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청년 Dec 02. 2018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일본 근대 소설의 문외한이라 책이름은 어디서 들어봤는데 작가에 대해서 잘 몰랐다가, 나쓰메 소세키 때문에 리디북스에서 찾다가 보게 된 책이다. 재미있게도 소설 내용 중에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소설은 첫 장면부터 다소 충격적이다. 사진 속 소년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고 한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과 공포는 어디서 오는 걸까?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인가? 내 마음도 모르는데 남의 마음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남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한국 사람들은 남을 너무 의식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다 보니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내 속마음을 내비치기가 어렵다. 그래서 술의 힘을 빌리기도 하고 인간관계가 아닌 것들에 집착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주위 사람들에게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우스운 행동'이다. 우스운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서비스’ 함으로써 자신의 불안과 공포를 숨기는 것이다.


남들을 완벽하게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끔 그 본질을 꿰뚫어 보는 거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불안해서 어떻게든 친구로 만든다.


자신에게 풍기는 고독한 냄새를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맡고 꼬여 든다. 아니 여자를 홀린다.


세상에 대한 공포와 불안, 좌익 운동, 결정적으로 돈 없음에 굴욕감을 느끼고, 술집 여자와 동반 자살을 시도하지만, 여자만 죽고 자기는 산다.


출판사를 다니는 딸 하나 가진 여자에게 얹혀살며 먹고살기 위해 삼류 만화를 그리지만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되고 안정되어 가는 듯한 삶도 뿌리치고 도망 나온다.


어린 신부와 결혼하게 되었지만 불륜장면을 목격하고도 가만히 있는다. 알코올 중독에서 마약중독이 되고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인간실격, 이제, 난, 완전히, 인간이, 아니게 됐습니다.


인간이 인간 다울 수 있는 건,  때때로 자신의 맨얼굴을 대면하고, 남들에게 내보일 수 있을 때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와 솔직함이 필요하다.

용기란 다른 게 아니라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거다.


이러다 결국엔 나 혼자 완전히 돌아버릴 것 같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주위 사람들과 거의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우스운 행동'입니다. 그 행동은 내게 인간에 대한 마지막 구애입니다. 난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그렇다고 인간을 아무래도 단념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스운 행동’을 수단으로 인간과의 가느다란 연결 고리를 이을 수 있었습니다. ‘우스운 행동'은, 겉으로는 언제나 웃는 얼굴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천 번에 한번 성공할까 말까 할 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걸 각오한, 땀 흘리며 보여주는 아슬아슬한 서비스였습니다. p17~18


여자는 곁에 다가왔다가는 뿌리친다, 때로 여자는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는 나를 깔보고 매정하게 대하고, 아무도 없을 때는 꽉 끌어안는다, 여자는 죽은 듯이 깊이 잠든다, 여자는 잠자기 위해 사는 건 아닐까, 그 외에도 여자에 대한 다양한 관찰을 나는 이미 어릴 적부터 터득하고 있었는데, 같은 인간이면서도 남자와는 완전히 다른 종의 생물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p45


돈이 떨어지면, 남자는 스스로 의기소침해져서 영 구실을 못하게 되고, 웃음소리에도 힘이 없고, 이상하게 속이 배배 꼬여가고, 결국 스스로 무덤을 퍼서는 말이야, 남자 쪽에서 먼저 여자를 차 버린다. p87


개인과 개인 사이의 싸움에서, 나아가 바로 그 자리의 싸움에서, 거기서 이기면 되는 것이며, 인간은 결코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는 존재로 노예조차 노예 나름의 비굴한 앙갚음을 하는 법이니 인간에겐 ‘한판 승부'에서 승리하는 것 외에는 생존해 나갈 길이 없고, 대의명분 따위를 내걸고 이루고자 노력한 목표는 반드시 개인으로 귀결되고, 개인을 딛고 일어선 다음에도 다시 개인을 향하므로 세상의 불가사의는 개인의 불가사의고 대양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을 말하는 것이라는 관념을 갖고 나니, 난 세상이라는 큰 바다의 환영을 두려워하는 버릇에서 약간은 해방되어, 이전만큼 이것저것 오만 가지 일에 걱정하는 일 없이, 눈앞에 닥친 필요에 따라 어느 정도는 뻔뻔스럽게 행동하는 법을 익히게 됐던 겁니다. p141~142
작가의 이전글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