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가 찾아오는 그 날
요즘 tvN 의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나영석 PD)'을 재밌게 본다. 사석에서도 지적인 분들의 수다를 들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데,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풀어내는 지적 수다를 보다 보면 넋 놓고 빠져든다.
최근 방송에서 김영하 작가에게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작가의 영감은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답했다.
“뮤즈(Muse)를 기다리지 말라. 대신 뮤즈가 몇 시까지 오면 되는지 알려줘라”라는 미국 소설가 스티븐 킹의 말을 인용하며 답을 대신했다. 영감에 기여하는 '뮤즈'는 알아서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러니 정해진 시간에는 일을 하라 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뮤즈가 택배기사처럼 찾아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뜩, 뮤즈가 찾아온다는 것은 작가가 글 쓸 때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 찾아오는 것도, 인생에 기회가 찾아오는 것도 모두 같은 개념은 아닐까.
뮤즈(Muse)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과 학문의 여신이다. 춤과 노래ㆍ음악ㆍ연극ㆍ문학에 능하고,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는 예술의 여신들을 말하는데, 고대인들에게 뮤즈는 그 자체가 예술적 영감이나 학문적 재능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후에 인류의 뛰어난 문화유산과 지적 자산을 대중들에게 전시하는 박물관(또는 미술관)을 가리키는 ‘뮤지엄(museum)’이란 단어도 뮤즈 여신들을 모시는 신전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이다. 영어에서 음악을 의미하는 ‘뮤직(music)’도 뮤즈 여신에게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통상 뮤즈는 여성(여신)을 말한다. 그렇다면 요즘같이 사회 활동이 왕성한 여성에게 뮤즈란 남성 또한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같은 여성이나 성과 관계없이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다수의 경우를 가정한다면, 여성에게 그런 (남성) 뮤즈는 언제 찾아올까?
뮤즈가 찾아 오기 전에 김영하 작가나 스티븐 킹의 말처럼 여성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우리 세대는 학교의 교육과정을 통해 이를 배운 적이 많지 않다. 교양과목으로 가정생활과 페미니즘에 관련한 수업을 듣고, 부모님과 주변의 지인들 통해 듣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소곤소곤 여성의 수다는 끊임없이 늘어나는 것인가! :)
한때 중국 트위터인 시나웨이보를 통해 ‘중국 영부인의 조언’이라는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의 ‘러브스토리’는 중국 언론에 대대적으로 소개됐었다. 펑리위안은 2007년 중국 관영 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그(시진핑)가 집에 돌아오면 한 나라의 지도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서 “내 눈에는 남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라고 말해 중국 국민들은 이들 부부를 더 가깝고 ‘인간적’으로 느낀다고들 말한 바 있다. 그 글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여자는 자기 자신만 관리해도 잘한 겁니다. 무엇 때문에 남자를 관리하려 합니까?
똑똑한 남자는 관리할 필요가 없고 멍청한 남자는 관리해도 소용이 없고 당신을 사랑하는 남자는 관리하지 않아도 되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는 관리할 자격이 없습니다. 때문에 당신은 열심히 여자로 살면 되는 겁니다.
1. 자신한테 투자하세요
여자 일생에서 중요한 몇 년을 남자한테 투자한다면 당신은 그 후의 몇십 년을 그 남자가 당신의 곁을 떠나지 않게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시간을 자신한테 투자했다면 당신은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사랑도 물질을 기초로 한 사치스러운 정신적 향수(享受)입니다. 잊지 마세요. 여자는 최적의 상태일 때 많이 따르는 남자가 있습니다.
2. 독립적인 여자가 되세요
경제도 사업도 남자한테 의거하지 않는 독립적인 여자가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거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희생하는 건 아닙니다. 모든 걸 남자한테 의거해서 산다면 그 남자는 당신한테 선택의 전부일지 몰라도 당신은 꼭 그 남자한테 선택의 일부분입니다.
3. 아무 남자나 만나지 마세요
외롭다고 아무 남자나 만나는 건 당신과 그 남자한테 모두 불공평한 일이니 당신이 싫어하는 남자는 거절하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는 떠나세요. 헌신짝도 짝이 있는 법이고 당신을 아낄 줄 모르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돈 많고 인물이 좋고 모든 게 소용이 없습니다. 외로울 땐 아무 남자나 만나기보다 그사이 몸매 관리와 피부 관리를 해서 좋은 남자가 나타나면 놓치지 않는 게 더욱 바람직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만나면 후회 없이 사랑하세요. 두 사람이 만날 확률은 0.0000049입니다.
4. 책을 보세요
무조건 얼굴이 이뻐야 아름다운 여자가 아니지만 배운 게 없다면 당신은 우둔한 여자입니다. 책을 보아 남들 앞에서 지식을 자랑할 필요는 없겠지만 책을 본다면 적어도 당신은 나쁜 남자와 좋은 남자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는 남자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감별해낼 수가 있습니다. 드라마에는 예술이 있지만 책 속에는 인생 경험이 살아 있습니다.
