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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박재관 Oct 09. 2022

삶과 사랑에 대한 냉소

새의 선물 - 은희경 장편소설

은희경에게 있어 사랑은 숭고하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 가벼운 것이라고 이 책에서 말하는 것 같다. 사랑은 배신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랑도 가볍고, 배신도 가볍고 그렇게 생각해야 상처를 견디기 쉽다. 어른이 되어서야 그걸 깨닫는다면 괴롭다.


6살에 엄마를 여의고 12살에 할머니 집에 이모와 사는 주인공 소녀는 나이에 비해 너무 성숙하다. 어쩌면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한 소녀의 처세술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비밀을 꿰뚫고 있고, 어쩔 땐 이용한다.


할머니 집에 세 들어 사는 장군이네 집 그리고 그 집 하숙생인 최 선생님과 이선생님, 양복점인 광진테라, 뉴 스타일 양장점과 우리 미장원, 문화 사진관까지 각양각색 이웃들의 이야기가 아이 같지 않은 아이의 눈으로 펼쳐진다.


소녀는 일찌감치 ‘거짓과 위선이 한통속’이라는 걸 깨닫고 이웃들을 바라본다.


광진테라 아저씨를 통해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삶에 불평을 하며 불성실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줌마를 통해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이야깃거리뿐이지만 착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비극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책에서 작가의 통찰이 느껴졌던 부분은 삶과 사랑에 대해 냉소적인 사람이 성실한 이유에 대해서 말한 부분이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


“나의 분방한 남성편력은 물론 사랑에 대한 냉소에서 온다.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왜 삶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삶에 성실할까?

왜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쉽게 사랑에 빠지는 걸까?


삶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클수록 실망하고 불평하고 자멸하기 쉬운 건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기대하지 않아서 성실한 건 아니다.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실망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을 뿐이다. 성실이 단지 지치지 않고 지속함을 의미한다면 맞는 말이지만 성실에서 애정을 뺀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랑에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쉽게 사랑에 빠지는 건 맞는 것 같다. 여기서 기대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을 지속하려면, 사랑에 성실하려면 기대하지 않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정이든, 의지든, 노력이든.


한마디로  소설은 지금의 나를 있게  ‘어릴  삶과 사랑에 대한 나의 경험과 추억에 관한 이야기라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는 ‘삶이 하는 일’에 대한 부분이다.


“선택의 전 단계에서 어떤 기회를 제공하느냐는 순전히 삶이 하는 일이다. 배신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만 배신을 하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언제나 삶의 짓인 것이다.


처음엔 삶이라는 게 나와 동떨어진 외부 환경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삶과 나를 분리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내 삶이 살인자의 삶이라면 나에게 영웅이 될 선택의 여지는 없는 거 아닌가?


결국 선택하기 전까지의 삶의 경험들이 사지선다형의 답처럼 펼쳐진다. 경험하지 않은것들이 선택지에 나오지는 않는다.


세상에 기적이란 없다. 그러나 우연은 많다. 아니 세상의 중요한 일은 공교롭게도 모두 우연이 해결한다.


흔히들 우리가 태어나고 살아가고 사랑하는 이 모든 것들이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연의 산물일지 모른다. 단지 특별하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냉소한다고 애정을 버리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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