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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완 Aug 19. 2022

에세이라니_술 안좋아합니다

저 술이 내 술이다, 내가 좋아한다고 왜 말을 못해!!

나는 술을 좋아한다. 한 때는 술을 좋아한다, 대답하는 것이 왠지 부끄럽고 교양 없어 보이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술도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고 있기도 하고 나 역시도 술과 관련된 수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당당하게 술을 좋아한다, 말한다.



하지만 단 한 곳에서만은 ‘술을 좋아하지 않고 잘 못한다’고 대답한다. 바로 회사이다. 물론 몇 번 회식만 해보면 금세 탄로나는 거짓말이긴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는 절대 좋아한다고 대답하지 않는다. 회사 첫 질문에서 술을 좋아한다, 잘 한다, 라고 대답했던 직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너 면접 때 소주 잘 마신다고 했지?



물론 내가 다닌 회사들이 문제였다. 신입사원의 면접은 당연하고, 이직한 경력직도 처음 회사에 들어와서는 사람들과 친해지고도 싶고, 잘 보이고도 싶은 마음에 술도 잘한다고 대답하고, 주는 걸 거절하지도 못하고 마신다. 그런 착한 마음을 이용해 신입사원 주량을 확인하겠다며 삼배주, 의리주*등 억지로 마시게 하고, 한번도 토해본 적 없다는 자신감 있는 주량을 확인하겠다며 토할 때까지 먹이고, 거리두기로 가게가 10시면 끝나니 회의실에서 몰래 새벽까지 술을 먹고 먹이는 그런 일들을 나는 너무 많이 봤다.


저 술 잘 못 마셔요.
맥주만 좀 마시고, 소주는 진짜 정말 못 마셔요.



이번에 이직 할 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직 첫 날, 실장님, 팀장님과 이직자 2명 총 4명이 점심을 먹게 되었다. 가게 테이블에 앉고 주문을 하자마자 바로 주량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준비한 대답 그대로 나는 술을 잘 못하며, 이 전 회사에서 회식에 너무 많이 시달려서 회식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속사포로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들은 실장님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지만 약간 떨떠름했고, 바로 내 옆의 다른 이직자, 차장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홍보팀이라 기자들을 상대하다보니 소주를 꽤 한다, 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며칠 후 바로 실장님 주최의 회식에 불려갔다.



그것은 그녀의 방식이다. 어설픈 거짓말을 하느니 어차피 이렇게 될 거, 처음부터 밝히고 가겠다는 그녀의 의지였을 수 있다. 하지만 바로 회식에 불려가고, 노래방에 이어 새벽까지 먹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역시 내가 현명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직 한 지 8개월이 지나가는 지금도 아직까지 회식에 한번도 불려가지 않은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회식이 많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가 너무 뿌듯하다.



적고 보니 나 스스로가 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서, 오늘은 직접 만든 미드(Mead)를 하나 따야겠다. 미드는 꿀로 만든 와인인데, 나는 이 술을 꽤 좋아해서 직접 꿀부터 만들고 싶은 생각에 요즘은 양봉도 배우고 있다. 맥주도 직접 만들어 먹고, 막걸리는 만드는 게 꽤 힘들어서 그만뒀으며 칵테일은 주조기능사 시험도 쳤었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술을 찾아서 마시고, 내가 대접하는 일이 너무 행복하다. 나는 진짜 술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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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 마저에서 진행하는 <에세이라니> 글 모임에 참석하여 쓴 글입니다.

<에세이라니> 글 모임은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그 때 그 때 다른 주제를 나누고,

각자 글을 쓰는 모임으로, 이 모임에서 다같이 쓴 글은 추후 출간 예정입니다.



*삼배주 : 소주 3잔을 젓가락을 이용해 쌓아, 연달아 마시도록 하는 술

*의리주 : 사발에 소주를 붓고, 몇명이 나눠서 모두 마시도록 하는 게임. 앞 사람이 적게 마실 수록 뒷 사람이 마실 양이 늘어나기 때문에 의리주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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