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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Jun 20. 2022

이번에 한 번만 도와주면 다음에는 더 좋은 일이 생길까

웬만하면 거절합니다.

안정된 월급을 스스로 박차고 나온 프리랜서인 내게 사람들은 이렇게 접근해왔다. ‘이번에  번만 도와주시면 다음에는  좋은 건으로 의뢰드리겠습니다.


선의로 포장된 거짓이란 걸 알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당시에는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면 다음엔 진짜 좋은 건이 생길 거야라고 믿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생기길 기대했다.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던 시절이었다.  


레퍼런스가 부족했으니 뭐라도 해야 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일이 없어질 것만 같았다. 포트폴리오가 부족하니 비용을 적게 받고 일을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다행히 돈을 아예 받지 못한 적은 1번뿐이었지만 제대로 받지 못한 적은 여러 번 있었다. 급한 건이라고 하면 무조건 나라도 도와야지라며 앞뒤 가리지 않고 일을 받았다. 일을 가려서 받을 처지가 아니었다.  

 

거절하지 못한   뿐만은 아니었다. 부모님의 부탁도 나는 거절하지 못했다. 부모님 말씀은 무조건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어떤 생각에서였다.   듣는 착한 아들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들과의 약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이 부르면 무조건  나갔다. 만약 거절하면 다시는 연락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경험으로 자연히 알게 되었다. 다음에 더 좋은 건은 생기지 않는다는 걸, 한 번 내려간 단가는 다시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정당한 가격을 지급하고 처리하는 정상적인 일은 나에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급한 건이 있을 때만 연락이 온다는 것을, 거절해도 연락은 필요하면 연락이 온다는 것을.


'지금 거절하면 일이, 연락이  올지도 몰라'라고  괜한 걱정었다. 일은 내가 원한다고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거절한다고 해서 끊기는 것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연락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잘못된 생각이 만들어낸 불안한 허상이란  뒤늦게 깨달았다.


이젠 웬만하면 거절한다. 예전엔 'Yes맨'이었다면 지금은 'No맨'이 되었다. '이번에 한 번만'이란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가치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사람과 일하면 결과도 그저 그렇다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는 나는 그 정도 가치밖에 안 보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젠 나의 가치를 제공해주는 사람과 일한다. 일이 안 들어오는 걸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거절하지 않는 경우는 딱 하나 있긴 있다. 이땐 이익을 따지지 않고 한다. 뭔가 새로운 도전이 될 것 같을 때, 나의 관심이 생길 때, 뭔가 재밌는 일일 것 같은 느낌이 올 때는 거절하지 않고 이익 따지지 않고 하기도 한다.


과거 난 Yes맨이었다. 이제는 No맨으로 산다. 세상에서 가장 No를 많이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복귀한 뒤 생산 제품 가짓수를 350개에서 10개로 대폭 줄였다. 그리고 신제품 아이디어를 제외하고 기존 제품에 대해선 340번이나 '안 된다'라고 말했다. 잡스는 '아니오' 맨이었다. 덕분에 아이폰이 세상에 나왔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 가치를 깍지 않기로 했다. 내 가치를 돈과 바꾸는 일을 그만두었다. No를 계속했더니 쓸데없는 일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일도 사라지고 사람도 사라졌다. 덕분에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배고파졌지만 괜찮다. 무엇보다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곳에 나의 시간을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절이 내게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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