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다정한 사람인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난 다정하기도, 다정하지 않기도 한 사람이다.
점 보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 엄마가 어느 날 내 사주를 보고 와서는 '너는 몸이 냉하니까 점점 그 냉함이 마음까지 차갑게 만들 거라고' 했다며 딸이 자신에게 냉한 이유가 체질 때문이라는 수족냉증학적인 심리 분석을 진지하게 털어놨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며 내쳤지만 이후로 상대를 냉정하게 대하고 난 뒤면 '이게 다 수족냉증이 날 차갑게 만들기 때문'이라며 겨울왕국의 엘사처럼 스스로를 안타깝게 여기곤 했다.
이런 근본없는 논리에 혹하는 귀얇음은 혹시 내 피부가 얇기 때문인가? 곳곳에 핏줄이 다 비치고 자외선에 바로바로 주근깨가 생기는 얇은 피부층이 결국 내 귀까지 얇게 만들어 사람들 말에 갈대같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소름. 체질심리학 만세.
그럼 나는 언제 다정하고 다정하지 않은가. 다정함이 내게 해가 되지 않을 때는 무척 다정하고, 내게 상처로 돌아올 때는 다정하지 않다. 오히려 다정하지 않음을 넘어서 차갑고 차갑다. 다정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온도차는 내가 느끼기에도 상당하다. '성격'의 사전적 정의는 '개인을 특징짓는 지속적이며 일관된 행동양식'이라는데, 그렇다면 나는 다정한 '성격'이라 할 수 있는가.
환경과 관계없이 지속적이며 일관되게 튀어나와야 하는 낭중지추적 속성이 성격이라 한다면, 나의 다정함은 환경에 과도하게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성격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게 된 건 얼마 전의 일 때문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상당히 냉한 사람이다. 차갑고 어려워 누구든 내게 쉽게 무언가를 부탁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아무도 안 건드려 심신이 편안하고 내 일만 잘 처리하면 문제될 것이 없었다.
반면 이런 나와 완전 반대의 성향을 지닌 옆반 선생님은 특유의 다정함으로 누구와든 금방 좋은 관계를 맺었고 학교의 많은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고 때문에 많은 선생님들의 고민상담을 해주셨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우리 둘의 차이가 큰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동학년 선생님들과 의견을 주고받을 때나 큰 회의가 있어 모든 선생님들과 교류를 해야 할 때 혹은 활동이 필요할 때는 차이가 생겼다. 누구와도 업무 외엔 가까운 관계를 맺지 않는 나는 그런 상황이 낯설고 불편했다. 어색함에 어쩔 줄을 몰랐고 빨리 이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이 학교에서의 나는 사교성 제로에 아싸일 뿐이었고 이런 나를 다른 선생님들도 어렵게 여겼다.
처음엔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생활하다 보니 관계를 어색하게 만드는 나의 모습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 좀 더 다정하고 살가운 사람이 되면 사람들과도 좀 더 즐겁고 편할텐데 싶어 아쉽기도 했다. 요즘 트렌드가 인싸 그룹 안의 아싸라는데,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기는 싫은 희한한 마음가짐이 나에게도 존재하는 건가. 이렇게 나는 뜻밖의 트렌드세터?
한 번 마음 안에 들어온 문제의식은 점점 크기를 불려나갔다. 결국 '직장에서 냉한 나, 이대로 괜찮은가?'의 물음이 되었고 나와 거의 유일하게 말이 잘 통하는 옆반 인싸 오브 인싸 선생님께 나 역시 고민을 상담하게 되었다.
"저의 태도가 너무 주변인들을 어렵게 만드는 거 아닌가 싶어요. 제가 좀 더 다정한 사람이라면 좋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요."
"음, 근데 선생님 그동안 일부러 벽 치는 거 아니었어요? 나는 그런 줄 알았는데. 선생님 이 학교에 와서 몇 년동안 일만 엄청 하고 제대로 된 대우도 못 받았잖아. 그러니 학교에 정 주고 싶겠어요? 그래서 그렇다고 생각했지 나는."
생각해보니 맞았다.(이렇게 또 혹했다. 역시 나는 귀가 얇다) 나는 이 학교에서 지낸 2년동안은 꽤 다정했어!!! 그런데 그 다정함이 내게 해가 된다 여기자 차근차근 벽을 쌓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벽을 더 견고하게 쌓아서 온갖 늑대들이 바람을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좋은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도 꽤 놓치긴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 벽 다시 허물래? 라고 묻는다면 분명하게 No! 라고 외칠 거다. 인정욕구 강한 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 맺는 것에 욕심 많고 애정도 많이 쏟는다. 그러나 선의를 선의로 돌려주지 않고 호구로 여기는 곳이라면 나는 냉한 사람으로 내 뜻대로 의견 펼치며 살 작정이다.
이 학교에서 나는 싫은 것에 제대로 예스하지 않는 사람이다. 오히려 쟤는 저런 애니까, 라고 칭해지는 게 속 편하고 좋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더 냉해지기도 했다.
결국 인싸되고픈 욕망과 아싸로 내 주장 제대로 펼치고픈 욕망 중에 나의 생존에 더 득이 되는 후자를 택해 살았던 것이다. 저 모순되는 두 가지 욕망을 함께 충족시키려는 건 과욕이자 불가능한 일이니까. 다만 어느 한 쪽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면 그것 역시 문제겠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자 환경에 맞게 변화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 때문에 환경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드러나는 성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에 필요한 행동양식을 택할 뿐이니까. 결국 태도와 선택의 문제이다.
옆반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니 더욱 명확해졌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이 방식을 택하련다. 직장에서는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냉하고 어려운 사람이 되겠어!!!!! 물론 겪어보면 허당에 물러터진 사람인 거 알고도 남겠지만 그걸 굳이 모두에게 알릴 필요는 없으니까.
내 일관된 성격을 구축하는 것에 얽매이지 말고 다양한 나를 만들어 써먹어야지. 카멜레온 혹은 팔색조 같은 사람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