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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그루 Sep 18. 2021

누구나 가끔은

<사자도 가끔은…> 허아성 글. 그림, 길벗어린이

요즘 아이들은 성장이 빨라서 사춘기도 빨리 찾아온다고 한다. 열 살이 된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데 부쩍 가끔 ‘사춘기인가…’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니,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다. 정말이지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내게도 사춘기가 있었냐고 물어온다면 참 난감해진다. 분명 나도 사춘기를 겪었는데 그 시기에 대해서 경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더 강한 기질이었다면 모를까, 초등학교 때는 엄마 아빠의 불화 속에 내 사춘기적 행보는 묻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나름 나만의 방식으로, 아무도 모르게 반항을 했고 저항도 했고 좌절도 했다. 아빠가 부르면 삼세번은 못 들은 척했고, tv를 보고 있는 아빠의 뒷모습을 힘껏 째려보기도 했고, 부엌에서 쪼그려 앉아 우는 엄마를 못 본 척한 적도 있다. 철저한 반항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하니 나에 대한 연민이었고 나를 지키기 위한 회피였던 것 같다.


내가 <사자도 가끔은…>에서 울상을 한채 한숨을 짓는 사자를 보며 아빠의 힘없는 뒷모습과 부엌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던 엄마를 떠올린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때의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의든 타의든 사춘기 반항이든, 그것이 어떤 모양이든지 말이다.

<사자도 가끔은…> 허아성 그림책

<사자도 가끔은…>의 이 귀여운 사자와 그 옆을 묵묵히 지키는 친구를 보면서 어이없게도 그날을 떠올렸다.

공교롭게도 내가 고등학교를 입학하는 그날,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가 아빠의 무관심과 할머니의 무자비한 간섭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간 지 꼭 3년 만이었다. 엄마의 죽음은 나를 제2의 사춘기로 내몰았다. 이제는 반항과 저항이 아니라 엄마를 잃은 깊은 슬픔과 적극적으로 엄마를 위하지 못했다는 무거운 죄책감이었고 그로 인해 내 마음엔 큰 구멍이 뚫렸다. 공허하고 허무한 기분에 자꾸만 땅 속으로 끌려 내려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고픔을 느끼고 밤에는 잠을 자고 아침이 되면 가방을 챙겨 학교에 갔는데 그런 내가 너무나 가증스러웠다. 이 역시 돌아보면, 내가 나를 굳건하게 지키려는 처절한 몸부림의 하나였다.

그 몸부림의 시간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살아가는 힘을 비축하고, 슬픔을 건너는 방법을 터득하고, 내가 내 앞에 둔 덫에 걸리기도 하고 스스로를 구원하기도 하면서 나의 나다움을 만들었으리라.

많이 외롭고 아팠던 그 시절의 힘없고 볼품없는 사자가 시간이 흘러 단단해지고 내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사자로, 조금은 강해졌다는 사실에 괜히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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