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이냐 술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미드(Mead)
앞에서도 여러번 나왔지만, 나는 술을 좋아하면 그 술을 '만들고' 싶어진다. 칵테일 주조기능사 시험이 그랬고, 맥주를 만들 때 그랬다. 내가 원하는 향과 맛을 넣고, 나만을 위한 술이 만들어지는 게 참 좋다. 맥주를 인생의 동반자로 여기고 나서는 다른 술들에게서는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얼마 전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술이 나타났다.
바로 미드(Mead). 꿀로 만든 술이다. 흔히 꿀주, 꿀로 만든 와인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데, 종류가 많지는 않다. 특히 국내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술이라 마실 수 있는 기회도 별로 없다. 내가 처음 미드를 마셔본 건 맥주 만들기 동호회에서 만난 지인이 모임에 본인이 만든 미드를 가지고 나왔을 때 였다. 꿀을 베이스로 만들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강하게 '아, 이 술은 달겠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개인적으로 단 음료, 단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한모금을 마셨는데, 이럴수가, 술은 전혀 달지 않았다.
내 예상을 깨고 단맛이 전혀 없고, 오히려 색과 향을 내기 위해 넣은 라즈베리가 상큼함만 더하고 있었다. 게다가 적당한 탄산감과 도수가 마치 딱 가벼운 맥주와 샴페인 그 중간이 아니던가!
"우와, 이거 어떻게 만들어요?"
"꿀만 있으면 돼요. 꿀 안의 당분을 당화시켜서 알콜을 만드는 거라."
어떻게 레시피를 짜느냐에 따라서 단맛도 조절할 수 있고, 도수도 조절가능하며, 무엇보다 부재료를 어떤 것을 넣느냐에 따라서 맛과 향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미드. 한잔 마시자마자 나는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미드에 푹 빠지는 순간부터 이 술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꿀을 사서 만들면 되는데 ...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꿀 부터 내가 직접 해볼까?
언제나 나의 노년은 도시가 아닌 시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농사가 될 지, 무엇이 될 지는 아직 모르지만 어쩌면 양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에서 양봉을 하고, 양봉장에서 나온 꿀로 미드를 만들어서 파는 할머니라니. 멋지다. 나는 바로 양봉을 가르쳐주는 곳을 서칭하기 시작했다.
서칭은 오래 하지 않았다. 어차피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양봉을 배울 수 있는 곳은 한 곳 뿐이라. 벌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봄에 수업은 시작되었고 나는 한달짜리 체험 수업을 들었다. 처음 양봉장을 들어설 때의 떨림이란. 수십만 마리의 벌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분명 겁먹을만도 한데, 나는 전혀 겁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벌들의 윙윙 거리는 소리가 마치 ASMR처럼 들리며, 고요한 하나의 풍경 같이 느껴졌다.
벌들의 윙윙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알을 살피고, 벌을 살피고, 꿀을 빼낸다. 질병이 보이면 약을 쳐주고, 먹이가 부족하면 먹이를 주는 일을 한다. 한달의 체험 수업 후에 나는 1년의 실전반 수업을 다시 등록했으며, 얼마 전 1년 수업이 끝이 났다. 약 1년 반 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그 사이에 얻은 꿀로 미드는 한번 만들었다.
아까워서.
벌과 내가 1년간 함께 열심히 채밀한 꿀을 보니, 술로 만들기가 아까워진 것이다. 시기 별로, 꽃 별로 꿀의 향이 달라지고 농도와 맛이 달라지는 데 술로 만들게 되면 그 향과 맛이 약해지고, 부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물론 술 만의 매력도 있지만 내가 키운 이 특별한 꿀의 매력이 사라지는 게 너무 아쉬웠달까. 결국 꿀이 술을 이겼고, 1년 간 내가 딴 꿀은 고이고이 찬장에 모셔져 있다. 선물할 사람들의 이름이 써진 채.
그렇다고 미드를 포기했냐고? 물론 아니다. 세상에는내 피땀눈물이 들어가지 않은, 코스트코 대량 생산 꿀이 있다. 내 꿀은 나와 내 가족들을 위해 소중하게, 코스트코 대량 생산 꿀은 맛있는 미드를 위해서. 양봉장에서 양봉을 하고 그 꿀로 미드를 만들어서 파는 할머니에서는 멀어졌지만, 또 다른 방법이 나타나겠지. 아직 꿀도, 미드도 포기한 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