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던 사랑, 차갑고도 아찔한 매력 수제맥주
겉멋과 분위기에만 취해 술을 먹던 시절을 지나, 진짜 맛있는 술을 몇년간 탐하며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맥주와 맞구나!!
내가 마시기에 적당한 도수, 목을 치는 청량감, 다양한 향과 맛, 저렴한 캔맥주부터 고가의 수입맥주, 수제맥주까지 선택 폭 넓은 가격대. 이 모든 것이 나와 딱 맞는 술이었다. 맥주가 나와 정말 잘 맞구나,를 느낀 건 두번째 회사를 그만두고 떠난 유럽여행이었다.
내 유럽여행 루트는 체코 프라하로 들어가서,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를 거쳐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여정이었고,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다 맥주로 유명한 곳들이었다. 시작인 프라하에서는 공항에서부터 코젤이 맞이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코젤부터 마시고, 필스너 우르켈은 물 대신 마셨다. 독일로 이동하니 맥주의 나라 답게 파울라너, 쾰시, 에딩거가 나를 맞이했고, 밤베르크 지역에서 마신 스모크 향이 나는 맥주는 내가 마신 맥주 중 가장 충격적이었다. 마치 베이컨을 안주로 같이 먹으면서 맥주를 마시는 느낌이었달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하이네켄 공장에서만 4시간을 있었고, 그리고 이동한 벨기에 브뤼셀에서 내 맥주 인생은 다시 태어났다. 세상에는 라거 뿐만 아니라 새콤한 크릭, 묵직한 트라피스트, 가벼우면서도 고소한 레페 등 다양한 향과 맛을 가진 맥주가 있다는 것을 브뤼셀에서 깨달은 것이다.
내가 유럽여행을 한 시기가 마침 한국에서도 세계맥주가 유행하던 시점이라 맥덕 인생을 시작하기에 딱 알맞았다. 지금은 어느새 많이 사라진, 병맥주가 가득 든 맥주 냉장고가 일렬로 늘어선 세계맥주집을 거의 매일 찾아다니며 다양한 맥주를 마셨다.국내 수제맥주 브루잉들이 늘어나면서부터는 택시비를 몇만원씩 들여서 공장까지 찾아가 술을 마시곤 했다. 그렇게 열심히 마시다보니 또 타이밍이 찾아왔다.
아, 내가 직접 만들 때가 되었다.
내가 먹을 맥주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칵테일 주조기능사 시험을 준비했던 것처럼, 나는 맥주 학원을 찾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맥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은 꽤 있는데, 내가 처음 배운 건 충정로에 위치한 수수보리 아카데미 였다. 한국 크래프트 브루어리 1세대인 맥파이의 제이슨이 수업을 하기도 했고,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가까운 것도 장점이었다. 수수보리 아카데미에서 기초를 배운 것도 있지만 내가 좀 더 맥주를 제대로 만들고 수제맥주를 즐기게 된 건 '맥주 만들기 동호회'에 들어가고 나서부터였다.
맥주를 만드는데는 꽤나 많은 장비가 필요한데, 원룸 사는 나로서는 그 장비를 마련할 수 없고 맥주를 발효할 공간도 부족했다. 그래서 공방을 이용해야했는데 공방 이용료도 싸지 않고 한번에 20리터 씩 만들다보니 혼자 다 마실 수도 없었다. 함께 여러명이 쉐어해서 만들 수도 있고, 잘 만드는 분들께 배울 수도 있겠다 해서 찾게 된 게 맥주 만들기 동호회였는데, 내 예상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일단 여러명이 쉐어해서 만드니 돈을 아낄 수 있는 건 맞았다. 그리고 잘 만드는 분들께 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틀렸다. 맥주를 만드는 데는 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몰트를 물에 넣고 끓이는 과정이나 맥즙을 끓이는 시간들이 대부분 한시간 정도씩 걸리다보니 시간이 많이 뜨는 편이다. 그럴 땐 무얼 하겠는가, 당연히 술을 마신다. 고수 분들과 함께 하다보니 그 분들이 직접 맥주를 가져오곤 했는데 그게 정말 최고였다. 대부분 맥주가 좋아서 만드는 분들이다보니 재료를 아끼지 않은 고급 맥주가 대부분이었고 한 두번 그 맥주들을 얻어마시다 나는 깨닫고 만 것이다. 아, 배우기는 무슨. 여기 와서 이것만 먹어도 무조건 남는 장사다.
이후로도 수십번 공동양조에 참여했지만 내 맥주 만들기 실력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저기 따라다니며 얻어먹은 맥주들에 입맛만 고급으로 자꾸 올라가고 있다. 특히나 맥주 만드는 분들이 모두 모인 정모는 재료가 잔뜩 들어간 진짜 수제 맥주의 천국으로 테이블 위에 가득 쌓인 페트병은 보기만해도 취하는 기분이다. 물론 실험적인 맥주들도 많다. 까나리가 들어간 맥주라거나, 파란색이 선명한, 대체 뭐가 들어갔는지 모르겠는 맥주까지 다양하다.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동호회가 죽어있었는데, 이제 코로나도 풀리고 조금씩 활기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