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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열 Mar 06. 2022

동아시아 판도는 철도에 달렸다.

전 세계 국가들이 서열정리를 벌였던 제1차 세계대전. 이 발발하기도 전에 동아시아에서는 이미 힘겨루기가 시작됐습니다. 기존의 강대국이었던 ‘청’과 ‘러시아’, 여기에 ‘일본’이 신흥 강대국으로 나타나면서 슬금슬금 눈치게임이 시작된 거죠. 서로 눈치만 오지게 보던 상황에서 먼저 한판 붙은 건 청나라와 일본이었습니다. 쥐뿔도 없지만, 하필 위치가 대륙 끄트머리에 있던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한바탕 한겁니다. 여기서 일본은 청나라를 완전히 박살내고 강대국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대륙 진출을 목표로 삼았던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요동반도를 가져오려고 합니다. 이걸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삼국간섭으로 막아내면서 러시아는 청나라로부터 동청 철도 부설권과 여순, 대련의 조차권을 얻어내죠. 러시아가 굳이 청일전쟁 마무리에 껴든 이유는 바로 부동항 때문입니다.     

 

더럽게 넓지만 거의 다 얼어있는 땅덩어리를 갖고 있던 러시아는 얼지 않는 항구를 갖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륙 간의 무역은 배로 진행됐고, 사시사철 열려있는 항구가 필요했던 거죠, 극동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했지만, 여기도 똑같이 얼어있어서 결국 좀 더 따뜻한 남쪽을 노리게 됐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1860년에는 청과 북경조약을 맺어 블라디보스토크가 포함된 지역을 얻어오기도 했습니다.   

   

부동항과 함께 러시아가 집중했던 건 철도였습니다. 극동지역으로 영토를 넓히면서 이곳들을 본국이랑 연결했어야 했는데, 이때 철도가 필요했던 거죠. 그렇게 1891년부터 1905년까지 14년간에 걸쳐 시베리아철도가 만들어집니다. 위는 가로로 이었으니, 아래로도 내려와야죠. 러시아 치타에서 만주를 가로질러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약 800㎞의 동청철도와 하얼빈에서 대련에 이르는 남만주 철도도 차차 모습을 갖춰갑니다. 이 철도가 동아시아의 판도를 바꾸게 될 줄은 러시아도 몰랐겠죠.     


바로 일본이 이런 러시아의 철도 건설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지네도 대륙 진출을 해야 하는데 러시아 놈들이 철도로 한반도 위 지역을 싹 다 먹었으니 걱정이 된 거죠. 그래서 1902년 일본참모본부는 러시아군의 수송로인 철도에 대해 군사작전을 계획합니다. 당시 보고서에는 “동청철도가 러시아 극동동맥이며, 일본의 작전 목표는 동청철도를 파괴해야 한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청나라도 제낀 김에 대륙의 패자 러시아도 노려보겠다는 거였죠.     


일단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와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만주에 대한 러시아의 권한을 인정하는 대신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권한을 인정할 것을 제안했죠. 이에 대해 러시아는 만주에 대한 독점권과 한반도의 북위 39도 이북에 대한 중립지역 설정, 한반도의 군사적 이용 불가를 주장했습니다. 적당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얘기가 겉도는 사이 일본은 1902년 영국과 영일 동맹을 맺었습니다.      


영국을 등에 업은 일본은 1904년 2월 4일부로 러시아와 협상 중지를 선언했습니다. 이에 앞서 로스차일드 가문의 미국 대리인인 제이콥 시프로부터 큰돈을 지원받는 등 전쟁 준비를 착실하게 마친 상태였죠. 그렇게 2월 8일 일본은 현재 중국 다롄시에 위치한 여순항을 공격하는 것으로 전쟁을 시작합니다. 러시아의 철도 건설이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여순항에서 서로 한 대씩 주고받으면서 소모전을 이어가던 전쟁은 일본의 우세로 돌아섭니다. 여순항을 포위한 일본군은 땅과 바다 모두 틀어막은 채로 공격을 이어나갔습니다. 결국 1905년 1월 2일 주둔군 지휘관이 상부와 의논 없이 일본에 항구를 양도해버립니다. 여차저차 삥 돌아서 오느라 한발 늦은 러시아 최고 전력 발트 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들어가 좀 쉬고 나서 동북아 지역의 전투나 제대로 할 생각뿐이었죠.      


그렇게 1905년 5월 27일 새벽, 긴 여정으로 지칠 대로 지친 발트 함대는 석탄도 떨어져서 배에 있는 목재가구까지 태워가며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합니다. 최단루트인 대한해협을 통해서 말이죠. 전쟁할 힘도 없던 발트 함대는 모든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야간 돌파 작전을 시행합니다. 하지만 눈치 없는 병원선이 불을 환하게 켜놓는 바람에 일본 함대에 걸렸고, 대망의 쓰시마 해전이 열립니다.     


그렇게 발트 함대가 선빵을 맞으면서 시작한 전투는 하루가 꼬박 넘게 이어졌고, 발트 함대는 총 38척에서 35척이 박살나고 패배하게 됩니다. 일본은 러시아의 사령관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을 포로로 잡았고, 쓰시마 해전의 승리를 바탕으로 러시아와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맺게 됩니다.      


