. 회식, 몇 시까지 해봤니?

회식 시작 시간이 새벽 2시라구요?  

앞에서 이야기한것처럼 나의 두번째 회사는 그 이전 회사인 광고대행사에서 소개해주었다. 광고대행사를 그만두고 나는 유럽과 제주도를 여행하며 베짱이처럼 놀았는데 4개월쯤 되자 조금씩 불안감이 덮쳐오고 있었다. 퇴직금은 사라져가고 있는데 이대로 괜찮은건가, 어디든 다 넣어봐야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때쯤 광고대행사에서 옆 팀에 근무했던 차장님이 전화가 왔다. 


“재완씨, 아직 구직 중?” 


차장님의 광고주인 영화투자배급사에서 광고대행사 출신의 대리를 구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력서를 한번 넣어보겠냐는 전화였다. 영화투자배급사라니, 태어나서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업계이고 회사였다. 나는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영화사 마케팅팀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슬슬 취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였고, 영화 마케팅이라면 재밌겠다는 단순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지원서를 날리고, 서울로 올라와 면접을 보고 다행히도 합격을 했다. 그렇다, 나는 전 직장의 광고주가 되었다. 


첫 출근을 하기 전 고맙다는 인사도 드리고 합격 턱으로 술도 살 겸 연결을 해준 차장님을 만나러 다시 이전 직장으로 찾아갔다. 축하인사와 감사인사가 오가며 한참 술을 마시다 차장님이 내게 조용하게 경고를 날렸다. 


재완씨, 거기 술 엄청 먹어.


광고대행사 시절 술로 쫓겨난 에피소드가 있는 만큼, 나도 회식 에피소드로는 어디가서 지지 않았다*. 술을 엄청나게 잘먹는 건 아니지만 술을 꽤 좋아하는 편이기도 해서 회식 자리를 그렇게 싫어하지도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차장님은 내게 꽤나 진지하게 경고를 전했고, 특히나 부산영화제에서 그렇게 술을 많이 먹는다는 정보도 주었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한 명의 신입사원은 술에 취한 채 맨발로 호텔을 뛰어다녔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불행히도 나는 부산영화제 기간에 첫 출근을 했고, 출근 둘째날 바로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영화제의 회식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새벽 2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코로나 이전 부산영화제에서는 각 투자배급사 별로 ‘000의 밤’ 이라고 하는 라인업을 발표하는 행사를 개최했고, 내가 다닌 투자배급사 역시 매해 부산 앞바다에서 크게 행사를 개최했다. 그리고 그 행사가 끝나고 난 새벽2시부터 우리만의 뒤풀이가 시작되었다. 그 뒷풀이에서 처음 출근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의리주*, 삼배주* 등을 거하게 진행했고 모두가 거기서 만취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출근 둘째날의 쌩 신입이었고 무려 전 직장과도 연결이 되어 있는 곳에서 결코 만취할 수 없었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로 회식자리로 가기 직전, 컨디션을 무려 5병이나 마셨다. 회식 장소는 갈비집이었는데 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배가 부른 상태로 회식 장소에 도착했고(새벽 2시이니 당연히 배가 안고프기도 했다), 의리주, 삼배주 한바퀴를 돌고도 다행히 내 정신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수많은 회식의 시작이었다. 



영화 마케팅이 뭔지 아직 파악되지도 못했는데 회식이 끝도 없이 있었다. 오늘 포스터를 찍었으니 한잔, 오늘 제작보고회를 진행했으니 한잔, 오늘 인터뷰를 했으니 한잔, 오늘 GV를 했으니 한잔, 오늘 무대인사를 했으니 한잔. 모든 행사가 진행되고 나면 당연하게 뒤풀이가 있었고 그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7년간 회사를 다니며 정말 회식자리만 수백 번 다닌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단연 가장 힘든 술자리는 VIP시사회 뒷풀이였다. 



VIP 시사회란 개봉이 임박해서 업계 관계자 및 지인들을 초청해서 하는 시사회이다. 진짜 친한 지인이나 가족들을 초대해서 고마움을 표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업계 관계자들을 초대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영업의 장으로 활용하기도 하는 시사회이다. 문제는 시사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뒷풀이까지 그 자리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감상도 듣고 싶은 마음도 이해하고, 그간의 고마움을 표현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하고, 각자 영업을 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 자리가 굳이 새벽 4시, 5시까지 이어질 필요는 없지않을까. 그 시간이면 아무도 제정신이 아니고 누가 한 말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텐데. 



유독 내가 다닌 회사가 VIP 뒷풀이를 심하게 챙기는 회사이기도 했다. 그 영화의 담당자여도, 담당자가 아니어도 직원들은 다같이 회식자리에 앉아 집으로 가지 못한채 사람들이 가기만을 기다렸는데 그 이유는 ‘대표님이 아직 안가서’ 였다. 술부심이 강했던 대표님은 항상 새벽 3~4시까지 술을 마시고 가기 직전에 우리들이 모여있는 테이블로 오곤 했다. 


야, 왜 또 우리애들만 남아서 술마시냐~~
우리 애들이 술을 이렇게 좋아한다~


아니요, 우리는 술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대표님이 가지 않으셔서 못가고 기다리고 있는건데요...!! 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당연히 아무도 외치지 않았다. 그냥 가면 안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MZ세대에 간신히 발만 걸친 나와 회사 사람들은 상사의 눈치를 보며 아무도 가지 못하고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VIP 뒷풀이는 마케팅 행사로 분류되어 결제도 담당했기 때문에 마케팅팀인 나는 대부분의 뒷풀이에서 진짜 모든 사람이 갈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새벽 6시반에 마지막까지 취한 사람들을 보내고 지하 술집에서 나오면 내 온몸이 술냄새에 찌들어 있는 것 같았다. 



코로나가 발생한 건 정말 안좋은 일이고, 특히나 영화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나는 코로나에 일부 감사했다. 코로나 덕분에 그 수많던 뒷풀이와 회식들이 사라졌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 자체가 불가하고 혹시라도 그런 상황에서 감염이라도 된다면 배우와 감독들은 타격이 크기 때문에 모든 자리들이 취소되었다. 아, 어쩔 수가 없네 라고 말하며 마스크를 쓴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수많은 회식들이 없어도 영화는 문제없이 개봉했고, 행사를 진행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 문화가 그대로 지켜졌어야 하는데, 코로나가 조금씩 사라지면서부터 바로 뒷풀이부터 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악습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을 체감하는 중이다. 아, 그리고 회식 에피소드는 아직 1/100도 풀지 않았다.  




*<퇴근 후엔 전화하지마세요_광고회사편> _ 술, 직장인의 가장 큰 친구이자 적 에피소드 


*의리주 : 커다란 냉면 사발에 술을 잔뜩 채우고 (이때 술은 한종류가 아닌 경우도 많다) 여러명이 나눠 마시는 술. 앞 사람이 많이 마실 수록 뒷 사람이 적게 마시고, 앞 사람이 적게 마실 수록 뒷 사람이 많이 마시게 된다. 서로의 의리를 알아볼 수 있다고 해서 의리주라고 이름 붙인, 시대와 참 맞지 않는 술. 


 *삼배주 : 소주 잔 3잔을 젓가락을 이용해 탑을 쌓아 마시는 술. 주로 늦은 사람에게 술 자리 속도를 맞추라며 시키기도 하고, 자기 소개를 시킬 때 한잔 마시고 이름, 한잔 마시고 나이, 한잔 마시고 취미 등을 말하게 시키기도 하는 역시 시대와 참 맞지 않는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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