5. 아름다운 여자가 되세요
세상에는 게으른 여자가 있어도 미운 여자는 없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여자는 자기 자신을 우아하고 깨끗하게 단장하세요. 여자가 구질구질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데 어떤 남자가 그 여자를 사랑하겠습니까? 여자는 항상 자신의 형상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6. 너그러운 여자가 되세요
너그러움은 나약함도 아니고 양보도 아닌 알면서 말하지 않는 지혜이고 인간의 따스함입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다른 사람을 욕하고 질투하는 여자보다 양보할 줄 알고 용서할 줄 알고 배려할 줄 아는 여자는 모두가 존경합니다.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에 엄격하고 다른 사람한테는 너그러워야 합니다.
어떤 것을 학습할 때 그것을 습득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 준비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준비準備의 갖출 비 備는 사람 人 풀 艸, 언덕 엄 厂 쓸 용用으로 구성되어 있어, 언덕 위에 풀을 말려 건초를 만든 후 필요할 때 쓴다는 뜻이다. 영어 격언 “해가 있을 때 건초를 말려라 (make hay while the sun shining)”와 비슷하다. 또, 활통에 화살을 넣어둔 모습으로 형상화해 미리 싸움을 준비하여 화살을 갖추어 둔다는 의미로도 해석한다. 그 옆에 사람 인(人)이 들어가면서, 미리 갖추어 준비하는 주체의 사람을 표현했다.
영어의 Ready는 말을 타고 가다의 ride에서 나온 말로, ‘갈 준비가 된’의 의미다. 즉, ready의 정확한 뜻은 '말을 탄'의 뜻에서 '출발 준비가 된, 준비된' 등의 뜻. ready와 prepare 모두 '무언가를 하기 위해 준비를 하다'라는 공통적인 뜻이 있다. Prepare는 Pre + Pare로 구성되어 있는데, ‘pre-‘의 어원적인 의미('-전에‘)와 Pare는 (과일 따위의) 껍질을 벗기다, (불필요한 곳을) 잘라 (떼어내다) 등의 개념이 있다. 그러나 ready는 prepare과는 다르게 그 준비를 통해 지금은 그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까지 나타내고 있다. 즉, now able to do it이라는 뜻이 더 내포되어 Ready 전에는 Prepare가 선행돼야 되는 것이라 해석하게 된다.
즉, Pare, 먼저 나를 둘러싼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본질적인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에겐 아름다운 것, 추잡한 것, 멋진 것, 연민을 느끼게 하는 것, 남 보다 더 잘 하고 못하는 것, 가진 것과 없는 것 등을 진솔하게 알고 난 후에야 우리는 강한 것은 더 강하게, 부족한 것은 채우는 전략적인 준비가 가능하다는 생각에 미친다. 그래야 바로 Ride 할 수 있게 Ready 되는 것.
사랑을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사랑 그 자체라기보다는 사랑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나 요소다. 그 조건은 2013년 영국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Catherine Hakim)이 말한 제1,2,3 자산인 경제·문화·사회 자본, 즉 돈·교육·연줄일 수도 있다. 작가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제4의 자산'을 매력 자본(Erotic Capital)이라 말했다.
‘매력 자본’의 요소를 아름다운 외모와 성적 매력, 인간관계, 활력, 옷 입는 스타일, 섹슈앨러티 등을 아우르는 신체적인 매력과 사회적인 매력이 혼합된 것으로 봤다. 이 책은 매력을 갖춘 사람들이 성공하며, 그런 경향이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누구나 나로서 존재할 때 가장 아름답지만, 시대가 원하는 매력도 다르기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 세대가 말하는 매력의 요소들을 스스로 정의하고, 작은 노력들을 쌓고 쌓아 나가다 보면 우리에겐 바라던 뮤즈가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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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荀子)의 권학편(勸學篇)에 이런 말이 있다.
積土成山(적토성산):한 줌의 흙이 모여 산이 되면
風雨興焉(풍우흥언):풍우가 일고
積水成淵(적수성연):작은 물이 모여 못이 되면
蛟龍生焉(교룡생언):용이 살 듯
積善成德(적선성덕):선행을 쌓고 덕을 이루면
而神明自得(이신명자득):신명을 통하여 스스로
聖心備焉(성심비언):성인의 마음씨가 갖추어질 것이다.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 거기에 바람과 비가 일어나고, 물을 쌓아 연못을 이루면, 거기에 물고기들이 생겨나고, 선을 쌓고 덕을 이루면, 신명이 저절로 얻어져서 성인의 마음이 거기에 갖춰진다.[1]
아주 작은 것들이 모이고 쌓이면 큰 것, 훌륭한 것, 아름다운 것이 된다. 이런 것들이 쌓인 어느 날 문뜩, 우연이라 느낄 만큼 아름다운 뮤즈가 선물처럼 인생에 나타난다. 뮤즈가 탄생하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 오게 만든 나의 작은 노력들이 쌓여 있을 때. 그때 나에게로 찾아온 그 뮤즈를 나는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처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후회 없이 사랑하자.
글 작가 손보미
[1]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2017, 21세기북스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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