이렇듯 러일전쟁이 끝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건 발트 함대의 개박살이었습니다. 그리고 발트 함대가 출전해야 했던 이유는 바로 여순항이 먼저 털렸기 때문이죠. 근데 이미 청나라를 제끼고 만주 쪽을 점령하고 있던 러시아가 육로로도 이어진 여순항에 지원군을 함대로 보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심지어 동청철도에 시베리아철도까지 만들어놨었는데 말이죠,     


바로 그 철도가 문제였습니다. 당시 건설을 끝낸 시베리아철도는 차량도, 경험 있는 기관사도 부족했습니다. 또 레일도 무거운 대포의 무게를 지탱할 상태도 아니었구요. 뭐 간단하게 말하면 수준이 구렸습니다. 전쟁물자와 군인을 빠르고 많이 나르지 못할 정도로 말이죠. 육로로 지원을 못 보내니까 어쩔 수 없이 함대를 보냈던 거죠. 그나마 한 번에 많이 옮길 수 있는건 배였으까요.     


가장 큰 문제는 바이칼호에 있었습니다. 중간에 호수가 있어서 배를 타고 건넜어야 했는데, 이게 하루에 4번만 운행이 가능했던 거죠. 게다가 잦은 안개와 기관고장으로 그마저도 정상적인 운행이 불가능했습니다. 또 시베리아철도는 하나의 레일로 만들어진 단선철도였기 때문에 급하게 군인이랑 보금품을 나를 때면 역방향으로 운행되는 열차는 며칠씩 기다려야 했습니다. 부상병 호송이나 병력 교체에서도 시간이 걸렸죠.      


러시아 역사학자 니콜라스 V. 라자놉스키는 자신의 저서 <러시아의 역사>에서 "일본은 짧은 교통망을 이용했으나 러시아군은 엄청나게 긴 단선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바이칼 호수 부근의 일부 구역은 아직 완공되지도 않았다."고 말하기도 하죠.


게다가 한창 전쟁중이던 2월엔 바이칼호가 얼어붙었길래 호수 위에 레일을 달아서 기관차를 운행했는데, 이게 녹으면 또 그거대로 난리가 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수송이 늦춰지기도 했죠. 심지어 철로 주변에 폭설이 내려 눈을 치우며 지나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습니다. 뭐가 터질 때마다 시간은 계속 지체됐습니다. 러시아의 군수공장은 대부분 우랄산맥 근처에 있었는데, 극동지역의 전쟁터에는 보급이 계속 늦어졌죠.    

 

이때 당시 일본군은 바이칼호 남단에 철도가 단절돼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일본은 시베리아철도의 수송능력에 대해 과대평가해서 전쟁을 계획했습니다. 일본 참모본부는 시베리아철도를 통해 러시아군이 하루 16편 운항할 것으로 판단하고 최대 27개 사단이 이동해 올 것으로 파악했는데, 시베리아철도는 일본군이 판단한 것과 달리 하루 세 번 정도, 그것도 군용열차밖에 통과시키지 못하는 수준이었죠.     


결국 상대를 과대평가해 전심전력을 다했던 일본에게 허무하게 여순항을 잃고, 발트 함대마저 잃은 러시아는 극동 지역에서 힘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여전히 강대국이었습니다.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는 당시에도 러시아는 “작은 전투에서 패했을 뿐”이라며 패전국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러시아의 강력한 육군은 별다른 손실 없이 유지되고 있었죠. 되러 일본이 더 비틀대는 상황이었습니다. 슬슬 돈도 떨어졌고 딱히 러시아를 이겨 먹을 돌파구를 찾지도 못했거든요.      


당시 러시아는 약 1억700만 파운드의 금을 보유했고, 이것저것 더해 총 1억7,100만파운드를 전쟁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일본은 보유한 금이 1,200만 파운드에 불과했지만, 전쟁에 사용된 돈은 1억8,800만파운드 정도였습니다. 빚이 83% 이상이었죠. 만약 시베리아철도를 포함해 러시아 철도가 제 역할을 했다면, 전쟁은 길어졌을 것이고 일본은 무리한 전쟁비용을 감당하지 못해서 스스로 자빠졌을 것입니다. 빚 갚는 데만 한세월이 걸렸겠죠.     


그렇게 됐다면 역사는 지금과는 조금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가 만주를 시작으로 한반도까지 먹었을 수도 있고, 대한제국이 쭉 남아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동아시아 강대국 간의 세력 균형이 무너지면서 빈틈을 노리고 미국이나 영국이 개입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이런 가정은 러시아의 철도가 어떤 역할을 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처음 전투가 시작했던 여순항으로 제때 지원이 됐다면’이라는 문구가 앞에 붙어야하는 거죠.    

 

비록 러일전쟁에서는 시베리아철도를 제대로 써먹지 못했지만, 그 뒤로 시베리아철도는 러시아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2차대전 때는 동부전선에 야무지게 병력과 물자를 나르기도 했구요. 시베리아 쪽에는 철도를 따라 만들어진 도시들이 많을 정도입니다. 시베리아의 신도시라는 이름의 노보시브르스크도 철도와 함께 성장한 도시입니다. 이후 소련이었을 때도 철도는 계속 늘어납니다. 2002년에는 전 구간 전철화에 성공해서 지금까지도 러시아의 제1 교통수단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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