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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그루 Aug 25. 2021

서로에게 홀로서기_엄마의 짝사랑

윤여림 글, 안녕달 그림, 위즈덤 하우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지난번에 말했다시피 결혼 후 곧 찾아온 아기천사는 작은 점으로 박힌 사진만 한 장 남기고 가버렸다. 그 후로 심장소리가 너무 약하긴 한데…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의사 선생님이 내 꿈에 악역으로 자주 등장했다. 이상하게도 가끔 그 꿈들이 생각난다. 나는 엄마가 될 수 없을 거라는 막연한 공허감이 지금도 나를 삼킬 듯 몰려올 때가 있다.


아무튼 어렵게 어렵게 다시 찾아온 아기 천사는 다행히 콩닥콩닥하는 심장소리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기쁨과 감동의 순간은 잠시 뿐, ‘또 아기의 심장이 멈추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에 검은 불안과 초조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이런 나의 불안감이 아기한테 스트레스로 작용하면 어떡하지?’하는 걱정까지 겹쳐지니 이건 뭐 어떤 식으로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미로에 갇힌 느낌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 어둠 속으로 침잠해 가는 마음을 어떻게든 다잡기 위해 명상과 요가를 시작했고 그 와중에도 아이의 두뇌발달에 좋다는 손으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취미까지 만들었다. 그렇게 불안감을 떨쳐내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며 아기와 나는 공생하기 시작했고, 아기는 예정일 3일을 남겨두고 드디어 세상으로 나왔다.      


엄마가 된다는 건 하루하루가 아름다우면서도 이상하고 낯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탐험이었다. 작고 작은 아이는 온몸으로 숨을 쉬었지만 나는 오히려 숨을 헙!! 멈추고 아이를 가만히 들여다봐야 안심이 됐다. 아이의 어떤 작은 소리나 미미한 움직임에도 쉽게 예민해지기 일쑤였다. 무사히 태어나기만 하면 끝일 것 같았는데 다시금 불안함과 초조와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네가 아기였을 때
엄마는 잠든 네 곁은
쉽게 떠나지를 못했어.
떠났다가도 금방 돌아와
다시 네 숨소리를 듣곤 했어.
내가 안 보는 동안 혹시라도
네가 어떻게 될까 봐 겁이 났거든.
웃기지?
 

하루 종일 둘이서 붙어 있다가 어린이집에 갔던 날, 아이에게는 엄청난 사건이었겠지만, 나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와 분리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늘 품에 안겨 있을 것 같았고 나만 보고 있을 줄 알았고 나만이 아이의 세상 전부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전세가 역전됐다. 엄마의 분리불안, 또는 엄마의 짝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는 집안에 함께 있어도 각자의 일을 한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지고, 분명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는 알지만 이전에는 촘촘하게 꼬여 있던 두 줄이, 지금은 나란히 평행선을 이루어 간격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 느낌은 매우 편하고 안전하고 여유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외롭고 쓸쓸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책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는 나의 결핍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연약함으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도 벅차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나와 같은 결핍 때문에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이 있다면 읽어주고 싶은 그림책이다. 환상과 망상 속에 살지 않고, 현실에 뿌리를 박은 강하지만 부드럽게 성장하는 아이와 엄마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지금의 짝사랑 상태에 아주 만족한다. 다만 가끔, 아주 가끔 어느새 또 한 뼘 더 자라 버린 아이에게 또다시 때아닌 분리불안을 느낄 때가 있다. 그렇기에 엄마가 아이로부터, 아이가 엄마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부터 아이와 엄마의 관계는 서로에게 홀로서기를 할 수 없는 관계이지 않을까… 단, 그저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도, 오래오래 만날 수 없는 곳에 있어도,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는 사이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언제까지나 사랑하고 있고, 어디서나 서로 환대하고 환대받는 사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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